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 이석연의 이집트 터키 인문 탐사 기행기
이석연 지음 / 새빛컴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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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부분이 선진국인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 개발도상국인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의 충돌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어쩌면 이슬람교가 태동한 7세기부터 대립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충돌을 빚어왔다. 특히 양측의 세(勢)가 비슷했던 중세에는 십자군전쟁으로 세게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큼 격렬하고도 오랜 기간 충돌했다. 8차까지 200년에 걸친 극도의 소모전이고 문명의 충돌이고, 종교 전쟁이었다.

로마 제국은 예수 탄생을 전후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서로마 제국 멸망(AD 476)을 거쳐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AD 1453)되기까지 1500년 동안 유럽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 멸망부터 동로마 제국으로 명맥만 이어온 채 아시아 문명과 섞인 독특한 비잔티움 문명을 일으켜 발전했으나 동로마의 멸망으로 로마란 명칭은 이탈리아 도시 로마 이외에서는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영토를 넓혔던 이슬람 문명인 오스만 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이 책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으로 로마 제국 세력 못지 않은 지역에 세를 뻗쳤던 터키 지역의 탐사 기록이다. 현대의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염두에 두고 두 문명의 화합의 단초를 발견할 목적으로 이 지역을 여행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이집트와 터키 유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전문가들과 만나 견해를 구하는 등 적극 탐사 활동을 통해 이해를 높였다. 이후 현장에서의 사색과 이집트 문명과 터키의 이슬람 문명이 인류에 끼친 영향에 대한 사유를 더해 글로 남긴 것이다. 이집트 고대 문명의 놀라운 업적과 오스만 제국의 정신 문명과 유적들이 후손에 남긴 인류에의 선한 영향에 대한 많은 지식과 지혜를 더했다. 저자는 이집트로 출발하기 전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의 현장을 보러온 것이지 현재의 이집트를 보러온 것이 아니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첨단과 역사를 모두 품고 있는 두바이에서, 5,000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역사는 반드시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카이로에서, 느낌표이기보다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한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에서, 세계 최대이자 최고(最古)의 고고학 유적지인 룩소르에서, 이집트 왕국 3,000년 역사상 가장 번영의 시대를 이끌었던 람세스 2세의 숨결이 깃든 아부심벨에서 살아있는 역사인 이집트가 가진 문명의 속자락을 하나씩 나열한다. 때로는 풍광을 바라보며 생각나는 그대로를 읊기도 하고, 때로는 고대문명의 위대함 앞에 한동안 자리에 서서 빠져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마치 독자 자신이 여행 간 것처럼 생생하게 현장이 전개됨을 느꼈다. 저자의 현장 전달감과 글솜씨가 마치 독자가 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면 대단한 글솜씨라 아니할 수 없다.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서의 느낌과 사진, 여행 탐사지에서의 해당 문명 전문가들과의 만남, 기본적인 저자의 사전 지식과 문명 연구에서 얻은 지혜가 모두 동원돼 깊은 사유를 담은 이집트ㆍ이슬람 문명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다.

5,000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의 터키를 여행하며 그곳에 깃든 신화, 인물, 그리고 문화의 소산들이 차례로 독자에게 전해져 온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는 이 책을 여행기라 하지 않고 '여행 명상록'이라 말한다. 왜 그랬을까? 저자인 이석연 변호사는 이미 잘 알려진 독서광이자 여행광이다. 이미 경지에 이른 그의 인문학적 소양은 여행기의 격을 높이고 글쓰기는 독자에게 쉽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알고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느끼는지에 따라 독자들에게 미치는 여행의 맛과 의미가 전달되는 양은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는 법이다.



저자의 여행 일정에 따라 시선을 옮겨본다. 내몽골 고비사막의 모습은 여전히 황량하고 광활하다. 비행기 조그만 창문 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황토빛 사막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비행 고도도 높지 않아 그곳을 지날 때면 아래로 펼쳐지는 동네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산맥과 사막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터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자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이즈미르(실제로 미인이 정말 많고 성경에는 '서머나'로 알려졌다)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에페스(Efes)란 곳으로 간다.

