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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쓸모 - 상한 마음으로 힘겨운 당신에게 바칩니다
홍선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독자는 정신질환을 앓거나 어떤 심각한 중독에 빠진 적이 없다. 가족은 물론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의 고통을 제대로 알 리 없다. 그러나 그런 증세를 앓고 있는지 의심되는 사람은 만난 적이 많다. 앞으로도 적잖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독자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다.
이 책 『고통의 쓸모』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위해 쓰인 책이긴 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분노 감정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알코올 등 각종 중독에 빠져 마음 치유가 우선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홍선화는 정신질환의 진단을 받았든 아니든 사람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법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의 슬픔을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면 속도가 느리고 걸려 넘어지더라도 결국 변화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지금은 최악의 상태로 몸부림치고 있지만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결코 우울하지 않다. 다정하고 세심하며 따뜻하다. 고통(苦痛, pain)이란 생리학적으로는 통각(痛覺)에 의해 불쾌감정과 구별되지만, 행위의 주체에서는 감각(pathos) 또는 감정의 극단적인 불쾌감을 이르는 말이다. 고통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 어떤 증세가 발생하고 그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가장 치명적인 삶의 고통과 그로부터의 회복을 목격한 저자가 말하는 마음을 살피고 제대로 사는 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마음이 아파서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 정신질환자와 알코올중독자들의 마음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돕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을 겪는 이들의 회복 과정을 목격했고, 그들의 가족인 주변인들의 삶의 무게를 나눠 들었다. 이 책은 정신질환자들이 어떻게 회복하는지, 그들의 가족은 어떤 상처와 회복 과정을 거치는지를 세세하게 담았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나뉜다. ‘1장 마음을 다치다, 마음이 닫히다’에서는 우울감과 고립감에 대해 다룬다. ‘2장 상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서는 정신증과 중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현병 등 주요 정신질환의 증상과 오해 그리고 편견에 대해 알아본다. 또 알코올중독과 그 회복을 위한 제언도 담았다. ‘3장 가족의 중심에 선 정신질환’에서는 마음이 아픈 정신질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해 다룬다.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 정신장애인의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그들이 사는 법을 알 수 있다. ‘4장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에서는 현대인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상흔을 살펴본다. 무력감, 시기심, 분노 등은 일상 속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이지만 자칫하면 일상을 뒤흔들고 타인의 삶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러한 위험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마음 훈련법을 소개한다. ‘5장 마음을 돌보다, 마음이 쓰이다’에서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자신을 스스로가 돌보는 법을 소개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하루 확진자 수가 발생 초기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등 심각한 우려 속에 팬데믹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사람간 직접 접촉이 어려워지자 생긴 병이다. 코로나로 인한 소통 부재가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나날이 증가시키고 있다. 이런 우울증세를 '코로나 블루'로 이름 붙인 것이다. 특히 팬데믹 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코로나 레드'로 '코로나 블랙'으로 점점 악화되고 있다. 소통 부재가 우울과 분노를 넘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를 코로나 블랙으로 표현한다. 이 같은 일상의 소통 부재는 심리적으로 매우 해롭고 우울증을 앓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울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전쟁터 같은 마음이 괴롭지만 벗어나질 못한다. 머릿속에 답이 없는 질문들이 맴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감정은 다 버겁게만 느껴져 거부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한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금세 감기에 걸린다는 걸 누구나 아는 일이라고 비유한다. 매서운 삶을 맨몸으로 버텨온 사람에게 어떤 병이 찾아올지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어쩌면 외롭고, 무섭고, 서글픈 일들을 아무런 보호 없이 겪어야 하는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 깊은 무력감과 우울에 슬픈 공감이 이는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우울증은 누적된 상처와 결핍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니 집중해야 할 것은 우울장애가 아니라 상처와 결핍으로 다친 마음이다.
저자는 우울증의 여러 사례를 얘기하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울감과 죄책감은 무엇이 먼저이든 간에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과도한 죄책감이 우울감을 높이기도 하고, 심각한 우울감이 죄책감을 키우기도 하는데, 이런 상태가 지치고 버거우면서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고 언급한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만약 멈춰지지 않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축나고 있다면,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 탓처럼 느껴진다면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죄책감이 마음을 좀먹고 있지는 않는가? 죄책감이 관계를 괴롭게 만들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 탓인가를.
또 최근에는 노이로제 증세도 불안장애나 우울장애로 보기도 한다. 노이로제로 생겨나는 심리적 반응이 우울이나 불안을 비정상적으로 증가시켜서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에 따르면 노이로제는 정서적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진다. 대개 사람들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도 크고 무겁게 받아들이게 되고, 심리적 고통을 크게 느낀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는 건 살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유연한 대처가 어렵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판단해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혼란스러운 느낌에 빠져들기도 한다.
우울증, 조현병, 조울증, 분노장애 등 많은 정신질환에 대한 얘기가 있지만 알코올 중독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도 자신의 괴로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족이 괴로움을 함께 겪는다고 해서 '가족병'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저자는 책에서 가족들에게 '냉정한 사랑'을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의 치유는 어렵고, 그럴수록 환자 본인과 가족의 고통은 커져가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충동조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자주 이같은 제안을 한다고 말한다. 문제의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켜봐주기만 하라는 의미다. 물론 쉽진 않다. 가족의 일이 나의 일이 아닐 수 없고, 그의 해결이 미덥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주 간절하게 한 번만 도와주면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애원하거나 반대로 으름장을 놓기도 해 가족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참아내야 냉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여기서 냉정한 사랑은, 글자 그대로 냉정하게 표현되는 사랑이다. 냉정한 사랑의 다른 표현을 찾으라면, 나는 '불안을 버텨낸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저자는 답한다. 독자도 알코올 중독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물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는 아니다. 의사로부터 권유을 받았지만 자신은 알코올 환자가 아니어서 입원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다. 대개의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일은 자신이 저지르지만 책임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의타심이 강하다고 한다. 독자가 만난 그 사람도 술 마시는 이유를 물었더니 "당연히 좋아서이지만 집안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해서 더 마시게 된다"며 술 마시는 이유를 타인 때문이라고 돌렸다. 투사 행위다. 자신의 행위는 '너 때문이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냉정한 사랑'의 필요성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조절력을 상실한 사람의 최선의 선택은 조절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중독문제를 상담하고 치료하는 여러 기관과 자조모임이 있다. 중요한 건 어디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보아야 믿는다.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만큼 신뢰를 주는 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희망이 될 수 있다.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pp.106-107)
저자 : 홍선화
『전태일 평전』을 읽고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깊은 밤 어두운 독서실에서 오랜 시간 움직이지 못했다. 십대의 사유로 그치고 싶지 않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정신의료기관에서 1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여러 정신건강 현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정신재활시설 '비타민'의 시설장으로 삶과 일상을 회복해나가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 1급, 중독전문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있다. 현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