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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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문학에 과문(寡聞)한 독자는 요나스 요나손 작가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북유럽의 현대문학을 처음 접해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른 작품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창문 넘어 ~』가 워낙 인상 깊어서인지 독자의 기억 속에는 그 작품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저자가 워낙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어서 특별히 더 기억 속에 저장된 것 같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작품은 전 세계에서 1,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 작품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라선 요나스 요나손이 이번에 장편소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출간했다. 요나손은 이전까지 4편의 소설로 전 세계에서 모두 1,6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열풍을 일으킨 작가다. 다섯 번째 작품인 이 책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역시 출간되자마자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독일에서는 한 달 만에 책이 매진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역량은 놀랄 만하다. 요나손 특유의 문체와 말맛을 그대로 살리기로 정평이 난 전문 번역가 임호경이 번역해서 열린책들에서 번역본을 펴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사는 빅토르는 교활하고 위선적인 미술품 거래인으로, 비열한 방법으로 아내의 재산을 빼앗고 이혼한다. 또 창녀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 케빈을 죽이려고 케냐 사바나에 데리고 가서 버린다. 케빈은 원주민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의 구조를 받아 마사이 전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성인식에 할례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기겁하여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우연히 빅토르의 전 아내 옌뉘를 만나게 된 케빈.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복수를 꿈꾸는데,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복수를 대행하는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CEO 후고다. 후고는 양아들을 찾아 케냐에서 스웨덴으로 건너온 올레 음바티안과 함께 두 사람을 위한 복수를 계획한다.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복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웃에게, 학창 시절에 체벌을 가한 교사에게, 내 아이를 징계한 축구팀 코치에게 우리는 응당 복수심을 품는다. 이 마음을 해소해 주는 대가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유럽 최고의 광고맨에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CEO가 된 후고는 복수 대행업을 시작한다. 이 인물은 15년 차 기자, 직원 2명에서 100명으로 성장한 미디어 기업 대표의 이력을 지닌 작가 요나스 요나손을 떠올리게 한다.

 


 

요나손은 이웃과 갈등을 빚고 있는 친구에게 복수 계획을 짜주다가 이 작품을 착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복수가 지닌 창의적인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복수 계획을 짜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는 복수담을 풀어놓는다. 그만큼 복수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 의뢰하고 싶은 사연과 실현 가능한 복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게 윤기 없고 무기력한 일상이 통통 튀는 유쾌함으로 살아나게 된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현대 미술〉이다. 그간 현대 예술에 관한 안목과 애정을 드러내 온 요나손은 이번 작품에서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으로 꼽히는 이르마 스턴을 조명해 낸다. 18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일계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스턴은 아프리카의 인물, 풍경,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후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표현주의를 접하고 자신만의 색채를 완성한 스턴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인물의 내면을 살피는 신비로운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그림 3점이 책에 수록되었다.

 


 

이르마 스턴(1894~1966)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미술 교육을 받고, 당시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의해 탄압을 당하던 표현주의 미술가 막스 페히슈타인과 교류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럽 유대인 공동체의 전통과 현대 미술의 발달에 영향을 받으면서,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색채를 완성한다.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색감과 이국적인 모티프로 가득 차 있다. 생전에 그녀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가을에 무르익은 배들이 풀 위에 떨어지듯 이미지들이 내 무릎 위로 떨어져 내렸어요."

