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불과 5개월 전 대한제국 시절 멕시코로 떠난 조선인들이 있었다. 이미 기울어진 나라에서 더 이상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나라로 먹을 것을 찾아 떠난, 요즘 말로 보면 '난민'이었다. 그들은 용설란의 일종인 애니깽 농장으로 가축처럼 팔려가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작렬하는 유카탄 반도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농부들은 새벽 네다섯 시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동을 시작했다. 하루 일해 겨우 하루 먹고살던 지독히도 고된 삶이었다. 4년 계약 기간이 끝나도 멕시코 한인들은 귀국할 수 없었다. 귀국 대신 그들은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 소식에 나라를 찾겠다며 독립군 양성을 위한 숭무학교를 설립한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쿠바로 이주하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이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갖은 멸시와 혹독한 노동을 이겨내며 끼니를 이었다. 죽을 힘을 댜해 일한 댓가로 식량을 사고 남은 돈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금하는 등 독립자금을 모금했던 일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 바뀐 조국은 전란과 독재에 시달리면서도 특유의 삶에의 의지로 먹고 살 만한 나라가 됐고, 애니깽 조선인들의 삶의 의지와 독립 헌금 등의 일화들이 하나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책의 표지 사진은 새벽 다섯 시경 애니깽 농장의 모습이다.



이 책 『몽우리돌의 바다』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책이다. 멕시코뿐 아니라 인도에 간 한국광복군, 체 게바라의 동지, 한인 최초 백만장자, 우리 공군이 시작된 땅 등... 이제껏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바다 건너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자로 활동하다 여행자의 삶을 살던 저자 김동우는 세계일주를 하던 중 우연히 인도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그들의 흔적을 좇아 기록하기 시작한다.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 10개국에 이른 생생한 현장 취재기, 그리고 끝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과의 에피소드를 110컷의 사진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또한 현장에 얽힌 깊고 내밀한 역사를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 국내외 기사를 일일이 찾아내 독립운동사를 재구성했다.

책 제목으로 쓰인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의미하는 우리 고유어다. 일제강점기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자신을 협박하자 이 말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올곧은 일에 생을 바치고자 했던 '뭉우리돌'들의 역사, 오늘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대한의 독립운동사가 우리 곁에 새롭게 펼쳐졌다.



책에 따르면 바다를 건너간 한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멕시코와 쿠바의 애니깽 농부들,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부들, 프랑스에서 전쟁 시체를 치우던 노동자들 등 고달픈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한 푼 두 푼 피와 땀의 결정체를 모아 독립자금으로 보탰다. 김구는 《백범일지》 하권의 시작을 미주 한인 동포들의 눈물 나는 지원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어느 땅에 자리를 잡든 학교를 세워 우리말과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숭무학교 등 독립군을 양성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독립전쟁 일어나는 날, 도쿄의 하늘로 날아가리라”는 각오로 공군을 양성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비행사양성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공군의 모태가 되는 이곳을 지원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는 한 달에 비행기 한 대 값 이상을 운영 지원금으로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대한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친 ‘뭉우리돌’이었다.

또 김익주, 이근영, 이종오, 김세원, 임천택, 호근덕, 이윤상, 배경진, 김종림, 김형순, 장인환, 전명운, 황기환, 이우석… 이 책에 나오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생소하다.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교과서 밖에서 마주한 뭉우리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제가 남김없이 골라내려고 했던 뭉우리돌은 비단 상해와 만주,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곳곳에 굳건히 박혀 대한의 독립을 일궈냈다.



저자는 찬란하고 강인했던 그들의 흔적을 찾아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남은 기록이 이름 석 자뿐일 때도 있었다. 저자는 대사관, 한인회 등을 수소문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았다. 불쑥 자신을 찾아온 저자에게 그들은 떠듬떠듬 부모로부터 배운 몇 마디 한국어를 건네며 따뜻한 한국식 밥상을 내올 땐 지난 설움이 복받쳐 울컥울컥 울음이 나온다. 대한 황실의 후손 율리세스는 큰 반찬통에 담긴 김치를 꺼내와 작가의 입에 넣어주었고, 쿠바의 한인 모임에는 비빔밥이 차려졌다. “손님이 찾아오면 따뜻한 밥상으로 대접하라”는 부모로부터 배운 한국식 손님맞이를 기억하고 지키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호근덕의 후손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묵었을 때 그의 아들은 “내가 독립운동 사진을 찍겠다고 네 한국 집에 머물면 넌 어떻게 할 거니? 우리 아버지가 너에겐 돈을 받지 않으시겠대”라며 저자가 내민 방값을 한사코 거부했다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선대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부심과 애환, 고되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원망, 독립 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모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저자는 확인했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가족에게 남긴 게 도대체 뭐냐고요.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가 봐요.”(청산리 대첩 마지막 생존자 이우석의 후손 이춘덕)

