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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모범생 ㅣ 특서 청소년문학 23
손현주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3년 전 대한민국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열풍에 휩싸였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 드라마였다. 작품 내 모티브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손치더라도 풍자의 대상이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점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신분인 귀족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과 이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코믹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의 단면을 과감하게 해부해 비판한 것이다.
이 소설 『가짜 모범생』도 청소년 성장소설이지만 스카이 캐슬의 일부를 확대해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관심이 컸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에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그들만의 세상이 그려지지만 이 소설에선 한 가정의 그릇된 교육열과 영재 쌍둥이형의 자살로부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좀더 세밀한 확대경이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소설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영재 코스만 밟아온 일란성 쌍둥이형 건휘가 성적과 스펙에 집착하는 엄마와 매일 다툼을 일으킨다. 어느 날 터질 듯한 스트레스를 안고 지내던 건휘가 큰 사고를 친다. 농구를 하다가 시비가 붙은 아이의 목을 조른 것이다. 아이가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 간 사이, 건휘는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날 밤, 엄마는 선휘의 방으로 찾아와 말했다. “선휘야, 형 대신 네가 그 애의 목을 졸랐다고 말해줄 수 있겠니?” 엄마는 ‘완벽한’ 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설령 동생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일이라 해도.
그러던 어느 날, 건휘가 죽었다. 건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 엄마의 집착은 선휘에게 옮겨간다. 형을 대신하는 것이 산 자로서의 도리라는 엄마의 집착에 선휘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답답한 속을 그나마 뚫어주는 것은 시원한 콜라. 정신과 치료는 진전이 없고,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던 중 같은 반 은빈과 가까워진다. 성적은 나쁘지만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은빈과 사귀며 선휘도 자유로운 삶을 점점 더 강하게 갈망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엄마의 집착과 선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선휘는 그 끝에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저자 손현주는 책의 끝 「창작 노트」에서 집필 이유와 바람을 밝혔다. "사람들은 ‘교육 학대’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대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기도 합니다. 『가짜 모범생』은 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학생의 인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꺼내보았습니다. 강요에 의한 교육은 아이들을 정신적 억압의 상태로 몰고 가 ‘분노 조절 장애’라는 내적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성적 지상주의, 경쟁이라는 단어가 가짜의 ‘나’를 만들어 분노를 차곡차곡 쌓이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발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좌절을 줍니다. 아이들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남에도 발견도 하지 못하고 성적이라는 환상에 매몰되어버립니다. 그 재능을 끄집어내주는 게 진짜 참교육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교육은 어느 나라나 백년지대계이다. 미래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교육을 통해 양산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그 믿음은 올바른 방향이고,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각국은 정부의 여러 부처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 예산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만의 수레를 짊어지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수레를 이끌고 살아가지만, 어느 부모는 자식의 수레에 올라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우리 아버지 이상의 세대까지만 해도 이런 성향이 굉장히 강했다. 자신들은 굶어가며 자식 교육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뒷돈까지 대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 부모 세대까지 그랬다. 실제로 자식이 공부를 잘해 사법시험에 패스하면 집안이 다시 살아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마을 입구에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현수막까지 내걸 정도로 큰일을 한 것이다. 이 탓에 청소년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꿈을 꾸지 못하고, 때론 부모의 꿈을 자신의 꿈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출세라는 대의명분에 가려져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현실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올바른 교육에도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청소년의 꿈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저자는 이를 ‘너를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말과 사랑, 교육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휘두르는 ‘교육 학대’라고 지적한다. 모든 아이들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모범생’이 되라는 보이지 않는 강요가 평생 아이의 재능을 매몰시킨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독자도 우리나라 산업화ㆍ민주화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입시의 훈련장이고 인격 도야나 민주주의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배울 시간이나 인격 수양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수학 한 문제라도 더 풀라고 다그쳤다. "그런 것들은 대학 들어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가 명분이었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곧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히던 시대였다. 남녀 학교도 엄격히 구분됐다. 여자학교 근처에는 남자학교도 없었다. 한눈을 팔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근대적 교육 시스템이었고, 일제 강점기 식 교육 행태였다. 우리도 민주화되기 전까지 조금씩은 변했지만 90년대 이전까지는 그런 교육 기조를 쭉 이어왔다. 대학 입시 때문에 '입시 지옥'으로 표현되던 시기다. 그러나 대학을 중심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이뤄지는 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교육 받는 세대는 그나마 민주주의 시대의 교육으로 다양한 사회 변화에 맞춰 세분화된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 지도층의 의식과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서울대 입학을 위한 치열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은 입시(그것도 서울대 목표) 중심으로 이뤄지고, 가능성이 없는 학생들은 1부 리그 편입조차 멀어지는 세습화되는, 또다른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1부 리그에 들어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그들만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이다. 그들의 리그는 법보다는 돈이나 권력이 앞서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맹수들의 싸움이 벌어지면 힘 약한 동물들은 근처에 가지 않는다. 날벼락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를 보고, 책을 읽으며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 현장을 다루는 성장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의 침착한 태도에 몸이 바짝 얼어붙을 것 같았다. 평소의 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형이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이게 말이 돼?”
내 말이 끝나자 엄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형을 비난했다.
“그 입 다물어! 형은 그저 화가 났을 뿐이야.”
엄마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평정심을 잃은 듯 목소리에 떨림이 심했다. 아빠는 출장 중이었고 형은 엄마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내 방에 건너온 건 형이 아닌 엄마였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선휘야, 형 대신 네가 그 애의 목을 졸랐다고 말해줄 수 있니?”
무섭고 끔찍한 소리는 엄마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믿을 수 없지만……. 처음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두운 밤이라 너랑 형을 구별할 수 없을 거야. 더구나 넌 모자까지 썼으니 아무도 모를 거야.”
엄마는 무릎이라도 꿇을 듯이 내 손을 붙잡으며 애원조로 말했다.(p.81)
저자 : 손현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