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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 우리가 몰랐던 해방·미군정·정부 수립·한국전쟁의 기록
김택곤 지음 / 맥스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는 분들이나 읽어야 할 것처럼 두꺼운 책이 마치 우리의 혼란하고 어두웠던 격변기를 잘 말해주는 듯하다. 75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 미국 기밀해제 문서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이다. 그나마 일부일 뿐이고 우리가 한국사 시간에 배우거나 책을 통해 알던 것이 많다. 독자는 우리 현대사를 공부하려는 목적보다는 조금 각도가 다른 데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현재까지 문제가 풀리지 않는 위안부 문제와 정보를 접할 수 없는 당시 북한군의 동향이나 생각, 생활 등이었다.
그토록 갈급했던 해방이 됐으나 시국을 정확하게 보고 있던 김구 선생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광복군의 작전 투입 전에 일본이 전격 항복하는 바람에 승전국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해 우리나라의 앞날을 우리 스스로 처리해나갈 수 없었던 점을 우려했다. 결국 김구 선생의 걱정대로 신탁통치, 남북 분단 등이 현실화됐다. 우리의 의지와 희망대로의 해방도 아니고, 독립도 아닌 어정쩡한 주인 아닌 '땅만' 주인이 된 셈이다. 어쩌면 적대적 일본에서 우호적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해야 할까. 남북이 서로 다른 이념 체제의 정부를 각각 세우고 분단된 채 76년이 흘렀다. 그동안 전쟁도 치르고, 서로 평화적 통일을 염원한다고 외쳤지만 통일은 이루어지 않은 채 늘 가슴 한 켠에 한으로 쌓아둔 채 서로 다르게 모습을 갖춰갔다.
책에 따르면 해방과 미군정, 남북분단과 정부 수립,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5년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비밀스러운 격동기였고, 소망과 비극이 교차했던 시기였다. 문제는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시대를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자세로 마주하기 보다는 이를 정치적 논란의 도구로 삼거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쟁으로 변질된 한국 현대사의 실체를 어느 때보다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규명해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은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소용돌이 가운데 새롭게 살피고 해석을 더해야 할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극비로 보관되어온 서류들과 보고들은 당시의 미군정과 하지 사령관의 시각과 판단, 백악관과 마샬 국무장관 그리고 미 정보부의 관점들이 어떠했는지, 이로 인해 한반도 역사의 물굽이가 어떻게 틀어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로 버마에 끌려 간 조선 처녀 김연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 에녹 리의 수난기로 끝맺으며, 해방 이후 광복군의 험난한 귀국길과 미국의 군정통치, 좌우합작의 실패 과정, 남한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투쟁 등 저자가 20여 년간 발로 뛰며 취재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와 대목들을 마주하게 한다.
독자는 우선 일본군 위안부에 초점을 맞춘다. 아직도 일본은 사과는커녕 위안부가 아니라 '자발적 매춘'이라고 허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국익이나 국가의 체면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웃하기 싫은 이웃 나라가 된 것이다. 전쟁을 일으켰음을, 민간인을 학살했음을 인정하는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본의 잡아떼기 식은 반성은커녕 더욱 군사대국, 침략국의 전철을 되밟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패전 이후 계속해서 우익 세력이 정권을 차지해온 데는 일본의 국민성마저 의심케 한다. 지금은 시일이 너무 흘러 일본의 MZ 세대는 물론 중년 세대까지도 침략은 인정하지만 위안부, 징병 등에 관한 만행은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배상도 박정희 정권 때 맺은 한일 기본협정 및 청구권 이행으로 완결됐다고 주장합니다. 즉 개인 보상 및 배상의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죠. 그러나 패전 후 미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영토와 주권은 물론, 배상청구 등의 권리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실시된 한일 기본협정 때 청구권으로 받은 유무상 8억달러가 전부이고, 그것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모든 전후 배상을 갈음하다는 아전인수격 주장만 되풀이한다. 더 이상의 배상이나 사실 인정은 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한국의 주장이 억지라고 말하며 국가간 맺은 협정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이고, 한국과의 외교도 이런 차원이라면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한자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이 책은 수많은 문서를 저자가 분류해 8개의 장으로 나눴다. 1. 광복군의 희망과 절망, 2. 분단과 미군정의 남한, 3. 좌우대립과 미군정의 선택, 4. 주한미군 철수와 국군 창설, 5. 미군의 군정 통치, 6. 폭력과 테러, 미군정의 개입, 7. 북한의 남침과 한국전쟁, 8.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노획된 편지 등 8개 장이다. 앞서 언급대로 광복 무렵의 광복군의 작전 투입 결정 후 미국 첩보기관 OSS와 함께 날짜를 받아놓고 기다리던 중 일본이 무조건 항복으로 승전국의 지위가 무산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된 미국의 기밀 문서가 해제돼 당시의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준다. 또 위안부 사건을 다룬 기밀문서도 개봉됐다. 버마(지금의 미얀마)의 이라와디 강가에 버려진 조선 처녀 20명이 영국군에게 발견되었다. 이들은 2년 전 17세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연자 등 조선 처녀들이었다. 우리가 어두운 터널의 끝자락에 왔음을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알려온 것이었다. 당시 이들 조선 처녀 20명을 조사한 미 육군 인도-버마지구사령부에 파견된 미 전시정보국 심리전팀은 1944년 10월 1일 일본인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 특별한 포로들은 한국인 위안부 소녀들이었다.
