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로 떠난 7인의 옥천 청년들
고은광순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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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난해 11월 7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집중한다. "정부가 오는 12월 ‘실미도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12월 10일 출범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1호 사건으로 실미도의 재조사를 추진 중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실미도 사건을 최우선으로 조사하도록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한 뒤 해산한 이후 10년 만에 독립 기구로 재출범한다.

중앙일보는 실미도 부대 공작원의 위령제가 열린 8월 하순부터 이달 7일까지 16회에 걸쳐 실미도 사건을 재조명했다. 1960년대 말 냉전 속 남북한이 극도로 대립하던 시기 국가에 의해 감금당한 채 인권을 유린당하고 끝내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건의 실체를 알리고 희생된 청년 30여명의 한을 달리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본지는 2006년 발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보고서를 근간으로 정부의 비공개 문서(국방부 내부 업무보고서 등)와 실미도 사건의 주요 관계자를 추가로 취재해 보도했다.

본지 보도 과정에서 1971년 8월 서울 대방동 총격전 당시 생존 공작원 4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암매장된 장소가 새로 드러났다. 김중권 전 공군본부 검찰부장은 인터뷰에서 “공작원 4명을 사형한 후 서울 대방동에 묻었다”고 증언했다. 또 공작원 4명이 사형을 선고받고도 상고를 하지 않은 것은 군 관계자들로부터 “상고를 포기하면 베트남전에 파병시켜주겠다”는 회유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제 유족들은 “12월 출범할 진실화해위원회가 생존공작원 4명의 암매장지를 발굴해 시신을 돌려줄 것”을 간절히 촉구하고 있다."(이하 생략)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던 '실미도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었다.



100년 대한민국 영화사 중 최초로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는 무시무시한 폭력배들의 범죄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바로 장면이 전환되고 살인범, 흉악범 등 막장인생들은 쪽배를 타고 실미도로 입성한다. “실미도 부대원=살인범, 흉악범” 이야기는 영화 제작자들이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스토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실미도 사건”의 진실의 일부이기도 했다. 영화를 본 국민들은 전율하면서도, 끝내 ‘사망’한 부대원들이 모두 살인범이나 흉악범, 깡패라는 당국의 발표를 받아 쓴 보도 ‘사실’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막장 인생이고 사회 해악자들이니 그들의 희생을 굳이 안타까워하거나 정부를 비방할 이유는 없었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자위했다.

그러나 2000년 전후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혀낸 진실의 일부는 경악을 금치 못할 사안의 연속이었다. 그것마저 진실의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지만. 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믿을 수 없는 추악한 이면을 감추고 있었다. 영화 〈실미도〉는 1999년 출간된 백동호 씨의 『소설 실미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저자 백동호 씨는 1988년 감옥 안에서 만난 실미도 훈련병(이었다고 주장하는) K씨에게서 실미도 훈련병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K씨가 아니었다면 소설 실미도나 영화 실미도 역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실미도로 떠난 7인의 옥천 청년들』의 저자 고은광순은 우연히 실미도 사건을 전해듣다가 그들 중에 7명이나 옥천 청년이었고, 그들은 ‘흉악범이나 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농촌 청년이자 모두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저자가 옥천으로 귀농한 지 9년 만의 일이고, 옥천을 배경으로 한 동학 소설을 쓴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이 소설이 ‘동학혁명’이라는, 1894년의 사건을 다룬 반면, 옥천 청년들의 이야기는 불과 50년 전의 일이었고, 그 유족들이 모두 한을 품은 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지금-여기'의 역사였다. 한 동네에서 7명의 흉악범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 의혹을 가진 것이다.

사건의 배후를 파고들수록, 경악스러운, 추악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던 저자는 이 사건은 크게 본다면 한반도의 분단 현실이 낳은 비극이었으며,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약소국가, 독재 정부하의 국민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사태의 전형적인 사례 중의 하나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범위를 우리나라로 좁혀 본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저지른 잔인한 국가폭력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옥천 귀촌 9년 만에 '옥천 청년'들을 통해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 독재자들이 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묻어놓은 '지뢰'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유도 발파할 때마다 그들이 감추어 두고 위장해 놓은 더러운 엄호물들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추악한 몰골을 드러냈다. 박정희와 차지철 등 '비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자들이 미국의 후원으로 한국 현대사에 더러운 뿌리를 내리고 썩은 기둥을 세웠다. 그것에서 자라난 비정상 정치, 비정상 경제, 비정상 국방, 비정상 언론, 비정상 검찰과 사법….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비정상적인 언론 행태, 그리고 괴물이 되어 버린 사법부의 행태 등의 뿌리 혹은 근원은 일제강점기라는 더 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 전쟁과 이승만의 극우 반공정권을 거쳐 박정희 시대로 온전히 계승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더욱 더 증폭되어 왔으며, 바로 그러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것이 바로 ‘실미도 사건’과 그 이후 이야기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주장한다.



