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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유관순 열사는 알아도 그를 가르친 선생은 우리가 잘 모른다. 배우지 않아서다. 물론 유관순의 업적이 너무 커서 가리워진 이유도 있을 터다. 그러나 그런 학생을 가르친 선생 역시 못지 않을 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인물 '하란사'다. 중국이름 같기도 하고 어쩌면 외국어를 중국식으로 읽은 발음 같기도 하지만 '하'가 성씨고 '란사'가 이름이라면 조금은 우리 이름 같기도 하다.
이 책 『하란사』는 최초의 여성 유학생으로 자신이 배운 것을 토대 삼아 계몽 운동을 벌였던 독립운동가 하란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의 독립운동은 비단 신분이 높거나 나랏일을 하는 이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여서 더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국난에 가족을 잃어버리고 배를 곯다가 도둑질을 하던 소년, 임금이 능행길 중 머무르던 화성행궁에 성병 검사소를 차린 일제에 반발해 만세를 외친 기생들, 평범하게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거나 다리 밑 거지들을 돕는 아낙 등 소설에 등장하는 평범한 민초들도 모두 독립을 향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란사』는 특별한 이들이 아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000여 명이지만, 독립운동 참여자 인원은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어마어마한 수의 독립운동가를 한 명 한 명 모두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 『하란사』의 이야기 속에 새롭게 태어난 인물 '하란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던 평범한 민초들까지도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듯 독자들의 가슴에 뜨거움이 올라오게 한다. 이 또한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저자 권비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자료는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 있었지만, 정작 알고 싶은 사실들은 알 길이 없었다. 거기에 상상력을 입혀 나라 위해 독립운동을 하고, 여성 교육에 힘쓴 란사의 일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떤 인물에 푹 빠지게 되면 거의 무아지경이 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란사 이야기를 하고 자료를 구걸하고 꿈에서도 그녀를 찾아다녔다. 『덕혜옹주』를 쓸 때와 비슷한 증세였다. 쓰는 동안 캄캄한 밤길을 걷는 듯한 느낌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내 몫의 ‘하란사 찾아내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초고를 완성하고, 원고를 다듬는 동안 그녀는 내 안에 머물렀다. (…) 2020년, 그녀의 위패가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현충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를 본 듯이 반가워서 위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당당하고 거룩한 삶을 기리며 묵념했다. 램지어 교수의 망발이 회자되고 있던 터라 그녀의 고결한 삶이 더욱 우뚝 느껴졌다.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 웃어주었다. 나는 그제야 원고에 마침표를 찍고 출판사에 넘길 수 있었다.
억울하게 흩어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와 눈이 마주치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살려내 쓰는 것이 그들 영혼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방법이 될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는 일에 일조할 수 있을까?
책이 출간되는 날, 나는 현충원으로 달려가 그녀의 위패 앞에 『하란사』를 바치리라. 또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칠 영혼이 있다면,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풀어내야 할 것 같다."라고 쓰고 있다. 저자의 열정에 감복한다.
이 책을 통해 주인공 하란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친왕'의 명칭도 바로 알게 됐다. 책에 따르면 본문 중 의친왕을 ‘의왕’과 ‘의친왕’을 혼용해 썼지만 ‘의친왕’은 이미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호칭이나, 그것은 일본식 호칭이라고 밝히고 있다. ‘의왕’이 옳은 표현이니 앞으로는 그렇게 써야 할 것이다. ‘이강’이나 ‘의화군’이란 호칭도 역시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또 하나 ‘하란사’의 본명은 ‘김란사’인데, 이 책에서는 ‘하란사’로 표기했다는 것. ‘하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해 세례를 받고 얻은 영어 이름 ‘낸시(Nancy)’의 한자 음역에 남편인 하상기의 성을 따른 것이다다. 그러나 김란사 선생의 유족들이 수년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여 본명인 ‘김란사’로 바로잡았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영은 몇 달 전 의화군(의친왕)과 함께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난 오랜 친구 란사가 독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화영은 소문이 조작된 것이길 간절히 소원하며, 당당하고 똑똑한 신여성 란사를 떠올린다.
오래 전, 꼬마 도둑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화영을 란사가 돕게 되어 두 사람은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남편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한 화영은 그곳에서 란사를 만나 인연을 쌓는다. 기혼자는 들어올 수 없는 이화학당에 기지를 발휘해 입학한 란사는 본래 이름 대신 이화학당의 선교사가 지어준 이름 ‘낸시’를 한문식으로 고치고 남편의 성인 ‘하’ 자를 따와 ‘하란사’라는 이름을 갖는다.