“아버지의 독립운동은 한국인으로서 그 시대 사명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명 때문에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죠. 하지만 난 자라면서 내 가족이 아버지에 대해 불평, 불만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 모두 독립운동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거죠.”(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 안필영)

친일은 꽃길, 독립은 가시밭길. 저자는 오늘날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이 수식을 지적한다. 한국과 교류가 적은 쿠바에는 아직까지 독립운동 서훈을 전달하지 못한 사례가 15건에 달한다. 2015년 한국일보 통계자료를 보면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고 있는 후손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75.2%에 달하는 후손이 월 개인소득 200만 원 미만이며, 70%는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저자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찍는다. 불과 100년이라는 시간 만에 우리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독립운동을 표현한 저자만의 사진이다. 카메라 셔터 속도를 길게 설정하고, 셔터가 떨어지기 전에 후손을 파인더 밖으로 나오게 한다.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독립운동의 역사, 그 현장에서 만난 후손들의 이야기는 짙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부실했던 국외독립운동 자료를 수집, 축적했다는 점에서 사료적 의미도 매우 크다. 멕시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점인 ‘살리나크루스 해변’, 도산 안창호가 멕시코 순방 당시 머물렀던 ‘프란세스 호텔’, 한인들이 일했던 애니깽 농장들, 독립운동가들의 묘소, 쿠바 대한인국민회 회관으로 쓰였던 건물, 친일파 미국인을 처단한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3·1혁명 2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던 뉴욕의 ‘타운 홀’ 등 주요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해 현재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다.

국외독립운동사의 현장을 집요하게 추적한 취재기는 연신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가졌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110컷의 사진이 책에 실려 있다. 단순히 취재기만 나열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스스로 독립운동사에 무지했음을 고백하며, 반성하고 더 열심히 현장의 깊고 내밀한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파고든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자 질문이 산더미처럼 늘었다. 모든 단발성으로 끝나는 법 없이 여기저기 가지를 뻗어 나가며 입체적으로 이어졌다. 인물사 또한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으로 끝낼 게 아니었다. 거기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상황이 한데 물려 있었고, 심지어 세계사까지 연결됐다.” 저자의 말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한 분 한 분의 마음과 연결시키는 놀라운 힘을 경험하게 한다.



현장에서 작가가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빈 터’였다. 독립의 정신이 흐르지만 아무것도 남이 있지 않은 현장 앞에서 작가는 때론 울분을 토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적지 현황과 변변찮은 보훈 정책을 지적하며 기록하고 기억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의 말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립운동사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까.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독립운동가 약 15만 명. 그들은 단지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었다. 자유와 평화,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기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은 각별하다. 이들의 생은 오늘날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들이 기필코 남기고 싶었던 고귀한 가치들이 다시금 대물림된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이제 기억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다.

고백하건대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역사였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시간을 살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 세계에 보석처럼 박혀 민족의 등불이 된 현장을 제대로 기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기록할 때 역사가 될 수 있지 않나. 표지판 하나 없는 사적지, 이력 하나 쓰여 있지 않은 비석, 무덤조차 쓰지 못한 수많은 무명 투사들 그리고 그곳에서 뿌리를 이어가는 후손들, 이 모두가 교과서 밖에서 마주한 역사다.

- p.11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역사」중에서



저자 : 김동우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한다. 그러다 행복이 직장에 없음을 깨닫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한동안 여행자의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인도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목덜미를 타고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2017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 10개국의 독립운동사적지와 그곳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취재했고 국내에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중 바다를 건너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으로 간 한인들의 독립운동사를 다룬다. 앞으로 유라시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해나갈 예정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기념관, 갤러리 류가헌 등 전국 각지에서 〈뭉우리돌을 찾아서〉 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 《뭉우리돌을 찾아서(사진집)》,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현장》,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걷다 보니 남미였어》 등이 있다.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 다큐멘터리 온빛사진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필름 현상을 맡겨보니 사진이 한 장도 나오지 않은, 어설펐던 첫 촬영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대학에선 학보사 활동으로 사진과 인연을 이어갔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부터는 차츰 사진과 멀어졌다. 그러다 여행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고, 잊고 지낸 사진을 다시 하게 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게. 그 후 몇 번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식이 통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를 꿈꾸며 잃어버리고 잊혀진, 바래고 물 빠진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데 관심이 많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