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날다 -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
은미희 지음 / 집사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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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동남아 각국을 침략하면서 군 사기 진작 목적으로 위안소 설치를 결정하고 위안부 제도 실시한다. 위안부는 피지배국 피침략국의 나이 어린 소녀들이 대상이었다. 강제 침탈된 조선의 소녀들도 '취직'을 미끼로 강제 공출했다. 외교적 표현으로 '공출'이지 강제 연행이다. 침략 전쟁이 실패로 끝나자 전후 책임이 있는 일본은 반윤리적 위안부 제도를 부인했다. 군사적 침략뿐만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징용 및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내용을 감추려고 했던 것. 그러나 피해 위안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증언에 나서자 일본도 한 발 물러섰다. 강제는 아니고 자의로 들어온 사람들이고 급여도 제때 지급했다는 주장이었다.

설득력이 없는 데다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 각국에서 증언해 일본의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국제 사회 여론이 악화되자 이번엔 한국의 경우 1965년 한일청구권협약에 따라 이미 배상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의 개인 배상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최종 판결하자 박근혜 정부 때 맺었던 약 100억원(10억엔)의 일괄 배상으로 끝났다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배상금이 목적이 아닌 위안부 할머니들이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자 묵살했다. 1965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 전 일본 아베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외교 장관끼리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이때 등장한 외교문서에 '불가역적 협정'을 맸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독자는 외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국가간 외교에 '불가역적 협정'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 봤다. 가능한 일인가 지금도 의심스럽다. 국제 협정에서 '불가역적' 사안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이를 한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일본은 우리와는 이웃 국가여서 그런지 유독 많은 분쟁이 있어 왔다. 특히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등은 우리나라의 존속 여부를 위협하는 중대한 침략 행위여서 용서받지 못할 짓임에도 여전히 우리를 잘 살게 해준 선진국으로서의 은혜 (철도 가설, 발전소 설치, 공장 가동 등) 운운하며 앞뒤 안 맞는 주장만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얼마 전 비밀 해제된 미 국방부 기밀문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다.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던 소녀 20여명이 일본군이 패주하며 방치한 소녀들이었다. 당시 문서는 미군 장교가 상황발생 보고 문서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래도 일본은 여전히 케케묵은 허위 주장만 계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럴수록 악랄한 침략국이었다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이란 허구의 사실을 있는 일, 일어날 수 낭처럼 쓰는 예술 행위다. 이미 일어난 일을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실감나게 꾸미는 역사 소설도 있다. 또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로포도 있고,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의 구성으로 꾸민 다큐 소설도 있다. 이 책은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실에 대한 허위나 숨김이 있는 경우 이를 자연스럽게 재구성한 것은 철저히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쓴 작가 은미희도 취재나 자료 수집에 굉장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터 실상에 독자들이 다가가기에 훨씬 쉬워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나비, 날다』는 일본 제국에서 식민지 조선 소녀들을 거짓 꾀임과 강제로 공출하여 위안부로 살게 했던 참담한 기록이다. 『Flutter, Flutter, Butterfly』라는 표제로 미국에서 영문판으로 먼저 출판되었다고 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몇몇 뜻 깊은 지사들의 헌신으로 한글판이 나오기 전에 2016년에 영문판이 빛을 보게 되었다. 2021년이 되어서야 많은 분들의 모금으로 한글판이 나오게 되었다. 책을 쓰신 저자의 결단과 미국에서 영역을 맡은 안영숙 씨, 일본인들의 정치적 방해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출판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이상원 박사 등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관계한 많은 분들의 수고로 작가를 통해 빛을 본 이 소설이 사실을 바로 인식하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에 나오는 하루코. 춘자(春子). '봄의 여인'이란 뜻의 이름 하루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세상, 봄.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고 아름답고 환희에 넘쳐 나는 봄. 그 봄의 세상은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나에게는 어둠이 되었고, 지옥이 되었다. 그 시절의 이름, 하루코. 지우개로 지우듯 그렇게 지나간 내 생을 지우고, 나를 소거하고 싶다. 하지만 하루코, 그 이름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형벌이었고, 나는 끝내 그 이름을 내 생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이 소설 『나비, 날다』는 순분이라는 조선의 열다섯 소녀가 일본 군인의 꾀임과 강제에 의하여 끌려가 버마(지금의 미얀마)라는 곳의 위안소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일본 제국의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강간당하고 성병에 걸리고 임신하는 소녀들의 사실적 이야기이다. 위안소의 위안부들은 일본 제국의 군인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이 소녀들은 그야말로 성 노예 신세였다.


