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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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제목인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가 내포한 의미는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나라 잃은 설움을, 피지배 민족으로서 겪은 비탄과 수치의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 이용덕은 섬찟한 소설 제목을 채택한 이유를 약 100년 전인 1923년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조선인이 소동을 틈타 우물에 독을 풀었다’와 같은 유언비어를 정말로 믿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급조하여, 죽창과 곤봉과 단도 등 주변에 있던 흉기를 들고, 그전까지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차례차례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한국어 번역본 출간에 붙여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이 만일 ‘아아,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인은, 정말로 구제 불능의 차별 국가, 차별적 민족이구나’라고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제 붓이 패배했다는 뜻이겠지요. 그게 아니라 ‘아아, 이건 우리나라 한국에서도, 혹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체계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제 붓이 얼마간의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한국어판 출간이 저로서는 도발이자 도전입니다. 부디 제 도전장을 받아주십시오. 여하튼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고민하며 쓴 소설입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일본인에게 재일 한국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인데, 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에게도 재일 한국인이란 왠지 모르게 모호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약간 희화화되었다고는 하나, 이번 작품에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삶을 통해서 한국의 독자 여러분이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서글픔이나 우스움, 또는 가능성을 읽어내주신다면, 이 소설은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라며 "이러한 테마에 재미있다는 말은 다소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테마가 어떻든간에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저의 신념입니다. 이번에 저의 뿌리인 한국에서 이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당연히 기쁨과 흥분을 감출 수 없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의견과 감상을 들려주신다면, 이역에서 살아가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작가로서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 소설은 출간한 이용덕 저자는 재일 한국인 3세다. 이 소설도 일어로 쓰였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고,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자의 첫 소설이다. 저자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쓰게 만들었다”고 소설의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도쿄 극우단체의 데모에 사용된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이자’라는 플래카드나, 오사카에서 중학생 소녀가 마이크에 대고 “츠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킬 겁니다!”라고 외친 실제 사건들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소설 속 ‘혐한’이라는 소재로 ‘혐일’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이 너무 미워서 차별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도 있었지만, 전력을 다해 그에 맞선 일본 분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혐오’라는 현상 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작가는 오히려 그런 혐오들로부터 “이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절망이나 염세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이건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폭력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건 결코 찬성하지 않아. 폭력을 증오해서는 아니고, 폭력을 이용해봤자 다른 의 차별은 절대 없앨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증오를 먹이로 삼는 차별주의자를 기쁘게 하는 일만 되니까. 그래서 신 군, 널 그 집단에서 빼낸 거야. 그곳에 있으면 안 돼. 우리들은 좀 더 현명하게 싸워야만 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도 간디를 지지한 인도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성공한 거야. 재일 동포는 수가 너무 적어.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을 통과시켰던 여론의 힘도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워. 우리는 현명하게 싸울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신 군, 나한텐 네가 꼭 필요해.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 있어줘.”(p. 23)

 


 

소설을 옮긴 김지영 역자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소설 속 일본이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지금 일본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당사자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이 소설을 읽는 것이 그런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소설은 재일 한국인 3세 작가가 재일 동포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니만큼 리얼리티 면에서 일단 우리를 압도한다. 배경은 극우 배외주의자들이 정권과 여론을 장악한 근미래의 일본. 정부는 동성혼 합법화와 부부별성제 등의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재일 한국인만은 철저하게 차별한다. 재일 한국인에게 불리한 법이 하나둘씩 제정되고, 그들은 점차 사지로 내몰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 격인 가시와기 다이치는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어떠한 '계획'을 추진한다. 다이치는 계획을 위해 필요한 인물들을 하나씩 포섭해나가고, 그의 계획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 전모를 드러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재일 동포 인물 중에서도 독자는 특히 여성인 박이화와 김마야에 주목한다. 박이화는 한때 열정적으로 청년회를 이끈 리더이자 문학가를 꿈꾸었던 인물이다. 데뷔에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문학의 힘을 믿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러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따뜻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마야는 그야말로 요즘 시대의 윤리 의식을 그대로 체화한 인물이며, 따라서 차별주의자들이 장악한 작중에서는 공격을 받는다. '반일에 페미니스트에 비건에 기지 반대라니, 싫어할 요소는 다 갖췄다'라는 악플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화와 마야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이화의 '귀국 사업'은 여러 난관에 부닥치며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마야의 신념은 여론은커녕 태수 한 사람의 마음조차 돌리지 못한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다이치다. 그러나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론을 바꾼 것은 그저 '시대의 흐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불가항력적인 그 무엇이었다.

 


 

소설을 추천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소설이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만연한 분노와 혐오, 정치가 이를 이용하는 방식, 결국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의 삶의 고통과 무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꼭 읽고 깊이 생각해야 할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 역시 ‘오사카 혐한 문제’나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벌어진 일본 극우단체의 욱일기 시위’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혐오가 일상’이 되고 ‘혐오가 정치’가 되는 현상이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점점 번지고 있고,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증오 범죄가 보도된다. 한국 사회의 ‘젠더 간 혐오’나 ‘조선족 혐오’ 또한 마찬가지의 문제일지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우리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 소설은 묻는다. “날로 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라고.

 


 

저자 : 이용덕(李龍德)

 

재일 한국인 3세로, 197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했고, 2014년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보답받지 못한다》로 2016년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그 외 저서로 《사랑하는 것, 이해하는 것, 사랑받는 것》이 있다. 2020년에 출간된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제42회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한 소설로 궁지에 몰린 재일 한국인 청년들의 분노와 슬픔을 담은 역작(力作)이다

 

역자 : 김지영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유엔제이 번역회사 소속 도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소설로는 《파국》,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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