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비밀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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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의 총량(지구 대기권 내)을 지금까지 살다 간 인구 수로 나누어 혹시 2000년 전의 조상이 내쉰 날숨의 일부를 내가 들이마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일반인들이 하기 어렵다. 지구의 공기가 대기권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수천 년 전의 공기가 그대로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의 저자 샘 킨은 극히 희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솜씨가 단순히 많이 써서 잘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점에 착안, 내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공기의 일부가 카이사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내쉰 공기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주장을 유쾌하고 거슬리지 않게 풀어내는 솜씨는 '대단한 작가'라는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자가 공기에 주목하는 순간부터 공기는 한 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책’과 같았다. 베스트셀러 『사라진 스푼』의 저자 샘 킨은 이 책에서 공기에 얽힌 기묘하고도 흥미진진한 과학과 때로는 비극적이고 때로는 익살맞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입담으로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책에서 저자는 산소를 이용해 대담한 강도 짓을 벌인 도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가 하면, 의학 역사상 처음으로 가스 마취제를 도입한 수술 장면을 보여준다. 또 증기 기관이 수증기를 내뿜으며 산업 혁명을 추동한 경이로운 역사와 핵실험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 기체가 대기를 오염시킨 비극적인 사건을 마치 영화처럼 설명한다.

 


 

저자의 이 같은 생각과 글솜씨는 이미 앞서 언급한 『사라진 스푼』에서 증명된 바 있다. 그는 『사라진~』에서 금, 규소, 텅스텐, 탄소를 비롯해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원소들을 일일이 추적하면서, 이 원소들이 역사, 경제, 신화, 전쟁, 예술, 의학과 과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냄으로써 놀라움으로 벌어진 독자들의 입이 닫히기도 전에 이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을 발간함으로써 글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보여준다. 『사라진~』에서 저자는 아침을 먹으면서 수은에 관한 옛날 일을 떠올리다가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는 각자 나름의 흥미롭고 기묘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즉시 원소에 관련된 발견과 발명, 과학 이론, 역사, 그리고 과학자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일화를 썼다.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과서나 교과용 지도서에는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주기율표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읽다보면 누구나 주기율표를 즐길 수 있도록 이야기를 끌어냈다. 그가 이번에는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에서 한 모금의 숨결에 담긴 경이로운 공기의 이야기를 통해 숨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단번에 바꿔놓는다.

 


 

TV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우리가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이순신 장군이 내쉬어 대기 중에 퍼진 공기 분자가 얼마만큼 우리 폐 속에 들어올까 하는 질문이다. 저자 샘 킨은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네 번째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의 문을 연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치며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우리가 들이마실 수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매번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카이사르의 숨결 일부를 마시고 있고, 이것은 이순신 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역사적 인물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이 그토록 먼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는 상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더욱 과감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머금은 한 모금의 공기에는 역사적 인물이 죽어가며 내쉰 마지막 숨뿐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역사가 도래한 이래 나타난 온갖 종류의 기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독자의 턱없이 부족한 과학 지식 때문인지 생각은 해보지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책에서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와 핵실험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 기체가 대기를 오염시킨 비극적인 사건을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풀어낸다. 역사상 획기적 사건들에서 나타난 온갖 종류의 기체는 여전히 우리 폐 속을 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인류의 이야기는 곧 기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구의 대기가 생겨난 과정을 살펴보며 그에 얽힌 기묘하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마치 영상처럼 떠오르게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대기의 대서사시는 이산화황과 황화수소 유독 가스로 들끓는 대기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질소 중심의 대기를 거쳐, 언뜻 생각하기에 생명의 필수 요소로 보이지만 한때 대학살을 불러왔던 산소 중심의 대기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풍부한 비유와 친절한 설명을 따라 공기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면, 마치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진화했듯이 오늘날의 공기 또한 꾸준한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일화와 버무려 먹기 좋게 탈바꿈시킨다. 가령 유독 가스 대기에 관한 내용은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기체로 변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괴짜 노인의 일화를 통해 스릴 넘치게 풀어낸다. 또 질소의 과학적 사실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화학 반응법을 발명한 동시에 섬뜩한 독가스 무기를 만든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와 연결시켜 과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여 준다.