저자에 따르면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며,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저자 자신의 견해는 최대한 배제했다 한다. 생존하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소설의 형식과 구성을 빌어 엮어낸, 사실의 기록이며 또 다른 증언인 셈이다. 거대한 폭력 앞에 한 소녀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국가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소녀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 지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생각에서 작가는 집필을 시작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쓰면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참혹하고 잔인해 이 글을 쓴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다.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사관의 자세로 기록을 남기자는 마음으로 힘들게 이 소설을 썼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가 쓴 책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쓴 책이다."라고 말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성 노예가 아니다, 자유 의지로 가난의 굴레에 돈 벌려 간 매춘이다.” 야만적인 전쟁의 광기 속에서 열다섯의 조선인 소녀들이 끌려가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20여 명 넘는 군인들을 상대했다는 것은 과연 상식적으로 맞는 말인가. 열다섯의 소녀가 돈을 벌기 위해 하루 20여 명의 일본 군인을 상대했다는 게, 다시 말해 자유 의지로 매춘을 한 공창이라는 말은 이 소설 속의 소녀들이 당한 참혹한 사실들 앞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씨가 처음 공개적으로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던 것이 1991년이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은 이제 고령으로 별세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런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되도록 했다.



그때 휘장이 걷히고 다른 병사가 들어왔다. 그는 미처 옷을 입지도 못한 채 팔에 걸고 밖으로 나가고, 새로 들어온 병사는 채 씻지도 못한 순분에게로 다가왔다.“더러워. 더러워. 더러운 것들!”

그는 앞선 군인의 체취와 타액과 정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순분의 몸을 더듬으며 연신 더럽다며 침을 뱉고 순분의 몸을 때렸다. 그의 우악살스런 손길이 순분을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순분은 낮게 신음을 내질렀다.

“조센징들은 더러워. 더러워. 다 더러워.”(p.231)

“맛있었나? 맛있었겠지. 고깃국이었으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방금 너희들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는 다시 말을 멈춘 채 아이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웃음이 왠지 섬뜩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느릿느릿 입을 뗐다.

“방금 너희들은 너희 친구를 먹었다. 너희들이 맛있게 먹은 것은 너희 친구다. 너희들은 너희 친구를 먹었단 말이다.”

아이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친구라니? 친구를 먹었다니?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금 그자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눈으로 물었다.(p.295)



저자 : 은미희

1960년에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하였다. 광주문화방송 성우를 거쳐, [전남매일]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96년 단편 「누에는 고치 속에서 무슨 꿈을 꾸는가」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1999년 단편 「다시 나는 새」로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근친 간의 사랑과 동성 간의 사랑 등을 중심으로 인생과 사랑의 어두운 그늘을 다뤘던 『소수의 사랑』으로 지난한 생의 그림자에 대한 고유의 진지한 성찰력을 보여 준다는 평을 받았다.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현대판 남사당패라 할 만한 떠돌이 엿장수 공연단의 애환을 그려 낸 『바람의 노래』를 발표했을 때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언론의 시선을 모았다. 그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 엮은 첫 단편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는 쓸쓸한 일상을 붙잡고 삶을 이어 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삶의 숭고함을 토로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품으로 단편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가 있고, 장편소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18세, 첫경험』,『바람남자 나무여자』,『나비야 나비야』, 『흑치마 사다코』등이 있으며, 청소년평전으로 『조선의 천재 화가 장승업』, 『창조와 파괴의 여신 카미유 클로델』,『인류의 빛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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