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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먼저입니다 - 관계의 안전거리에서 자기중심을 찾는 바운더리 심리학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 지음, 신혜연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9월
평점 :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동물의 왕국'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영국 BBC 방송이 오래 전 시작해 타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그램 제작사(예 :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의뢰해 방영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동물의 왕국은 말 그대로 지구 상의 모든 동물의 생존 투쟁과 습성 등 동물의 삶을 담은 다큐 프로그램이다. 어린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인들도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다.
이때 많이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영역'이다. 생태계 상위층 포식동물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영역관리에 힘쓴다. 타 포식동물이 침입해 자신의 먹이 동물을 잡아 먹으면 자신이 먹이가 줄어들고 생존에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즉 영역관리는 생존투쟁의 일환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동족이든 타 포식동물이든 침입을 허용치 않는다. 영역 관리를 위해 포식동물들은 타 동물들에게 경고의 표시로 자신의 배설물 등 냄새를 묻혀 놓아 접근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하루종일 순찰(?)하듯이 침입자에게는 생명을 빼앗는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포식동물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여기서 예를 들긴 조금 안 어울린 듯해 주저하지만 인간의 폭력 조직들도 그들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해 침입해 들어오는 타 조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양의 유명한 갱스터나 일본의 야쿠자 조직 등은 물론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의 한결같은 습관이다. 영역을 빼앗기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들이 말하는, 영업을 돌봐주고 받는 활동비가 자신들의 영역 안의 영업장으로부터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직 유지에 쓰이는 돈을 그런 식으로 거두어들인다.
물론 인간세상에서는 불법이다. 그러니 폭력 조직들이 조직을 꾸려 돈을 걷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은 그들이 관리하는 영역을 지키는 대신 타 조직의 영역에 침입하지 않는 것은 서로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더 큰 조직을 만들기 위해, 조직원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구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직간의 싸움이 불가피하다. 동물들의 영역 관리와 다를 바 없다. 그들도 그렇게 '영역'을 관리한다. 일본 야쿠자 조직에서는 '나와바리(영역)'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일본 전국시대 전쟁 중 무장(武將)들이 방어와 함께 가신(家臣)들의 주거지역 확보를 위하여 쌓은 성내의 일정한 구역을 말한다고 한다.
이 책 『나는 내가 먼저입니다』는 '바운더리(boundaries)'란 표현을 쓴다. 미리 밝히지만 앞서 언급한 동물들이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영역이나 조직 폭력배들이 돈을 걷기 위한 일정 지역을 말하는 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경계와 영역이란 의미는 같지만 성격 자체가 바운더리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자신이 지키는 일정한 선과 영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일절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의식과 정신, 그리고 습관 등을 자신을 위해 행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개인의 삶과 무너진 관계를 바운더리 설정을 통해 재구성하도록 돕는 안내서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심리치료사인 저자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는 14년간의 상담 사례와 심리학 이론, 인지행동치료를 바탕으로 나와 타인 사이의 적절한 경계선, 즉 ‘바운더리(boundaries)’를 설정하면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부터 불안, 우울, 분노, 번아웃 등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다고 언급한다. 상대방을 신경 쓰느라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 요구에도 거부하지 못하며, 선을 긋는 일에 죄책감을 느낄수록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고 피로감이 누적되어 마음의 문제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저자는 건강한 관계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중심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늘 당신이 우선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은 사람과 사람의 물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비자발적인 ‘인맥 정리’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소통의 결핍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의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 삶이 편안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2명 중 1명이었다. 10명 중 6명 이상은 개인 시간이 늘어 더 좋다고 저자는 조사 연구 결과를 밝혔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으로부터의 자유’가 절실했는지 모른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서로 상처주지 않고 존중하는 무해한 관계의 ‘안전거리’를 찾아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바운더리 연습’이 필요한 시기라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이 책에서 ‘바운더리’란 안전하고 편안한 인간관계에 필요한 ‘적당한 기대’와 ‘정당한 요구’를 말한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직장과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가장 안전한 거리가 무엇인지, 자신을 중심으로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방법부터 바운더리를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법, 미안해하지 않고 거절하는 대화법 등 보다 균형 있는 삶을 위한 명확하고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여기에 각 챕터마다 주어진 질문을 통해 나를 둘러싼 관계를 돌아보고, 나의 진짜 욕구를 찾는 소중한 시간도 주어진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PART1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가장 현명한 선택, 즉 바운더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해하고, PART2에서는 가족, 친구, 연인, 동료, SNS 등 나와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바운더리 설정의 실전을 다뤘다. 가족과 연인은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대상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거절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진정한 독립은 바운더리에서 시작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착한 딸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나쁜 딸이 되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의 방문을 벌컥 여는 부모가 아닌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녀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한 연인이 헤어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인 잘못된 의사소통을 다루며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대화법을 알려준다.
바운더리는 관계 내에서 용인할 수 있는 행동과 없는 행동을 구분하게 해준다. 명확한 기준이 생기면 관계 내에서의 역할이 분명해지고 과도한 일을 떠맡지 않는 안전장치가 된다. 상대방에게 역할에 따른 자연스러운 기대감이 생기면서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바운더리가 세워지지 않을 때는 필연적으로 자기 세계와 관계가 무너지게 된다.
이 책에서 바운더리리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상대방과의 사이에 선을 너무 가까이 그어 경계가 모호한 허술한 바운더리, 선을 멀리 그어 관계의 단절을 야기하는 경직된 바운더리, 적절한 안전거리로 서로의 삶에 침범하지 않는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다. 싫은데도 괜찮다고 말하거나 금전적 여유가 없는데도 의무감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허술한 바운더리의 예다. 허술한 바운더리가 건강하지 못한 친밀함으로 이어진다면 경직된 바운더리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로서 타인과 거리를 두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벽남, 철벽녀와 같이 엄격한 규정을 두고 예외를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바운더리는 단순히 관계를 선 긋는 개념이 아니라 자기 축을 만드는 과정이다. 저자 역시 이와 같은 관계 문제로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했으며 바운더리 심리학으로 극복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진정 어린 조언들은 그동안 심리서를 읽어도 일상에 변화가 없던 공허한 위로에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바운더리를 설정한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단단하게 지킨다는 것! 이제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감정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자처럼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 큰 도움이 기대된다.
저자 :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Nedra Glover Tawwab)
심리치료사이자 관계 전문가.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학위를 취득하고, 가족 및 연인, 불안장애, 어린 시절 정서적 방치를 경험한 성인 대상의 심리상담교육을 이수했다. 그룹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심리상담소 칼레이도스코프카운슬링(Kaleidoscope Counseling)을 설립해 건강하고 안전한 관계에 필요한 ‘바운더리(boundaries)’를 만들고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심리치료사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에게 상담받기 위해서는 1년 전에 예약해도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빠르게 소통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주 공개 상담과 Q&A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110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