"이 보고서는 1944년 8월 10일 버마 미치나(미얀마 북쪽의 도시) 지역 함락 후 진행된 패잔병 소탕작전에서 포로로 잡은 한국의 위안부 소녀 20명과 일본인 2명에 대한 심문을 통해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인들이 한국인 위안부 소녀들을 어떻게 끌어모았으며 위안부 소녀들이 어떤 조건에서 생활하고 일했는지, 위안부 소녀들과 일본 병사들과의 관계, 그리고 위안부 소녀들이 이곳의 전황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에 CIA로 흡수된 미전시정보국, OWI는 미국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를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 했다. 이 보고서에는 '포로 : 한국인 위안부 소녀 20'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소녀들의 조사 내용에 따르면 일본인 대리인이 봉사(service)의 성격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고, 다만 병원에 입원한 부상병들을 방문해 붕대나 둘둘 감아주는 등 대체로 부상병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을 할 것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1944년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20일간의 조사에서 그들과 일본군 병사들과의 관계는 물론 일본군 병사들의 군사작전에 관한 발언과 함께 이들이 파악한 군대 정황에 대해서도 일일이 캐물었다. 그러나 후일 종군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한 듯 일본을 위한 변명이 분명한 성명을 곳곳에 달았다.
"위안부는 창녀이거나 혹은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부속되어 부대를 졸졸 따르는 존재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인 특유의 것입니다. 다른 보고들에 따르면 전투에 나선 일본군들을 위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위안부들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세히 보고돼 있는 당시 미군 첩보부대의 보고서들을 보면 일본 정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도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을 할까? 독자는 그 점이 오히려 궁금하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 경계 심리가 날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승만은 미국 사회의 우려를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고, 그 가운데 〈뉴욕타임스〉 기자들과 경영진이 들어 있었다. 이승만은 미군정과 하지 사령관을 향해 승부수를 던지는 한편 미 정계와 언론계를 설득하고 미 행정부에 압박을 가해 미군정의 좌우합작 노력을 포기했고 미군은 철수를 결정했다. 타협과 통합이 아닌 갈등과 대립의 한가운데서 신생 대한민국은 탄생하고 있었다.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 속에서 신생 대한민국은 진통을 시작했다. 중도좌파 여운형은 암살됐고 조봉암은 돈키호테 같은 정치 역정을 이어나갔다.
책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에서 이승만은 1946년 12월 14일, 워싱턴을 방문 중 신병 치료차 일본에 머물고 있는 미군정장관 아처 러치 소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보에서 이승만은 미 군사정부에서 하지 사령과 다음의 차상위자인 러치 소장에게 미군정의 좌우합작 시도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력이라는 등 도발적 용어 구사를 서슴지 않으며 좌우합작 중단을 단호히 요구했다. 이승만 박사는 러치 소장이 하지 사령관의 좌우합작 추진에 내심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거나 이에 대한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고 따라서 지나친 표현까지 했을 것이다. 위의 사실에 바탕한다면 이승만은 김구, 여운형, 조봉암과는 달리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우익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자신이 잘 아는 미국인들을 끌어들여 득세에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만의 나라, 남북 하나된 나라를 꾸리는 것을 반대한 속셈은 너무 자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정치적 욕심이 앞선 것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하나의 나라를 세우려던 많은 인사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한민국이 반쪽으로 출발한 이유다.
남북분단 이후 70여 년이나 지난 오늘, 아직도 이 시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해묵은 역사적 논쟁을 이어가며 역사적 해석의 미흡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 김택곤 저널리스트는 우리 내부의 시선이 아닌, 우리와 연관된 제3의 눈으로 서술된 기록이 보다 더 객관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미군정 문서와 문서 작성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기록, 여기에 더해 한미 양국 지도자들의 입장과 견해가 담긴 서신 등 광범위한 기록과 자료를 충분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현지에서 미국의 소리(VOA) 기자와 MBC 특파원으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20여 년 동안 무려 4,000여 건의 자료들을 채집했다. 그리고 이 방대한 자료 중 한국 현대사의 민낯과 실체를 밝힐 핵심자료 300여 건을 추려내 이 책에 담아냈다. 당시 정치 지도자들의 고뇌 어린 결단과 신화에 가려있던 우리 지도자들의 야욕은 물론, 숨진 의용병의 품속에서 발견된 피 묻은 전투수첩과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노획된 수백 통의 편지 등 저자가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해낸 희귀자료들은 하나같이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권력욕과 두려움, 열정과 절망을 증언해 준다.
이렇게 저자가 집대성한 자료들은 그동안 가려졌던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실체와 민낯을 밝히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1945년부터 1950년까지를 다룬 미국 기밀문서가 기간 해제됨으로써 드러난 많은 사실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단국가이고 하나된 통일국가를 지향한다면 과거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 기밀해제된 문서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여기에 일일이 적시하지 못한 수많은 의문점은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 읽어 의혹을 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단한 서평을 마친다.
저자 : 김택곤
1950년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MBC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신군부에 의한 강제 해직 기간 중 1985년부터 4년간 워싱턴 소재 미 정부 해외방송 미국의 소리 (VOA)에서 근무했다. 1992년 2월 MBC 법조팀장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허위감정사건 특종을 이끌어냈다. 이 기사는 어둠의 세력 논쟁의 중심이 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관련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그해 한국기자상, 한국방송대상 특별상을 공동수상했다.
1996년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정부가 신군부의 광주무력진압을 승인했었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 비밀문서를 인용해 특종 보도했다. MBC 사회부장, 정치부장, 2580부장, 보도국장으로 근무했고 광주MBC사장, JTV전주방송사장으로 방송 경영을 맡았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극동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미국의 소리 기자와 MBC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수장돼 있는 미국 정부의 해제된 비밀문서 가운데 한국 근현대에 관련된 기록에 관심을 갖고 관련 내용을 취재해 보도했다. 그 가운데에는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 한일국교 정상화를 앞둔 비밀협상, 한국전쟁 관련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