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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평점 :
이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재밌게 읽으려면 세 개의 핵심어를 유의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쿠쉬나메'와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그리고 '처용'이다. 신라 시대의 향가인 '처용가'에 등장하는 인물 처용은 "신라 현강왕 때, 홀연히 한 사람이 기이한 몸짓과 괴이한 복색을 하고 임금 앞에 나아가더니, 노래와 춤으로 덕을 찬미하고 임금을 따라 서울(경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를 처용이라 불렀으며 언제나 달밤이면 시중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나, 끝내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당시 그를 신인(神人)이라 생각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그 일을 기이하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기록한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지만,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실제로는 당시 울산 지방에 있었던 호족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처용탈의 생김이 매우 이국적인 것과 『고려사』 악지에 기록된 처용의 모습을 비춰볼 때 그가 외국인일 가능성은 꽤 크다. 독자가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다.
또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Afrasiab Painting)는 1965년에 우즈베키스탄의 옛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발굴된 스키타이-소그드의 대표적인 예술 유적이다. 7세기 중반에 완성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쪽 벽화의 중앙 부분에서 고구려 사신들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사마르칸트 일대는 예전부터 실크로드 중개무역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라, 벽화에 그려진 차가니안등 각국에서 온 외교 사신들을 통해 당시의 외교상황을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 서벽에는 고대 한국인의 사신들을 중심적으로 보이고 있다. 벽화 속에선 고구려인 두 명이 확인돼 국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고구려 특유의 복식인 조우관(鳥羽冠, 새의 깃으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를 찬 모습이었다.
쿠쉬나메는 7세기 중엽 통일 신라 전후의 신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이다. 쿠쉬나메는 이슬람 이전 시기 영웅의 서사적 내용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서사시이다. 물론 구전 서사시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조선군들이 해전에서 일본군에게 역공을 가한 뒤, 일본까지 침공해서 일본을 정복한다는 내용의 임진록같은 서사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알 수 있는 건 당시 통일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서로 친한 동맹국이었거나 가까운 관계임과 동시에 서로 교류가 활발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쿠쉬나메는 신라인과 페르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라의 혼혈인인 페레이둔이 나중에 페르시아를 망하게 한 이방인 이슬람 왕조로부터 페르시아를 구하기 위해 이슬람 왕조로 쳐들어가서 그들을 모두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스토리도 임진록과 비슷하게 흘러가긴 한다. 쿠쉬나메에서 '쿠쉬'는 인명(人名)이며, '나메'는 페르시아어로 서적을 통칭한다. 따라서, 쿠쉬나메는 쿠쉬라는 주인공을 다룬 저서 즉, '쿠쉬의 책'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서사시가 도덕적이고 덕이 많은 정의의 화신인 영웅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쿠쉬나메의 쿠쉬는 폭압자이고 기이한 용모를 지닌 악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 점이 쿠쉬나메의 독특한 설정이다. 더욱이 쿠쉬는 한 이름으로 두 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편의 쿠쉬는 바그다드에 도읍한 폭정자 아랍의 임금님(Tazikan)으로 묘사되고 후편의 쿠쉬는 중국과 주변국인 마친(Machin)의 왕으로 등장한다.(위키백과)
이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신라와 페르시아의 오랜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페르시아, 곧 오늘날의 이란은 대한민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은 한국 경제발전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한국인들의 핵심적인 집단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저자는 어릴 때 이란 건설 책임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이란에 살았던 친구로부터 페르시아의 매혹적인 설화를 전해 듣게 되었으며, 그 설화가 소설 구상의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 이상훈은 테헤란로의 비밀을 밝혀낸다. 테헤란로는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설화는 옛날 페르시아 왕자의 이야기이다. 페르시아가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왕자는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놀랍게도 실크로드 동쪽 끝의 머나먼 나라, 신라(바실라)였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곳에서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 왕의 환대를 받으며 신라 공주와 결혼까지 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결국 페르시아 제국을 재건했다는 뒷이야기였다. 11세기경 이란의 대학자인 이란샤 이븐 압달 하이르가 편찬한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전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놀라운 설화에 얽힌 역사적 증거들을 차근차근 조사해 왔다. 역사 미스터리로 이미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소설가 이상훈. 그는 『한복 입은 남자』, 『제명 공주』, 『김의 나라』 등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장편소설들로 그는 역사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오랜 취재와 자료 조사를 거쳐 새로운 역사 미스터리 소설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1,400년 전, 신라와 페르시아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한 부분은 증거에 따른 고증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이야기다. 