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새겨진 장면들
이음 지음 / SISO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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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쓰기는 특별한 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직접 경험인든, 간접 경험이든 작가의 의식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 바탕이 된다. 경험의 기억은 상처가 깊으면 '트라우마'로 존재하고 좋은 경험일 경우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점이 과거라고 내용이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 기록이라도 남기는 이유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사용될 터, 당연히 내일을 위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 책 『내게 새겨진 장면들』 역시 저자의 마음속 깊이 새겨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다. 오늘의 시점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내일을 위한 기록으로 되새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 매일 경험하는 일상들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두 번째 책이니만큼 꽤 안정적 마음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만 과거지향적이 아니다. 과거의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과거의 장면을 꺼내들지만 거기에 빠져 있는 게 아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정리하고 성찰하는 재료로 기억한다. 물론 보다 나은 내일, 한걸음 성장을 위한 기록으로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몇몇 과거의 시간이 다가와 어렴풋한 기척을 남긴다. 긴 시차를 두고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아직 할 말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이, 남은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고 쓰고 있다. 이어 저자는 "나는 장소건, 시간이건 하나의 상태를 벗어나며 갖게 되는 특유의 시각이 있다고 믿는다. 시점이라고 해도 좋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한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도 시간과 장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내게 글을 쓰는 일이란, 이미 지나간 시간을 재감각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어제를 기억하게 하고 내일을 바라보게 하는 중간 매개자는 누구일까. 저자 자신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일까. 저자는 슬며시 독자에게 원인과 결과를 돌린다. 독자가 있어 저자 자신은 글을 짓고 있으면, 그 지은 글은 독자들이 당연히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다. 자신이 지나간 개인의 기억을 살려 독자들의 보다 나은 삶에 일부라도 힘이 되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잔잔한 일상을 살면서도 하루도 자신의 책에 대해서 조바심을 감추지 못한다. 많이 읽힐 수 있을까, 읽히지 않는다면 쓸 필요없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숙명이다. 그래서 초조한 감정을 하루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불안감이 유독 큰 날이면, 서점에서 읽고 있던 '내 책'을 사 집으로 돌아온다. 출판사에서 넉넉하게 보내준 책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만큼,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도 커져갔다. 매우 솔직한 고백이다. 아마 첫 책을 낸 이후의 경험을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안 되겠다 싶어 원고를 집필했던 장소와 첫 계약을 하던 카페, 내가 사랑하는 시인이 자주 들른다는 서점과 그 밖의 몇몇 곳들을 돌아다니며 책을 선물했다고 한다. 초조한 마음에 불안한 기억,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는 느낌으로 책이 읽히는 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당분간 그렇게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정말 '열심히' 뿌린 다닌 것일 게다.



글이란 게 쓰고 싶다고, 써야겠다고 쉽게 쓰여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작가라도 3년 걸려 한 줄 더한 분도 있다고 하니 작가의 글쓰기는 독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고통과 노력, 그야말로 사명감이 없인 해내지 못할 직업일 것이다. 독자도 아는 작가가 있지만 내색을 안 해 제대로 알 순 없지만 그의 표정으로만 살펴본다면 그의 의식은 늘 글에 가 있고, 지인들을 만날 땐 '또다른 자아'를 대신 내보낸 듯한 느낌일 때가 많다. 어떤 일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제안도 거절하지 않는다. 마치 영혼은 글 쓰는 데 가 있고 육신만 우리 앞에 있는 사람 같을 때가 부지기수다.

이 책 저자 역시 그런 고통과 노력이 있었기에 잘 읽히는 작가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선배는 회사를 떠나며 내게 작은 노트 한 권을 선물했다. 그녀는 그 노트엔 절대 다른 글은 쓰지 말라고, 네가 쓰고 싶은 말들만 적으라고 강요하듯 말했다. 노트는 여전히 밀봉된 채 덩그러니 놓여있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일이다."고 쓴다. 벌써 두 달 동안이나 글 한 줄 못 썼다는 말을 우회해 적었다.



"피로하고 긴 밤, 나는 녹취록을 5분 남짓 들어놓곤 온종일 유서만 썼다. 죽고 싶다는 말이 죽겠다는 말이 아니듯, 죽음을 염두하고 쓴 말은 실제 죽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말일텐지만. 삶의 범위 안에서 말하는 죽음은 결국 삶으로 되돌아 가고는 경유지가 되고야 만다. 나는 여태껏 관계의 밖을 떠돌며 외롭게 살아왔다고 믿어왔건만, 실은 편애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디로든 떠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덧없고 쓸쓸할 거란 생각을 한다."(p.32)

「새해에는 유서를 썼어요」란 글에 나타난 저자의 의식은 죽음을 만날 만큼 어디론가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더 이상 글이 안 나온다면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의 여행도 계획해볼 참이다. 꼭 죽음이 아니란 것은 '유서'란 표현을 쓴 만큼 죽음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저자의 사유의 깊이를 쉽게 짐작하지 못하는 독자로는 저자의 여행을 공감한다. 그가 더 좋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엔들 못 갈 리 없다. 그는 작가니까.



저자 역시 평범한 생활인이기도 하다. 익숙지 않은 타지에서, 쉽게 충동적ㅇ니 상태로 변하기도 한다. 마음의 기울기는 좀처럼 수평을 찾지 못하고 매번 한쪽으로 기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조금은 과감해진다. 평소 먹지 않던 음식 앞에서 망설임 없이 한 끼를 때운다거나, 면식 없는 인근 주민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보기도 하는 식이다. 독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저자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독자들 대부분은 혼자 여행 가서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기억은 다시 생각해 낼 때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준다.

"결국, 먼 타지에서 내가 깨닫게 되는 건 삶은 수렴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한 번쯤 기지개를 켜듯 삶의 선택지를 늘려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보통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겪고 난 후, 도리어 삶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까닭에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향한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삶의 가짓수를 넓히는 일이며, 어쩌면 이 인분의 삶을 사는 일인지로 모른다. 여지껏 인생이란 하나의 목적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여겨왔건만, 실은 임의의 장소로 끊임없이 불시착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p.35) 챕터가 바뀌고, 제목이 바뀌어도 저자의 의식의 흐름은 일관적이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저자의 글쓰기는 인상적이다.

저자 : 이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잘하지는 못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고 생각한다. 카레를 좋아하고, 한 노래에 꽂히면 반복해 듣는 버릇이 있다. 계절은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한다. 수많은 마음의 계이름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였던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낸 ‘당신의 계이름’으로 제3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동명의 에세이 《당신의 계이름》을 출간했다. 함부로 연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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