 


 

이 책에서 공기 자체에 주목한 저자의 시선은 이제 공기와 인간의 관계로 향한다. 저자는 의학·화학·공학 분야를 넘나들며 인류가 삶을 개선하기 위해 기체를 활용해온 방식을 낱낱이 파헤친다. 의학 역사상 최초로 가스 마취제를 성공적으로 시연한 불운한 사업가 호러스 웰스와 사기꾼 윌리엄 모턴부터, 아내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증기 기관을 개선해 산업 혁명을 추동했던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얻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악명을 떨쳐내기 위해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 그리고 열기구를 만들어 인류가 중력의 밧줄을 끊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이루게 한 몽골피에 형제까지. 기체는 인류가 질병과 근력과 중력이라는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여 현대 문명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저자는 이 밖에도 큰 주제를 다루는 각 장 사이사이에 ‘못다 한 이야기’라는 짤막한 에피소드를 수록해놓았는데, 이것은 각 장에서 다룬 주제와 개념을 더 확장한 이야기로서 책에서 결코 놓치면 안 될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다. 가령 방귀를 ‘활용’해 나이트클럽 물랭루주에서 큰돈을 거머쥔 르 페토만의 일화는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방귀의 ‘쓰임’을 일러주며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각종 철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스코틀랜드의 테이 다리 참사 이야기는 기체를 알맞게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독자로서는 저자의 생각(발상)의 자유로움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앞서 공기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본 저자 이번에는 반대로 인간이 공기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도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은 대기의 조성을 뚜렷하게 변화시켰다. 바로 핵무기를 통해서였다. 미 군부는 1945년 이래 핵실험을 수백 차례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방사성 원자들이 지구상 모든 곳에 촘촘히 뿌려지며 대기의 조성을 변화시켰다. 당시에 실시된 핵실험은 공기 중의 방사성 탄소-14의 양을 약 두 배로 늘렸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이전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졌다. 이것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이고 아직도 여러 방식으로 방사성 낙진의 후유증이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공기의 현대사는 단순히 흥밋거리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과 밀접히 연결된 주제이다. 전 지구에 미치는 거대담론으로서 부각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것 같다. 인류 현대사와 관련하여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깃거리에 주목한다. 그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안전한 냉장고'는 다른 냉장고 제조회사가 저렴한 프레온(염화불화탄소)을 냉매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장화에 실패했다고 한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듯이 프레온에는 오존층에 구멍을 뚫는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인류가 아인슈타인-실라르드의 냉장고에 투자했더라면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당연히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 : 샘 킨(SAM KEAN)

 

베스트셀러 『사라진 스푼DISAPPEARING SPOON』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THE VIOLINIST’S THUMB』 『뇌과학자들THE TALE OF THE DUELING NEUROSURGEONS』『배스터드 브리게이드THE BASTARD BRIGADE』 『얼음송곳 의사THE ICEPICK SURGEON』의 저자. 미국 워싱턴 D.C.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타임스 매거진NEW YORK TIMES MAGAZINE〉 〈슬레이트SLATE〉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글을 썼다. 미국과학작가협회 특별상(2009)을 수상했다.

『사라진 스푼』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미국 아마존 ‘사이언스 TOP 10 BOOKS’에 꼽혔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최고의 책’,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에디터스 픽’에 선정되었다. 『뇌과학자들』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와 함께 PEN/E.O. 윌슨 문학적 과학 작품상과 AAAS/SUBARU SB&F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 A.V. 클럽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굿리드 초이스상 비문학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샘 킨의 네 번째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또한 미국 아마존 ‘베스트 논픽션’과 〈가디언〉 ‘최고의 과학책’에 선정되었다.

 

역자 : 이충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교양 과학도서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로 제20회 한국과학기술도서(대한출판문화협회) 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사라진 스푼』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뇌과학자들』 『잠의 사생활』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경영의 모험』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진화심리학』 『원소의 이름』 『돈의 물리학』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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