“기혼자는 못 들어온다 하니까 기발한 발상을 해서 입학이 허가되었다지.”
“기발한 발상이라니”
“어느 날 그녀가 밤중에 프라이 선생님 앞에 나타났대. 가지고 온 등불을 선생님 앞에서 끄면서 말했다는 거야. 우리가 캄캄하기가 이 꺼진 등불 같으니 우리에게 학문의 밝은 빛을 줄 수 없겠느냐고. 그래서 그를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 덕에 입학 허가를 받았대.”
“오호, 그런 용기 있는 여자도 있네.”
화영은 그 여자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학교에 온 첫날,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화영은 단박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 도둑을 잡아준 여인이, 본처의 패악을 잠재워준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반가웠다. 그녀도 화영을 알아보았다.(pp. 38~39)
미국 웨슬리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란사는 그곳에서 이 강, 대한제국의 왕자인 의친왕을 만나 그의 옆에서 독립에 대한 투지를 지켜보며 자신의 애국심과 독립 의지도 날로 키워간다. 의친왕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질수록, 그에 대한 마음도 깊어진다. 유학을 다녀와 이화학당의 사감이 된 란사는 ‘욕쟁이 사감’, ‘호랑이 사감’이라는 별명을 얻지만, 그 거친 언행 뒤에는 조선의 여성들을 가르치고 계몽시켜 독립을 돕고자하는 열망이 존재했다. 그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신여성이 많아져야 나라를 위한 운동도 할 수 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던 중, 의친왕을 도와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거쳐 가던 그녀는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란사가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 뒤를 이어 「독립선언서」를 외웠다. 란사가 문장을 외우는 동안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서 들었다. 그러다 란사가 외우기를 멈추면 눈을 뜨고 그다음을 이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고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또 술 한 잔을 마셨다. 안주도 없이. 술잔을 잡은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말없이 그가 술잔을 내밀었다. 란사도 말없이 잔을 받아들었다.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술이 독약만큼이나 썼다. 술 한 잔 마시고 한 문장 외우고, 또 한 잔 마시고 한 문장 외우기를 여러 번.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추모이며 한 나라의 황제였던 고종에 대한 조문이며 구렁텅이에서 나라를 구해보려는 민초들의 열망이었다. 그들은 벌써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되뇌고 있었다.
“3·1 독립선언서는 대한의 자존이다.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이 하고 정당하게 하라.”
초옥의 나무들이 떨었다. 술에 담긴 하늘도 시퍼렇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그는 오로지 술을 마셨다. 입을 다물고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음엔 아무것도 담지 않았다. 아니 담을 수가 없으리라. 가끔 입을 열어 하는 말은 ‘이보게’가 다였다. 그러다 술에 갇히면 맥없이 쓰러졌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팔다리 다 잘린 허깨비, 그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땅속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흔적 없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는 그러고 싶을 것이다. 란사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곁에서 함께 술을 나눈 친구 하란사가 있었다.(pp. 233~234)
저자 : 권비영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소설가 되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걸 보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곧 소설가가 될 거라 믿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소설가의 길은 멀고 아득했다. 신춘문예에도 몇 번 떨어졌다. 박완서 선생님을 마음의 멘토로 삼은 덕에, 늦게나마 1995년에 신라문학대상으로 등단의 과정을 거쳤다. 꿈을 이룬 셈이다.
2005년도에 첫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를 발표하였고, 2009년에 출간한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 도서에 선정되며 독자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2016년 상영된 동명의 영화 [덕혜옹주]의 원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독자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이 5년 만에 『은주』로 결실을 본다. 여전히 ‘한국문인협회’와 ‘소설21세기’에 몸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꼭 쓰고 싶은 주제의 소설을 몇 권 더 쓸 계획이다.
2016년에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를 살아간 세 여자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몽화』와 중·단편집 『달의 행로』를 펴냈다. 『엄니』는 『몽화』 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로,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그는 현재 [한국소설가협회]와 [소설21세기]에 몸담고 있으면서, 아직 머릿속에서 익지 않은 몇 편의 장편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의 소설은 지금까지 러시아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해외독자들과도 소통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이며, 덕혜옹주의 오라버니인 의친왕 이강과 함께 꺼져가는 조선의 등불을 지키려 했던 독립운동가 하란사의 여정을 담아낸 『하란사』를 펴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