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야 겨우 가치를 깨닫는다. 독자도 그렇다. 나름대로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솔직히 '좋은 그림'과 '평범한 그림'의 구분을 아직도 잘 하지 못한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열정적으로 그림이 좋아서 전시회에 갔다기보다 교양의 일부라고 생각해 마지못해 함께 참여하는 수준에서 가다보니 감상법도 제대로 모른 채 '전시회에서 좋은 시간 보냈다'는 자기 만족감에 불과했음을 고백한다.

코로나 이후 전시회가 크게 줄었지만 핑계대고 대부분 빠지다가 어느덧 전시회 간 지도 1년 반이 넘어간다. 다만 코로나 이후 미술에 관한 책이 많이 쏟아져나온 것은 잘 알고 있다. 전시회에 안 가는 대신 책으로 보는 것은 훨씬 늘었다. 직접 본 적이 있는 작품들이 책에 자주 실리기도 해서 익숙하다보니 슬슬 읽기만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에피소드 위주의 책이 많았다. 또 독자의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주제와 소재가 자주 채택돼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아서 흥미거리가 되고 미술 상식도 조금씩은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또 어떤 책은 서양미술사를 통째로 표방하고 많은 상식을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감상법도 싣고, 그림의 감상 포인트도 짚어주는 등 매우 열성적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늘려간 데 크게 기여하는 것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낸 모든 분들께 이 기회에 감사드린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미술 속의 철학을 함께 배울 수 있어 좋다. 설명도 독자처럼 초보 수준이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미술과 더 어렵다는 철학이 만났는데도 어렵게 엉키지 않고 두 분야를 더 쉽게 대할 수 있도록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한 부분은 보통의 글솜씨가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빠지게 하는 매력적인 글쓰기가 미술과 철학 두 가지를 함께 잡고 내친 김에 글쓰기 실력도 늘릴 수 있는 문장이 많다. 한 번 더 읽게 되면 필사도 해볼 생각이다.

저자 이진민의 이력을 보면 미술과 철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을 했다. 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정치철학'을 공부한 게 미술과 철학 공부의 전부인 것 같다. 그래도 그에게는 박사학위까지 받고 아이 엄마까지 해내는 '수퍼 우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글공부는 언제 했는지, 박사 학위는 무슨 학문인지, 그림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저자 자신이 밝히지 않는 한 알 수도 없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책에 더 집중하면 될 일이다. 출판사는 저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술관에 ‘놀러 가는’ 철학자가 있다. 십 대에 떡볶이집 드나들 듯, 이십 대에 술집 드나들 듯, 미술을 전혀 모른 채 미술관에서 놀던 그는 그림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좋은 ‘스위치’임을 깨달았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미술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철학이라는 집에 불을 밝혀주는 책이다. 저자가 그 집에서 하려는 것은 ‘놀이’다. 어떤 그림에 철학적 해석을 정답처럼 붙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도구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실컷 펼쳐볼 수 있는 놀이. 하나의 작품을 눈에 담는 순간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우주가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른바 '철학적 사고방식'이다. '정답 사회'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울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바라보며 ‘신은 죽었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니체를 떠올리는 일 같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변주돼온 ‘정의의 여신’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서 왜 정의는 여신이 담당하며 그 여신은 어째서 안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엉뚱해도 좋고 발칙해도 좋고 틀려도 좋은 이러한 생각의 꼬리들이 이어지는 것 자체가 철학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다 철학자라고, 그럴듯한 교양이나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저자는 ‘철알못’ ‘미알못’들에게 다정히 손 내민다.

“정해진 답을 기를 쓰고 찾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로, 또 답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획기적으로 늘려내는 철학자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저도 노는 겁니다. 같이 놀아요.”(서문 중에서)

 


 

저자에 따르면 철학이 어렵고 지루한 이유는 논의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을 “모호하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벽돌 삼아 쌓아가는 논리의 성”이라고 정의한다. 벽돌 자체도 쥐기 어려운데 그걸로 엄청난 성을 쌓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그 성에 들어가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의 이러한 장벽은 소통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철학은 학문이기 전에, 한 인간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므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철학과 무관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얘기가 아닌데 우리가 학창 시절 괜히 어렵게 외웠던 철학의 인물과 개념들이 ‘그림’이라는 매개를 만나 완전히 새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하나의 작품을 미술사적 논의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토대로 자유롭게 해석한 다음 그로부터 연상되는 철학적 개념을 특유의 위트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천장화 〈천지창조〉를 보다가 문득 아담의 ‘건방진’ 자세에 주목한 다음, 신이나 종교와 필연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던 철학의 역사를 짚고, 그 가운데서도 ‘신에게 도전하기’ 종목이 있다면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를 소개한다. 모두 이 책에서 연이어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글을 끌어가는 솜씨가 얽히고설키기 십상인 이 문제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에 감탄까지 더한다.

