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스타그램
이갑수 지음 / 시월이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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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킬러스타그램』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신조어가 난무하고,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소통의 SNS와 사람을 죽이는 '킬러'와 합쳐 단어를 만들어내니 SNS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눈에 확 띄기도 하지만 약간의 불쾌감도 든다. 내용에 따라서는 SNS를 사용하지 말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표지 역시 도박에 주로 사용되는 '카드'에 각종 의미를 가진 그림들을 합성해 '살인'을 암시하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 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자세히 보지 않을 경우 평범한 '하트 K(킹) 카드'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의 얼굴부터 끔찍하다. 해골을 그려넣었고 심장을 상징하는 하트 도형에선 피가 뚝뚝 떨어진다. 마징가 Z 같은 로보트가 날아가는 모습과 비행기를 표적으로 격추시키려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그림도 있다. 이뿐 아니다. 교수형에 쓰일 듯한 교수대 행거(목에 감는 밧줄), 도끼 등 살인 도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소설은 설정부터 섬찟하다. 대대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 가족이 등장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고고학을 공부하는 할머니, 시부모님을 모시며 3남매를 키운 엄마,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는 삼촌, 검사 형, 의사 누나, 그리고 주인공인 '나'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이 가족의 일상은 평범해 보인다. 구성원 모두가 킬러라는 것만 빼면.

다시, 여기 한 가족이 있다. 독제사 '옹심이', 폭파 전문가 '꼬마', 살인 의뢰를 취합하고 배정하는 '마더', 사고사 전문 '미네르바', 저격수 '제니'……. 신라 말부터 대대로 킬러로 활동한 이 가족은 오늘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소설은 이 집의 막내이자 고등학생인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살인을 그만두겠다 선언하고 집을 나간 삼촌을 대신해 근접 살인의 기술을 연마하는 '나'는 살인에는 영 재능이 없다. 아니 살인은커녕 무술 자체에 재능이 없다. '나'는 삼촌의 합기도 도장에서 합기도를 배우며 부족한 재능을 꾸역꾸역 메꾸는 중이다. 과연, '나'는 훌륭한 킬러로 성장할 수 있을까.



킬러의 목적은 뚜렷하지만 사회적 공감을 받기 어렵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킬러 가족’. 얼핏 들어도 한참 생각을 해도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이들의 조상은 대대로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돕고, 종교를 전파하고, 교육기관을 만들고,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고, 은광을 채굴하고, 농사 기술을 발전시키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천 년의 실패 끝에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이런 모순된 말이 어디 있는가. 생명 경시인가, 아니면 '국가'의 은유인가. 이 소설에서는 대를 이어 사람을 죽이게 된 이 가족은 철저한 역할 분담과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인'한다. 할아버지는 독제사, 할머니는 폭파 전문가, 아빠는 자살 전문가, 엄마는 암기술 전문가, 삼촌은 근접 살인 전문가, 형은 사고사 전문가, 누나는 저격수…….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내 앞에 상자와 뚜껑이 있다. 나는 상자의 뚜껑을 닫아서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에게 건넨다.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서 내게 건넨다. 그러면 나는 다시 상자의 뚜껑을 닫아서 돌려준다. 맞은편의 누군가는 다시 상자를 열어서 돌려준다. 우리는 밤새도록 상자를 주고받는다. 나는 이 꿈에 「현대인의 삶 - 나의 삶」이라는 제목과 부제를 붙였다."(p.37)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 정의의 실현이 아니다. 킬러는 판단하지 않는다. 고로, 이념이나 대의를 위해 직접 제거 대상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저 의뢰를 받고,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하여, 죽일 뿐이다. 그들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죽음을 막기도 하고 정의를 실현하기도 하지만, 배다른 동생이 30명쯤 생기기 전에 아버지를 죽여 달라거나, 30년 전에 곗돈을 들고 도망간 계주를 죽여 달라는 사사로운 의뢰를 수행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것이 각자의 인생에서는 정의 구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킬러’와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재와는 별개로, 이 소설은 ‘통째로 바뀌지 않는다면 당장 가려운 부분이라도 긁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바람을 유쾌하게 실현해주고 있다. 이 소설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일 것 같다.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회를 왜 지속해야 하는데? 나는 고양이 키우는 게 꿈이야."(167p)



이 책은 헤겔의 『합기도 입문』이라는 가상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다양한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독특한 소재와 이갑수 작가표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자는 킬러 가족에게 도착한 다양한 의뢰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관한 여러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를 테면, 제니가 총을 쏠 때마다 부르는 포켓몬스터 이름과 국회의사당을 폭파하자 등장한 로보트 태권 브이 같은 것 말이다. 또한 헤겔의 첫 저작이었다는 『합기도 입문』,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헤겔의 무술 선생 ‘홍’, 종로구에 위치한 ‘아리투헤나 대사관’ 등 너무 진지하고 디테일한 묘사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 역시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세상이 뒤죽박죽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부조리와 유토피아가 겹쳐 상상되는, 현실에서 못 벗어나는 독자들 아닌가.

"학생들이 합기도를 배우는 이유는, 그들의 부모가 잘못 번역된 문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원래 원문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가 한 말인데, 정확히 번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가 된다. 풍자니까 당연히,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힘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이 썩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곳곳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p.61)



"형은 미래가 암울한 이 나라의 검사다. 예로부터 킬러들은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 의뢰를 받는 경우도 많았고, 직접 관직에 나가서 이용하기도 했다. 국가에 대한 정의는 관점마다 다르겠지만, 킬러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란 사람을 죽이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와 권한을 집대성해놓은 것이다."(p.69)

첫 줄부터 모순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일단 기가 찰 것이다. 잽으로 간을 보며 날아드는 모순에 좀 맞다 보면 그것을 파쇄해 주리라 기를 모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모순은 부수거나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발견되는 것이고, 이갑수는 예로부터 있는 그대로를 돌려보내 공격하는 합기 고수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에 킬러들을 보낼 수밖에. 다름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평화. - 우다영(소설가)

저자 : 이갑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편협의 완성』, 『첨벙』 등이 있다. 앤솔러지 『식스센스』에 참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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