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포이트리
좌용주 지음 / 이지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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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이란 이름의 교과목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주일에 1시간씩 일년간 배웠다. 입시 문제에도 출제가 됐고 그래서 학교 교과목에도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 입시 준비를 하는 2~3학년 때는 수업 시간이 없어진 것으로 기억돼 입시에 중요한 과목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독자에게도 신기한 것을 많이 배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지구에 관한 구체적인 것은 설령 배웠다 하더라도 기억엔 거의 없다. 입시에 자주 출제되는 정도만 겉핥기식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수학 미적분보다 실생활에 훨씬 가까운 학문이었던 것 같다. 태풍이나 지진, 화산 폭발, 기후 이상 등도 그때 많이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지구의 나이를 비롯, 지질, 대륙의 형성 등 사회 생활에 화제가 되는 부분들을 많이 배웠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처음 배우는 새로운 학문이라는 점과 함께 신비로운 점이 많아 기억에도 오래 남은 것 같다. 태양계도 '물리'보다는 '지학' 시간에 더 많이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우주에 관심이 있었던 친구들은 따로 과학책을 찾아보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천체물리학' 등의 제목에 쓰여 있었다. 독자는 신비로운 점은 많다고 느꼈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아 따로 책을 본 적은 없다. 더 이상의 지구과학과의 인연은 맺지 못했다.



지금 인류는 지구 이외의 태양계 행성은 물론 더 먼 우주로까지 관심을 갖고 새로운 발견을 해나가고 있다. 만약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경우 어느 행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환경 조건인가도 연구하고, 실제 탐사도 달뿐만 아니라 화성, 목성까지 나아가고 있다. 인간은 왜 우주로 나가고 싶어할까? 왜 다른 지성체의 존재를 궁금해할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탐구해왔다. 심해를 보기 위해 잠수함을 만들기도 했고, 지하의 층상구조와 지구의 진화를 살피기 위해 땅속을 파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외계에 인간과 같은 지성체가 존재하는지, 인간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현재 인간이 알고 있는, 생명과 지성체가 사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품은 유일한 탐구 대상이다. 최근에 지구과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이 책 『지오포이트리』는 평생을 지구과학 연구에 매진해온 과학자 좌용주 교수(경상대학교 지질과학과)가 최신의 지구과학을 소개한 책이다. 지구의 탄생과 변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의 생명의 출현과 진화를 살펴보면서 외계 행성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지, 외계생명체는 존재하는지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제목은 지구과학과 시(詩)가 합쳐진 단어인 것 같다 아마 아름답고 우아한 지구를 공부하는 의미로 붙인 제목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가정하면, 대륙을 움직인 ‘판의 이동’은 0시 31분 3초부터 일어났다. 인류가 11시 58분 58초에 출현한 점을 감안하면 지표의 변화는 아득하게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0.0009초 전, 지난 1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설명하는 판구조론이 등장했다. 이 과정은 물론 순탄하진 않았다. 판구조론이 탄생하기 전인 20세기 초,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대륙이동설’을 통해 땅덩어리가 분리되어 지금과 같은 분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고, 지질학자 해리 헤스가 해저확장설을 통해 해저의 지각이 확장해서 대륙을 분리시켰다고 설명했다. 둘의 설명은 지금 들어도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얼토당토않다.

이는 해저확장설을 주장한 헤스도 마찬가지였는지, 자신의 가설을 ‘지오포이트리’, 즉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둔 지질학 이야기라고 표현했다.(이 부분에서 시적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지오포이트리라고 추측했던 독자의 상상은 깨졌다) 하지만 이후 고지자기학의 발전으로 이야기에 불과했던 가설들은 판구조론이라는 이론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방대한 규모의 얘기가 쉽게 머릿속에 잡히지 않으니 시계판을 놓고 설명하자니 너무 잘게 쪼개져 감이 쉽게 잡히지 않은 것은 이래 저래 마찬가지다. 미적분으로 다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학문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지구과학은 그 방대한 시공간적 규모 때문에 실험으로 증거를 찾거나 반론을 제시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어떤 설명들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그치지만 어떤 주장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해석방법의 등장으로 더 오래 살아남기도 하고, 나아가 이론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지금의 지구과학도 마찬가지이다. 21세기가 되어 이전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증명해내기 어려운 문제들이 쌓여있다.

이 책 『지오포이트리』는 현대 과학의 틀 위에서의 지구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설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저자는 지구상의 생명체는 탄소를 기반으로 하며, 단백질이 주 구성원이라고 밝힌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다. 아미노산은 실험을 통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지며, 우주에도 고분자 화합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원시지구에선 아미노산을 발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미노산이 흔하다고 하여 생명 탄생이 쉬웠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생명의 탄생 조건에는 ‘자기복제 기능’과 ‘효소로서의 능력’이 필요하다. 자기복제를 해야 유전 정보를 옮길 수 있고, 효소 작용이 가능해야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단백질 월드 가설과 DNA 월드 가설은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되었다.





