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예술가들 - 스캔들로 보는 예술사
추명희.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발칙한'이란 단어 때문에 짐작컨대 스캔들을 다룬 책이다고 생각했다. '발칙하다'는 말의 뜻이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흔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생각이나 시선이 일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하는 사람들의 사물이나 사람, 자연을 보는 시선이나 생각은 일반인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그 무엇이 예술과의 관계는 입증할 수 없지만 예술인들의 삶이나 사랑 등에서도 흔히 나타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말이다.

“예술은 그 자체보다는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말이다. 또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e)의 말의 뜻도 맥락을 같이한다. 예술사를 꽃 피운 천재 예술가들의 사랑을 들춰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예술가들에게는 화제거리도 안 되는 일일지 몰라도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스캔들마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은 천재 예술가들. 우리는 그들을 교과서 속에서, 또는 전시회에 걸린 액자 속 그림 속에서만 바라봤다. ‘예술가’라는 이름표를 떼어 낸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뒷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궁금할 뿐만 아니라 더 광기 어리고 더 비이성적이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이 책 『발칙한 예술가들』은 음악사와 미술사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서양 예술사에 길이 기억될 업적을 남긴 30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유명세의 대가로 루머에 시달린 비발디, 금지된 사랑을 꿈꾼 라흐마니노프, 사랑과 사람 사이에서 방황한 고흐까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본 예술가들의 생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발칙한'이라고 썼다. 앞서 말한 대로 '막된' '광기 어린' '비이성적인'이란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그들의 업적은 위대하지만 삶도 위대하지는 않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정도란 게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생각이다. 물론 현대의 기준에서 그렇다.

 


 

삶이 평범하다고 사랑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빚어낸 사랑 이야기는 화제가 되기도 하고, 간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의 농도만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게 독자의 독후 감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오히려 그 굴곡에서 진한 인간미를 자아내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또한 그들의 작품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들의 사랑이나 삶에 대해 자세히 몰랐던 독자 역시 이젠 그들의 작품도 무지한 눈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고뇌와 사유와 철학과 그리고 사랑이 녹아 있는지 한 번 더 쳐다보고 듣고 싶어질 것이다. 이 책이 평범하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베토벤, 모차르트, 다 빈치, 피카소 등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들은 길게는 몇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보고 들었을 그들의 작품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남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들의 시간이 녹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책 속에서 만난 그들의 사랑과 삶, 연인에 얽힌 이야기들은 때로는 자극적이고 때로는 매혹적이다. 그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덧없고 알량한 관계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방식을 쉼 없이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묘한 거리감도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불완전한 면면과 인간적인 고민이 오히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들이 피워낸 예술이라는 꽃이 이러한 폭풍 같은 분투 속에서 자라났음을 깨닫고 나면 그들이 남긴 명작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 같다.

한 권으로 음악사와 미술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비발디로 시작해서 호크니로 끝맺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서양 예술사의 큰 줄기를 모자람 없이 훑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이 손끝까지 와 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음악 작품과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QR코드를 수록했다. 명작과 함께하며 그들의 사랑과 인생을 더욱 깊이 향유해 보자. 딱딱한 초상화와 빛바랜 사진 속에 갇혀 있던 예술가들의 민낯이 선명한 빛깔로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은 추명희(음악부문), 정은주(미술부문) 두 저자가 각각 따로 써서 합쳐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음악 부문에는 비발디, 모챠르트, 베토벤, 리스트, 바그너, 차이콥스키, 푸치니,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근현대 천재적인 음악가 15인의 사랑이야기가 소개된다. 미술부문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잔, 로댕, 뭉크, 고흐, 피카소, 달리, 프리다, 워홀 등 15명이다. 이들은 부인과의 연애할 때와 결혼 생활의 로맨스, 또는 연인이나 일방적 사랑도 있고, 불륜(우리가 아는 불륜과는 다소 의미가 다른)도 있다. 그러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역시 가장 마음을 잡아 끌고 관심이 더 가는 것은 독자가 일반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드뷔시가 남긴 음악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눈물이 고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프랑스의 대표 작곡가이자 인상주의 음악을 이끈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p.Achille Debussy, 1862~1918)는 수많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가 쓴 연애편지들은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나는 지금 당신을 강렬하게 사랑해요’라고요. 그리고 ‘내일은 다른 여자를 사랑할 거예요. 그것이 내 사랑의 방식이거든요’라는 마지막 문장을 빼먹은 채로요.(p. 129)

 


 

빛과 색채에 미쳐 있었던 모네. 그는 카미유의 장례식 날에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점점 변해가는 얼굴빛을 포착하고는 그 자리에서 이젤을 펼치고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절친한 친구 르누아르는 무슨 짓이냐며 당장 멈추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는데요. 모네는 “내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해준 것이라곤 오직 그녀를 그림 속에 담아준 것뿐이었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려주고 싶네”라며 눈물을 훔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 〈죽어 있는 카미유〉의 우측 하단에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사인이 새겨져 있는데요. 클로드 모네 이름 끝에 깃발처럼 혹은 꼭 붙잡은 풍선처럼 하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검은색 하트입니다.(p. 203)


프랑수아즈가 결국 피카소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그 누구도 나 같은 남자로부터 떠날 순 없어!”라고 광분했고 그녀의 대답은 “과연 그럴까?”였습니다.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정말로 떠나버리자 피카소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후 프랑수아즈는 피카소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 《피카소와 함께한 삶》을 펴내는데요.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이 책이 출간되자 피카소는 난생처음으로 모욕감과 패배감을 느꼈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됩니다. 반면 프랑수아즈는 막대하게 거둬들인 책의 인세로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피카소라는 성을 물려주고 유산 상속까지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정 투쟁을 승리로 이끕니다.(p. 258)

 


 

저자 : 추명희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현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톱클래스)’, ‘정은주의 클래식 수다(올댓아트)’, ‘정은주의 클래식 음악 여행(네이버 여행판)’, ‘정은주의 발칙한 클래식(네이버 연애결혼판)’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부산MBC의 클래식 라디오 방송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 ‘정은주의 스위트 클래식’에 출연하고 있다.


저자 : 정은주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신인 작가 발굴 프로젝트 <넥스트 페이지 2기> ‘지적 즐거움’ 부문 선정 작가(2019)로, 영국 현악 매거진 <스트라드> 한국판,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에서 일했다. <톱클래스>, <레이디경향>, <문화공간>, <객석>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하며, 문화와 사람에 대한 글을 썼다. 선화예중·예고와 단국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앤솔로지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우연한 사랑 필연적 죽음’의 공동 저자다.|||칼럼니스트. [월간조선], [톱클래스], [더 트래블러] 기자로 일했다. 미술 작품 애호가로 꾸준히 컬렉션을 모으고 있다. 현재 도곡동 소재 이탈리안 레스토랑 ‘레아’ 대표이며 서강대학교에서 문학사와 정치학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언론학석사를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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