 


 

또 쌓여 있는 책을 그리는 전통이 있었던 조선시대의 ‘책거리’ 작품들을 소개하며 서양 원근법에선 느낄 수 없는 기묘한 구도와 아찔한 긴장감,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과 조화에 집중한다. 이 균형과 조화는 다양한 사상이 폭발적으로 만개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서로의 사상을 발전시키며 함께 성장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철학의 역사 역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의 역사”임을 다시 강조하며, 샤갈(Marc Chagall)의 그림 〈나와 마을〉에서 ‘시선의 마주침’을 강조하기 위에 눈과 눈 사이에 그려 넣은 흐릿한 선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그렇게 상대의 눈을 보며 그리는 투명한 선들이 그물처럼 세상을 덮으면 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포근한 곳이 되지 않을까. 세상은 그렇게 우리 시선의 방향과 높낮이가 다양해서 더 아름답다고 믿는다.”(p.70) 저자의 표현이나 사용한 단어를 보면 쉽고, 전문용어도 없이 일반적인 생활용어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도 동서고금 종횡무진하며 적절한 비유와 함께 설명을 잘한다. 감탄을 넘어 감동될 정도다. 생각이 자유롭기 때문일까, 해박한 지식 때문일까. 독자로서는 저자의 설명에 큰 매력과 함께 그림, 철학 하는 기본 정신부터 글쓰기 실력까지 엿보고 따라 배우고 싶다. '쉽게 글쓰기'의 모범으로 필사하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집필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정치철학자 이진민은 오래 전부터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학계의 소수를 만나는 삶보다는 일상의 다수를 연결하는 삶을 선택한 그의 ‘다정함’은 이 책의 곳곳에서 돋보인다. 청량한 여름 빛을 담은 유리병 그림을 앞에 두고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 :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에 의문을 표하며 “내 안에 담고 있는 것이 썩어가지는 않는지, 그 안에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잘했으면 잘한 대로 세상에 투명하게 드러내는것”이야말로 성숙한 인간(특히 권력자)의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17세기 유럽 왕족과 귀족의 사치품이었던 거대한 태피스트리(벽이나 가구를 장식하기 위해 색실을 짜 넣어 모양이나 그림을 표현한 직물 공예)를 만드는 데 10~12세의 ‘가늘고 말랑말랑한 여린 손끝’이 동원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나이키 공장에서 시간당 200원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제 3세계 어린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때로는 우리가 미술관에 ‘감탄할 준비를 하고 간다’는 점이 우리의 눈을 가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다정한' 철학자라더니 '따뜻한' 마음이 생각나는 엄마 품속 같은 느낌이다. 독자는 엄마 품속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잠들 때까지 조용 조용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엄마의 자장가' 같은 느낌의 그림 설명과 감상에 관한 책을 꼭 간직할 마음이 더욱 커질 것이다.

 


 

"니체는 모든 사람에게 위버멘쉬가 되라고, 아이가 되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허물고 부수고 또다시 쌓는 행위를 무한히 반복하며 즐거워한다. (…) 아이들에게는 아직 내세의 개념도 초월자의 개념도 희박하다. 아이들을 위한 예쁜 그림책을 만드는 한 작가님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슴에 들어와 박힌 그분의 말이 있다. 아이들은 “지금을 사는 존재”라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금을 사는 존재, 그들이 바로 위버멘쉬다."(p.283)

 

저자 : 이진민

 

사 남매, 딸 딸 딸 아들 중 눈치 없이 셋째 딸로 태어나 책 탐 많은 아이로 자랐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싶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맥주를 콸콸 마시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만, 가끔은 이 산이 아닌가 보다 싶은 나폴레옹의 마음을 느꼈다. 그러다 정치철학을 만났고 이거다 싶었다. 정치사상에 깊이 발을 담그며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멜론 장학금을 받으며, 그리하여 또 맥주를 마시며 정치철학을 전공했다.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에, 학계의 소수를 만나는 논문보다는 일상의 다수를 만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에 박사와 엄마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움켜쥐고 살았다. 젖을 물리며 안에서 깜빡이는 아이디어들을 황급히 메모했고, 아이를 재우며 둥둥 떠오르는 문장들을 더듬더듬 적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쓰고 싶었던 첫 책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현재 독일 뮌헨 근교 시골 마을에서 두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아직도 가슴속에 쓰고 싶은 책이 다섯 권쯤 들어 있어 행복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