최근에는 여러 물질이 섞인 잡동사니 월드에서 무작위로 생긴 고분자 물질 중 일부가 해당 조건 중 한 가지를 충족하게 되고, 다른 기능을 가진 분자를 이용해 RNA 월드를 만들었다는 가설이 등장한 상태이다. 비록 가설의 타당성을 위해서는 더 조사해야겠지만 모든 조건을 만족한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설명임은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급격한 오늘날,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11시 58분 58초에 태어난 인류가 단기간에 지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넓게 봤을 때는 찰나의 변화에 불과하다. 인류가 수천만 년을 살지 않는 이상 인류의 영향은 무시될 것이며, 짧게는 4억 년 후 태양의 변화로 야기되는 이산화탄소의 감소, 산소의 감소와 온도 상승으로 인해 지구 생태계는 없어질 운명이다. 결국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외계생명체 탐색과 행성의 생존 적합성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바로 이것이 과학의 한 분야로서 지구과학이 시간이 갈수록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우리에겐 흔한 돌이 지질학자들에겐 소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발에 채는 돌이 수천만 년~수십억 년의 기록을 품은 귀중한 자료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돌로부터 지구의 조성을 알 수 있고,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달에서 가져온 돌인 월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달은 위성이라고 하기에는 유독 큰 크기 때문에 한때 쌍둥이 천체다, 태평양에서 빠져나왔다 등의 소리를 많이 들었던 위성이다. 지구는 어떻게 달을 위성으로 갖게 되었을까?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계속된다.

달의 형성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가설이 존재했다. 크게 세 가지로, 분열설, 쌍둥이설, 포획설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가설은 현재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의 기울기나, 지구 암석 분석을 통한 구성 물질의 유사성과 물리적인 특징을 설명하지 못하여 폐기됐다고 한다. 달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충돌설'이 나왔다. 기술이 발달하고 아폴로계획을 통해 달의 암석 시료를 가져와 분석하게 되면서 달과 지구 맨틀의 화학 조성이 유사함을 알게 되었고, 이로부터 과거 원시행성 간의 충돌로 인해 지구로부터 달이 형성됐다는 설명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 설명도 순탄하진 않았으나, 최근에 마그마 바다(magma ocean) 상태에서 충돌 후 지구의 물질로부터 달이 형성되었다는 설명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줌으로써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달과 지구의 암석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설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생명의 탄생과 달의 형성처럼, 이 책은 지구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기록들을 토대로 지구의 과거와 현재를 밝히고 미래를 예측하는, 지구과학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과학 교양서로 이 책은 가치를 발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의 역사에서 나왔던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한 번에 보여주고, 그중에서도 최근 과학의 성과에 부합하는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주로 설명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 교양서로서 가능성부터 시작하는 이론의 발달 과정과 과학 전 분야의 통합적인 사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엄프로브는 지질학자를 역사가에 비유하였고, 불완전한 사료로부터 역사를 재구성하는 어려움 속에서 상상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나중에 모순적인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폐기할지언정 과학적 산문의 잃어버린 행간에 대해서는 서사적 영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하략, p.13)

이런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최근에 제시되었는데, 지구-달 물질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거대충돌 모델이 발표된 것이다. (중략) 거대충돌설에 의한 달의 형성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몇 차례의 거대충돌을 거치면서 발생한 엄청난 충돌에너지로 말미암아 원시지구의 상당 부분이 녹아 마그마 바다를 이루었을 것이며, (중략) 이 무렵에 다시 지구 질량의 10분의 1 정도의 천체, 즉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한다.(하략, pp.75~77)




지구의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바다의 표층에서는 1차 생산(독립영양생물에 의한 유기물 생산)이 늘어나게 된다. (중략) 그리고 플랑크톤의 배설물과 사체 같은 유기물의 양 또한 증가하고, 바닷속을 떠다니다 서서히 가라앉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눈 내리는 것 같다 하여 마린 스노우라 부른다. 이런 유기물들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 용존산소가 소비되는 것이고, (중략) 이런 결과가 바로 해양무산소 사건이다.(하략, p.336)

태양은 앞으로 더 뜨거워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다. (중략) 첫 번째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사량이 증가하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이 결과는 두 번째 변화인 산소농도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진다. (중략) 지금으로부터 약 15억 년 정도 후에 지표면의 온도는 100℃를 넘게 된다. 지구에서 생명이 사라진다.(p.390)

저자 : 좌용주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 지질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1992년부터 경상대학교 지질과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거 중생대 유라시아대륙에서 일어난 화성활동과 남극과 북극의 지질에 대해 연구했다. 경상대학교 기초교육원장과 한국지구과학 올림피아드 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암석학회와 한국지구과학회에서 학술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고고학과 관련된 지질학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우수과학도서 저자상을 수상한 『가이아의 향기』를 비롯해, 『테라섬의 분화, 문명의 줄기를 바꾸다』 『베게너가 들려주는 대륙 이동 이야기』 『윌슨이 들려주는 판 구조론 이야기』 『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공저)』 『지구과학 개론(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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