고대 이오니아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예술과 과학, 학문이 꽃을 피웠던 곳이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이곳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들이 파피루스에 남겨진 채 발견되기도 한 곳으로 '태양은 매일 아침 새로우며 언제나 움직인다'와 '삶이란 장난치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철학적 명언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베르가몬 도서관과 더불어 고대 3대 도서관에 속하는 켈수스 도서관이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로마 아시아 집정관인 켈수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도서관 정면에는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여성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 거대한 건축물 안을 가득 채운 파피루스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되게 하는 광경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철학적 향유를 즐기던 그때의 학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로마 문명, 기독교 문명의 터키의 한 단면이다.



잠시 터키 이곳저곳을 읽던 저자는 어느새 오스만 제국으로 눈을 돌린다.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 제국의 문명의 찬란함에 잠시 취한다. 저자는 지금껏 배웠던 서양의 시각이 아닌 제 3자의 객관성을 가지고 접근해본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의 지식과 사뭇 다르다. 우리의 세계사관은 서양 중심이었다. 아마 미국의 사관이 우리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껏 우리는 서양이 공격하면 정복이나 위대한 승리이지만 동양(훈족, 몽골족, 오스만 등)이 공격하면 찬탈이나 파괴가 되는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바라봤다. 우리가 오스만 튀르크라고 부르는 오스만 제국을 정작 터키인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은 튀르크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 관용의 정신이 살아 있는 국제성을 띤 제국이었다는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오스만 제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에서 칼이 폭력적 포교 도구가 아닌 신의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사실은 독자의 지식의 얄팍함에 놀란다. 특별히 다른 민족이나 종교인 가운데 우수한 인재를 뽑는 청년 징병제인 '데브시르메(Devshirme)는 오스만 제국의 관용성과 국제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보인다.



오스만 제국은 점령지 내지 통치지역의 주민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기아와 빈곤을 다독여 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통치 기간 동안 보여준 관용적인 통치는 다민족, 다종교 정치 제제의 모범적인 통치 스타일로 꼽힌다. 최근 아프간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미국에서도 이슬람의 관용의 통치에 대한 연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이어 저자의 안내는 계속된다. 우리와 같은 알타이 문화권인 터키는 형제 국가로 진한 민족적 동류의식을 느끼는 곳이다. 인류문명의 살아있는 희망이자 인류 문명의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이스탄불은 터키 여행의 백미이며 누구든 이스탄불을 한번 방문하기만 하면 그녀(이스탄불)가 끌어들이는 매력에 빠져 심하게 열병을 앓는다고 한다. 저자 역시 열병을 앓다가 6년 만에 해후했다고 하니 그곳을 가본 사람에게 이스탄불은 다시 해외여행이 풀리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될 곳이 아닐까 싶다.

트로이와 카파도키아, 그리고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의 저자인 호머의 고향 이즈미르에 이르기까지 터키 여행은 역사 회고와 사색으로 가득 차, 독자들에게 입체적 정보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데 한몫을 차지한다. 이 책을 읽는 보람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 : 이석연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중학 졸업 6개월 만에 고졸학력검정고시 전 과목에 합격한 후 곧 금산사(심원암)에 들어가 2년간 5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전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제23회)와 사법시험(제27회)에 합격한 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서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그 사이 육군 정훈장교로 3년간 전방 철책부대 등에서 군 복무를 했다.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법제처장(제28대)을 역임했다.

변호사로서 주로 공익소송을 맡으면서 시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제1호 헌법연구관을 지낸 그는 30년 넘게 헌법연구와 헌법소송에 전념하면서 30여건의 위헌결정을 이끌어내 한국사회를 바꾸었다. 대표적 1세대 시민운동가로서 경실련 사무총장(제4대) 시절 시민단체의 권력화, 초법화(超法化), 관료화 등을 경계한 바 있다.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헌법포럼’ 대표, ‘책 권하는 사회운동본부’ 대표로 활동 중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독서광(chain-reader)인 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저서를 냈다. 저서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 사기 산책》,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함께 길을 가다 (공저)》, 《헌법 등대지기》,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 《헌법과 반헌법》, 《헌법은 상식이다》,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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