이르마 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 모델을 개성적 주체로 인지하고 묘사한 최초의 백인 화가로 평가된다. 표현주의 화풍으로 대상을 과장하거나 변형해서 그리기도 했는데, 이런 예술적 수법은 소설 속 인물을 개성화하는 요나스 요나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히틀러의 예술 탄압과 그로 인한 표현주의의 개화, 즉 이르마 스턴의 생애가 한 축을 구축한다. 그와 더불어 네오나치즘을 표방하며 인종주의와 혐오주의에 빠진 스톡홀름의 미술품 거래인 빅토르가 시공간을 초월해 한 축을 이룬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은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른다는 인식이 두 인물의 행보에 깃든다. 여기에 더해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흑백 논리의 범람, 포퓰리즘의 도래에 대한 요나손의 유머러스한 통찰이 빛을 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복수를 의뢰하는 한국인의 출현까지 대륙을 넘나드는 그의 유쾌한 국제 감각 또한 여전하다. 요나손은 다채로운 캐릭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건, 세계사에 대한 감춰진 교훈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없이 솟아나는 유머라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는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거장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꾼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핵심 키워드 두 개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번역가 임호경은 「유쾌한 기분으로 조금 더 분투하기」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요나스 요나손 문학에서 두 개의 키워드를 꼽는다. 〈웃음〉과 〈자유〉다. 웃음은 요나손을 세계적 베스트 셀러 작가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라고 언급한다. 그의 텍스트는 폐부 깊은 곳에서 수십 년 묵은 찌꺼기까지 올라오게 하는 짜릿한 웃음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옮긴이는 또 표면적 이유인 웃음 이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자유'를 꼽았다. 옮긴이에 따르면 혹자는 요나손이 그리는 세계가 조금 허망하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만나고, 좋아하고, 증오하고, 성공하고, 망하고, 죽는 일들이 조금은 우연하고 어처구니없게 일어난다. 한마디로 꽉 짜인 필연성이 없다는 주장을 옮긴이는 일축한다. 옮긴이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바로 그것이 오히려 요나손 문학의 가치이고 잘 읽히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옮긴이는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꽉 짜인 필연성에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필연성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 어떤 책이나 소설 혹은 영화에나 존재하는 허구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허구에 집착함으로써 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만 하고,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만 하고, 사회와 역사는 어떠한 고귀한 이념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답답해하고 억울해한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맹목적인 가치와 이념과 욕망에 옥죄여 있다. 그런데 요나손의 피식피식 혹은 아하하 웃게 만드는 장면들은 바로 이런 족쇄 같은 틀이 우습게 깨져 버리는 순간들이다. 바로 이런 '허탈한' 장면들에서 알 수 없는 시원함과 홀가분함이 방출된다. 거기서 우리는 카타르시스와 힐링을 얻는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천진하게 킬킬대고 깔깔댈 수 있다는 것을? 옮긴이의 지적은 과연 요나손 전문가답다. 옮긴이의 말에 귀 기울여 그의 소설을 들여다보니 요나손의 약간은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어떻게 우리의 기분을 유쾌하게 전환시켜 주었는지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저자 : 요나스 요나손(JONAS JONASSON)

 

어느 날 기상천외한 소설을 들고 나타나, 인구 천만의 나라 스웨덴에서 120만 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요나스 요나손. 그는 1961년 스웨덴 벡셰에서 태어났다. 예테보리 대학교에서 스웨덴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으며 졸업 후 15년간 스웨덴 중앙 일간지 『엑스프레센 』 에서 기자로 일했다. 1996년 OTW라는 미디어 회사를 설립해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의사의 말에 돌연 회사를 매각하고 20여 년간 일해 온 업계를 떠나기로, 〈창문을 넘기로〉 결심했다. 요나손은 스위스로 이주한 뒤 오랫동안 구상해 온 소설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세계적으로 1천만 부가 넘게 판매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다.

2020년 발표한 다섯 번째 소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엉망진창인 세상에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이들의 모험담을 그린다.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는 복수극과 물고 물리는 그림 쟁탈전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유머러스한 통찰이 펼쳐진다. 요나손의 소설 4종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입담과 유쾌한 풍자가 돋보인다.

 

역자 : 임호경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8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화재의 색』,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공역), 『카산드라의 거울』, 조르주 심농의 『갈레 씨, 홀로 죽다』, 『누런 개』, 『센 강의 춤집에서』, 『리버티 바』, 『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로렌스 베누티의 『번역의 윤리』,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파울로 코엘료의 『승자는 혼자다』, 기욤 뮈소의 『7년 후』,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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