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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
민이언 지음, 제소정 그림 / 디페랑스 / 2021년 10월
평점 :
살아오면서 느끼지만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와 "난 운이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두 부류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삶이 편안한 사람들이고,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사람은 삶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어 그런지 경제적 상황과 상당히 밀접한 것 같다. 좋은 직장, 좋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반대로 좋은 직장도 아니고, 사회적 위치도 확보하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이다. 즉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접근의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전환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질문 자제가 '우문'일지 모른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근거로 판단하는 사람들이니 '우문현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철학이나 인문학적 사고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 방식과 생각 방법을 제기한다. 그래야 답에 가까이 갈 기회가 훨씬 많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어서 답변하기 쉽다. "당신의 경제 상황으로 볼 때 어느 계층이라고 생각하느냐"이다.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답에 접근해 간다.
그러나 철학자나 인문학자들은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책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저자가 꽤 비관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자는 부제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를 통해 독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하늘이시여! 왜 하필 저예요?’ ‘세상이 어찌 내게 이래?’ 내 인생의 단면인 양, ‘또’ 나를 실망과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삶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실히 바랄 때는 꼭 나를 비껴가고, 간절히 피하고 싶을 때는 꼭 내가 걸려들었던 기억도 말한다. 불운이 지닌 속성 중 하나가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그 ‘나’를 겪고 산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의미이기도 하다며 독자들의 '예스' 답변을 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불운만큼이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다가와서 부딪는 완벽도 없지 않은가?고 독자들의 확신을 끌어내려 한다. 우리가 불운을 피해갈 수 없는 논리적 이유를 대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불운에 관한 거시적이고도 현학적인 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신변잡기적 불운 속에 깃든 성찰을 담은 가벼운 문체, 그 이상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알레고리가 판화 작품들과 어우러진다.
돌아보면 살아온 시간들이 다 개연적인 것도 아니다. 독자도 그렇게 동의한다. 우연이란 게 삶을 결정 짓는 일이 한두 개인가? 또 그런 게 삶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 일을 왜 겪어야 했는지, 혹은 왜 그토록 비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찌 다 일일이 해명하고 살 수 없을 터다. 어쩌면 그 해명되지 않은 시간의 토대 위에 정립되는 의미들인지도 모르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먼 훗날에 해명이 되기를 바라고 살아갈 뿐이다. 아니 어쩌면 해명되지 않고 묻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불운을 통해 재정비한 시간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 불운이 아니었던들 내게서 가능하지 않았을 것들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불운조차 콘텐츠라고 말하는 저자의 깊은 뜻에 아직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의 기만과 세월의 장난으로 둘러가고 돌아가는 이 미로와 같은 여정이 그것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푸시킨의 시가 생각난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철학자 하이데거을 소환해 책의 성격을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철학자로 그의 존재론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존재를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의 존재, 즉 현존재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존재는 자기의 존재를 이해하고, 다른 것과 관계있는 '관심'으로서의 존재이며, 이 관심이 자기가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에 직면하여 유한적인 시간성 속에 있다는 것이 명확히 되어 본래의 자기를 깨닫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인 인간 존재는 '무'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그 존재 방식은 '불안'이라는 것이다. 이 불안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전체로서 나타나게 되는 결국 무매개(無媒介)로 전체로서 초월하게 되며, 일상성으로부터 탈각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의 존재 방식이 그가 말하는 '세계-내-존재'이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 성격을 이룬다고 이론을 정립한 실존주의를 확립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주제이기도 한, 일상성에 은폐되어 있는 비일상성에 관한 이야기, 그는 그것을 진리적 성격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너무 둔감해져 있는 타성의 시선 끝에 맺힌 일상성이 진리를 은폐한다는 것. 그런 일상성의 관성을 벗어나는 자각의 순간, 그전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낯설게 보기'가 가능한다는 것. 예술가 분들이 이런 일상 속에 숨겨진 비일상성을 찾아내는 경우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이 책이 그런 예술성을 담지한 단상의 기록들인지는 저자 스스로 품평할 일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 자리한 흔한 풍경과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일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해본 흔적들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부터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곤 한다. 때론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통해 깨닫는, 이미 모르고 있지 않았던, 그러나 미처 알지 못했던 그 평범한 진리라는 것. 파랑새를 곁에 두고서도,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1908년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희곡(독자 주).
저자의 말을 되씹어봐도 철학 지식마저 부족한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읽고 또 읽으면 저자가 말하려는 의미에 근처라도 접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어나간다. 10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단초를 발견한다. '하늘과 빨래집게'란 소제목에 달린 글이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기다려 낼 수밖에 없는 시간들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존재의미다. 당신이 유용해서 사랑하는 건 아닐 테니까. 아니 어쩌면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언제나 유용한 당신인지도 모르고..."
사주학에서 설명하는 인간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비등비등하다고 한다. 행운만 잇대는 사람도 없고, 불운만 덧대는 사람도 없다. 보다 큰 행운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때론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고, 때론 바다가 건네는 무료함 혹은 격렬함과의 싸움도 필요하다. 꺾이면 꺾이는 대로, 방황하면 방황하는 대로, 세상은 좌절과 방황 그 이후 ‘어딘가’와 ‘언젠가’에 우리를 위한 양분을 숨겨 두고 있다. 그도 꺾여 볼 만큼 꺾여 보고, 방황할 만큼 방황해 본 노력들이나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이며 시점이라는 것. 그로부터 열리는 미래도 있을 터, 새로이 시작될 미래가 깃들어 있는 오늘의 불운인지도….
그렇다면 인생 전체의 시간을 놓고 봤을 때, ‘불운’의 결론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불운에 관한 단상들을 모은 한 권의 책은, 그렇듯 불운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고민해 본 흔적들이다. 저자의 '불운'은 불운이 아니다. 불운은 불운을 아는 순간 불운이 아니다. 저자는 불운을 콘텐츠라고 책에서 이미 말했다. 그에게 닥치는 모든 불운은 이제 불운이 아니다. 매순간 불운을 인지한다는 것은 불운과는 거리가 멀다. 화가 제소정과의 콜라보를 이뤄 '읽을 많한 책' 한 권 썼으니 그는 이미 행운의 아이콘이 아닌가.
어느 순간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일단 최선을 다해 보며 매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거슬러 보다가도, 또 되어 가는 대로의 결에 따라 다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듯 불확실성은 모든 가능성이란 피로도이기도 하다.(p.302)
저자 : 민이언
작가 그리고 편집자. 안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겪고 가는 듯한 인생. 그러나 그 기억들을 꺼내어 글로 남길 수 있으니, 불운조차 콘텐츠다. 결국엔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내 경험적 자산이 되었다고 애써 위로하며, 이젠 되는 경우의 수들을 기다려 본다.
그림 : 제소정
때로 마음의 형상을 알 수 없어 끝도 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그 풍경과 서사를 그림과 글로 해소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생각중독자. 생각과 고민이 많다는 것이 불만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그 몰입을 즐기고 무의식을 끌어올리며 그 에너지를 창작에 활용한다. 자연스럽지만 조심스럽게, 과감하지만 유쾌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내가 행해온 삶의 위로를 건네고 싶다. 각자의 심리적 풍경 안에서 삶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풀어가는 재미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