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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2020 도쿄올림픽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었다. 그것도 당초 예정보다 1년 늦은 올해 여름 강행 의지를 밝힌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무관중으로 올림픽 개최 의사를 밝히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것이다. 팬데믹 하에서의 강행은 선수들의 4년 동안의 꿈과 목표를 발휘할 무대를 위한 것으로 포장됐다. 한편으론 이해할 만하다. 우리도 서울올림픽을 치른 나라로서 준비 기간의 투자와 노력들을 잘 아는 만큼 선수들의 의지를 반영해 참가했다. 물론 이로써 도쿄는 두 번째 하계 올림픽을 치른 도시로 기록에 남았다.
이 책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2020도쿄 올림픽 준비 기간인 2014년 발표한 한 노숙자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일본 사회의 부끄러운 면을 정면으로 고발한 소설이다. 저자 유미리는 출간 이후 일본 국내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지만 영어로 번역되어 제71회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수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미리 작가는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이를 일본 문학의 쾌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며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1997년 소설 『가족 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후,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우익들의 살해 협박과 출판 금지 등을 겪으며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확립한 그였다.
소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우에노공원의 늙은 노숙자인 ‘가즈’를 주인공으로 1964년의 도쿄 올림픽과 2020년의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을 잇는다. 태어날 때부터 짊어져야 했던 가난, 첫 번째 도쿄 올림픽 공사현장에서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린 그는 다른 사람처럼 열심히 그리고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 삶은 비극의 연속이다. 타지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들에 이어 부인 역시 급사하는데, 이후 홀로 남은 자신을 걱정하는 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그는 도쿄로 올라가 노숙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빛과 소리가 가득한 도쿄의 한구석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노숙자들. 그들은 눈에 보이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눈에서 사라지면 쉽게 잊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이다.
처음 저자는 우에노공원 노숙자들에 대한 흥미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다. 캔을 주워 팔고, 박스로 만든 집에서 살며 버려진 음식을 먹고, 길고양이에게 곁을 내어주면서도 남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공원에서 쭉 살고 있지만 천황 같은 높은 사람이 방문하기라도 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강제 퇴거’해야 하는 그들을 취재하면서, 작가는 지붕과 벽이 없는 삶에 대해 쓰기로 결심한다.
"고무줄로 흰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여자는 옆에 둔 연지색 배낭 위에 올린 양팔을 베개 삼아 엎드려 자고 있다.
면면은 바뀌었고, 사람도 줄어들었다.
거품 경제 붕괴 이후 공원의 노숙자는 갈수록 늘어났고, 산책로와 시설이 있는 곳을 제외한 곳곳에 방수포로 만든 천막집을 지어 흙바닥과 잔디밭이 모두 가려질 정도였는데ㅡ.
황실 사람들이 공원 안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러 오기 전에는 '특별 청소'라는 명목으로 강제 퇴거가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텐트를 치우고 공원 밖으로 쫒겨나야 했고 해가 지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가면 "잔디밭 보호를 위해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세워져 천막집을 세울 수 있는 곳은 점점 좁아졌다.
우에노은시(恩賜)공원에 사는 노숙자는 도호쿠 출신이 많다.
북쪽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ㅡ, 경제 고도성장기에 도카와선이나 도호쿠본선의 야간열차를 타고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집단 취직으로 도호쿠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이 맨처음으로 내려서는 곳이 우에노역이었고 명절에 귀향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짐을 짊어지고 기차에 올라탄 곳도 우에노역이었다."(p.15~16)
그러던 것이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변화가 생긴다. 쓰나미와 원전 붕괴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재민들과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던 우에노공원 노숙자들의 아픔을 이어주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모두에게 개방된 우에노공원이지만 언제고 타인의 필요에 따라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노숙자. 동일본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방사능 오염을 이유로 모든 곳에서 거절당하는 후쿠시마현 이재민.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재일한국인. 유미리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기저에 자신들은 결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을 거란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처음 구상에서 탈고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후쿠시마로 거처를 옮겼다. 다년간의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리얼리티를 확보한 작가는 시대의 비극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사라지지 않는 소리와 축축한 내음은 이미지화되어 주인공 의식의 흐름을 따라 들어와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부흥 올림픽’의 이름을 내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웃듯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가의 ‘차가운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미리의 작품에는 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슬픔’이 배어 있다. 사라진 것들도 ‘울림으로서 남는다’고 믿는 저자가 다음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안겨줄지 기다려진다.
"작년 2013년에 도쿄올림픽ㆍ패럴림픽 개최가 확정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도쿄올림픽의 경제 효과가 20조엔에 달하고, 12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숙박ㆍ체육 시설 건설, 도로 등의 기반 정비를 앞당기고 고화질 텔레비전 등 고성능 전기기기나 스포츠용품 구입으로 국민의 저축이 소비로 전환되어 경기가 상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한편, 올림픽 특수가 수도권에 집중됨으로써 원자재 급등과 인력 부족으로 도호쿠 연안부의 복구가 더욱 지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관련 토목공사에는 지진 재해와 원전 사고로 집과 일을 잃은 아버지와 아들들도 종사할 거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이 담긴 눈으로 6년 뒤에 열릴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래서 더욱 저는 그런 시선 뒤로 아웃포커싱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감동'과 '열광' 너머에 있는 것들을ㅡ.(p.188~189,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유미리(柳美里)
소설가이자 극작가. 1968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뮤지컬 극단 도쿄키드브러더즈에 입단해 배우로 활동했고, 1987년 연극유니트 ‘청춘오월당’을 결성한다. 1993년 《물고기의 축제》로 기시다구니오희곡상 최연소 수상, 이듬해 첫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문예지 《신초》에 발표했으며, 1996년 《풀하우스》로 이즈미교카상,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다. 1997년 〈가족시네마〉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데, 자신을 우익 단체 소속으로 밝힌 남성의 협박 전화로 인해 사인회 행사가 취소되는 사건을 겪는다.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사회 비판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작가는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2014)을 통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다. 사회가 애써 외면한 불우한 이웃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건’을 표방한 2020년 도쿄 올림픽 준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일본 국내의 불편한 시선과는 반대로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제71회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는다.(번역: 모건 가일스) 이는 일본 작가로서는 두 번째, 한국 동포 작가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유미리 작가는 2015년부터 원전 사고로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불과 16KM 떨어진 곳에 이주해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역자 : 강방화
1977년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재일 교포 3세로 태어났다. 지금은 일한 · 한일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번역 강의도 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봄이 오면 가께》, 《종이 로봇 카미》,《똑똑하게 사는 법》, 《까만 크레파스와 하얀 꼬마 크레파스》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일본어 번역 스킬》(공저)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