사람들이 흔히 관심을 갖기 쉬운 실미도 내에서의 훈련 과정에 대해 이 책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실미도에서, 그리고 중앙청으로 향하던 길에서 희생되어 간 실미도 부대원들은 훈련 교관의 직접적인 대우나 그들을 막아선 군경의 총탄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귀태’라고 부르는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러한 귀태 정권을 탄생시키고 지지한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만들어 낸 희생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들어가면서 오늘, 여전히 분단의 현실 위에서 전 세계적인 규모로 진행되는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극복해 나가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을 멈출 수가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 길은 역사라는 집합적 단위의 일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무게에, 국가나 정권의 무게에 개개인의 인권이 결코 저당잡히거나 부당하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국가의, 역사의 무게는 ‘폭력’이 되어 개개인의 삶과 가치를 여지없이 잣밟기 때문이다.



저자 고은광순은 이 책의 집필을 위해 7명의 청년들의 삶의 터전인 충북 옥천을 샅샅이 훑다시피 하며 취재를 거듭하여 그들의 생전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냈다. 이 책 1부에서 그리는 그들의 삶은 사실 그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취재에 근거하고 또 그만큼 생생하기도 하다. 그것은 실미도 부대원들의 신상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왜곡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삶의 무게는 ‘국가’라는 이름으로도 결코 무시하거나 짓밟을 수 없는 것임을 강변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고은광순은 이들의 희생이 단지 이 일을 현장에서 실행한 실무자들의 문제나 하나의 부당한 독재정권의 불법적이고 무능한 일처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냉전 또는 열전 속에서 벌어진 일이고, 특히 미국의 대 한반도 전략에 따라, 그들의 입맛에 따라 전개되는 한반도의 정세 변화 속에서 어처구니없게 희생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이 소설은 개인에 대한 국가 폭력의 고발 보고서이자 소설이며, 그 배후에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국지 분쟁에) 미국이 어떻게 개재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물이기도 하다. 독자는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실미도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우려를 갖고 있지만 저자의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그의 결론과 각오를 무시해서도, 폄훼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올해로 50주년이 되는 실미도 부대 사건 당시, 한 마을에 사는 친구들인 옥천 출신 청년 7명이 부대원 모집책의 거짓 선전에 속아 실미도 부대원이 되었다가 결국 비극적으로 희생된 사건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역사로, 옥천 출신의 청년 7명의 성장 과정을 소설(1부)과, 이 실미도 사건의 역사적 배경, 한미 관계는 물론 베트남 전쟁과도 깊숙이 관련된 부분에 대한 저널리즘적 해부,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무책임하고 불법적인 실미도 부대 사건의 처리 과정과 은폐, 왜곡 그리고 실미도 사건 현장 최후 생존자인 4명의 사형 과정을 낱낱이 국민들에게 보고한다. 모쪼록 현 정부에서 다시 진상규명이 시작되었으니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 : 고은광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나 군사 정권을 겪는 동안 두 차례 제적되어 졸업하지 못하고 뒤늦게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한의원을 차린 이후 아들 낳는 약 처방에 목매는 사람들을 보며 여아낙태, 여성차별의 원인이 되는 호주제를 폐지시키기 위해 큰 힘을 쏟았다. 2008년부터는 명상 공부를 시작했고, 동학 혁명의 본거지였던 충북 옥천군 청산면으로 우연히 가게 된 뒤부터 동학의 역사에 눈을 뜨고 『해월의 딸 용담할매』등 여성 동학

다큐 소설 13권을 발간했다. 이 과정에서 ‘무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평화어머니회’를 만들고 1인 시위를 비롯한 평화운동에 나서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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