다른 한 부분은, 한국과 이란의 역사적 인연을 탐구하는 작가의 여정을 일종의 소설적 분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여기에는 한국의 여러 이란 연구자들은 물론, 민간 교류에 헌신해 온 여러 숨은 공로자들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 이 파트에서는 다큐멘터리 피디 안희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출생의 비밀이 그려진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두 파트는 서로 교감하며 한뜻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페르시아에 관련한 자료란 자료는 모두 섭렵하며,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에 기반해 소설을 구상하고 한편으로는 간명한 구도와 쉽고 명쾌한 문장들 속에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추론하고 또 상상했던 과거와 현재의 한국, 그리고 페르시아의 모습들을 밝혀낸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단선적인 가치관 속에 파묻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에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었음을, 그리고 페르시아와 신라인들의 개방성이 높은 수준의 문화적 성취를 이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매혹적인 미완의 이야기가 마침내 빼어난 한 편의 현대소설로 완성된 셈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소설의 구상과 자료 조사, 취재 및 집필 때까지의 자세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역사 전문가들이 퍽 괴이하게 여기는 신라 유물들이 있다. 왜 이게 여기에 있지?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령 신라 금관을 보자.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부근, 옛날에는 소그디아나(소그드)라고 불렸던 페르시아계 왕국의 자리에서 발견된 금관과 똑같다. 그리고 원성왕의 무덤, 일명 괘릉의 무신상을 보자. 코가 크고 눈이 깊으며 꼬불꼬불한 수염이 풍성한, 전형적인 코카서스인 남자가 터번을 쓰고 방문객들을 노려본다. 송림사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스타일로 세공된 유리잔은 또 어떤가. 상원사 동종, 경주 월지 입수쌍조문, 계림로 보검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실크로드를 건너서 물건만 왔다고 보기에는, 신라와 페르시아, 곧 이란과 한국의 인연은 범상치 않다. 저자의 느낌은 상상력을 더해 소설을 구상했고 집필했다.
대중적 인기는 물론 문학성 역시 인정받은 저자는 예전부터 이 미스터리에 주목해 왔다. 취재 결과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로 왔다는 역사 기록은 없었다. 이란에서 한국에 오려면, 천산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중국 대륙을 횡단한 다음 황해를 다시 건너야 한다. 또는 해로로 거대한 인도양을 뚫고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를 거쳐 남해로 들어와야 한다. 그 옛날에 이 먼 여정이 가능할까 의심했던 사람들은 페르시아 유물은 물론 이란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여러 증거들-삼국유사의 처용, 이란인들의 춤을 묘사하는 최치원의 시 등-도 오랫동안 무시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발견된 《쿠쉬나메》가 신라와 페르시아의 인연을 검증하는 데 크나큰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이것은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로맨스가 존재했음을 말해주는 서사시 기록이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작가는 관련 자료란 자료들을 모두 섭렵하며 이 로맨스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치밀하게 살폈고, 마침내 이 역사소설을 완성했다. 저자는 “역사소설은 역사적 팩트에 근거해서, 기록이 누락된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꾸거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작업이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소설에 딱 어울리는 작업이다. 앞서 살폈듯 공식적인 기록이 미비하지만, 유물이나 설화 등 기타 증거들은 아주 풍부하니까. 사실 기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사마르칸트에 방문한 한국인들-이들의 복식은 그들이 한반도의 왕국으로부터 왔음을 더없이 잘 말해준다-을 정확히 묘사한 벽화나, 둔황 석굴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된 혜초의 여행기는 신라로부터 페르시아로의 여행이 충분히 가능했고, 실제로 그 여행을 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작가는 그 길을 따르며 역사가적 진지함과 이야기꾼의 경쾌함을 환상적으로 조합하며 역사소설을 풀어나간다.
"사마르칸트에 온 신라의 사신은 젊은 화랑이었다. 십칠팔 세 정도의 어린 나이인 신라 사신은 새의 깃털을 양옆으로 꽂은 모자를 쓰고 칼을 차고 있었다. 칼은 신기하게도 손잡이 끝이 둥글게 되어있었다. 복장이 고급스러우면서도 단정했고 예의가 바르고 총명하게 보였다. 아비틴은 신라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p. 036,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중에서)
저자 : 이상훈
경남 밀양출생으로 마산고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 SBS 개국에 참여해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채널A 제작본부장으로 채널A 개국을 진두지휘했다. 그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글을 발표했다. 일찍이 방송계의 전설적인 스타 피디로 알려졌으며, 방송프로그램 연출과 대본을 직접 집필해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증받았다. 첫 에세이집 《고향생각》이 2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이어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 《유머로 시작하라》 등의 책을 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국민적인 관심 속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복 입은 남자》는 현재 미국 메이저 OTT 회사에서 글로벌 콘텐츠로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백제의 의자왕과 일본 여자 천황인 제명천황과의 사랑과 일본 탄생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두 번째 소설 《제명공주》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는 역사소설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일컬어지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김의 나라》는 드라마 판권계약이 체결되어 현재 드라마 제작이 진행 중이다. 수상경력으로는 한국방송대상, 한국프로듀서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상록회 대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류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