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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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은 어렸을 때 시주를 받으러 오신 노스님에게 받은 책 '증도가'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어 그 이후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책에는 영주(성철스님의 속가 이름)가 증도가를 읽고 느낀 감정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특히 "법신의 실상을 깨닫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것이 어떤 세계인가 의문이 일었다. 뒤를 잇는 "모든 존재의 본원자성이 그대로 천진불"이라는 말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영주는 아버지께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뜻을 꺾지 않고 불문에 귀의하였고, 25세가 되던 1936년 3월, 해인사 하동산 스님에게서 출가를 하고 법명으로 '성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40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성철스님은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를 시작했는데 그에게는 자기 스스로 지은 수도팔계라는 계율이 있었으며 이를 노트에 적어 들고 다니며 실천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희생이다. 두 번째는 절속(絶俗)이다. 세 번째는 고독이다. 네 번째는 천대이다. 다섯 번째는 하심(下心)이다. 여섯 번째는 전념이다. 일곱 번째는 노력이다. 여덟 번째는 고행이다.



첫 번째 희생은 수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뜻에서 수도팔계의 으뜸으로 삼았다. 두 번째는 절속(絶俗)이다. 수도인은 속가와 인연을 끊어야 한다. 속가에 미련이 있으면 제대로 수도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는 고독이다. 수도인은 모든 인연으로부터 비정해야 한다. 고독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성도를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새긴 항목이다. 네 번째는 천대다. 출가는 대접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천대받고 괄시받아야만 수도인은 살아난다. 나를 따르는 이는 수도를 막는 마구니에 지나지 않는다. 성철의 결의를 느낄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하심이다. 수도인은 자기를 낯추고 남을 높여야 한다. 철든 이는 스스로 자신을 낮춘다. 백 살을 먹어도 자신이 잘났다고 자랑하면 철든 것이 아니다. 낮은 곳에 대해가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여섯 번째는 넞념이다. 오로지 수도에만 전념하지 앟고 어떻게 성도를 이룰 것인가. 일곱 번째는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도를 이룰 수 없다. 여덟 번째는 고행이다. 몸을 혹사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몸을 호강시키면서 도를 이룰 수는 없다. 중도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썩어빠진 정신을 버리는 길, 그 자체가 바로 고행이다.



성철 스님은 동안거 기간 중 어느 날 선정에 들었다가 뜨거운 열기가 꼬리뼈에서 척추를 거쳐 정수리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느꼈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오도송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해서 1940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 중 오도(悟道, 불도의 진리를 깨달음)를 했다고 한다.

종교계에도 권력자와 야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 것 같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정치와는 거리를 확실하게 두었다. 성철 스님이 존경스럽고 위대하다고 느끼게 되는 또 다른 일면이다. "산승이 정치와 결탁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산승은 오직 산승다워야 한다. 수행자가 정치가와 결탁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수행자라면 마땅히 본연의 길을 가야 한다. 수행자가 권력 주위를 맴돈다면 한갓 똥개와 다를 바 없다. 똥이 무엇인가? 찌꺼기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잘되면 자기 덕이라 하고 못되면 꼭 남 탓이나 한다." 정말 이 말은 산승뿐만 아니라 정치가들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성철 스님이 전두환 정권 때 종정으로 조계종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스님의 이 같은 정치와의 거리 두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성철 스님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색화된 한국불교를 한국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청담스님과 뜻을 모아 비구니까지 동참하게 하면서 봉암사 결사를 단행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향곡, 자운, 월산, 우봉, 보문, 성수, 도우, 혜암, 법전 스님 등 훗날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갈 선승들도 동참하였다.

그렇게 해서 왜색화된 한국불교는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철 스님의 직계가족 중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가 출가를 했다는 것을 알고 독자는 깜짝 놀랐다. 성철스님의 어머니(법명 초연화)께서 출가를 하시고, 다음에는 성철스님의 둘째 딸 수경이(법명은 불필), 끝으로 성철스님의 부인인 덕명(법명은 일휴)이 출가를 했다. 나중에 성철 스님의 아버지도 큰스님이 된 성철 스님에게서 부처를 보았고 얼마 후 편안히 세상을 떴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숨을 거두었다. 세랍 82세요, 법랍 52세였다.



끝으로 책의 말미에 나오는 성철 스님의 1982년 법문의 내용을 축약해서 정리해 본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중략)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성철 스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교 가문의 장손이면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를 결심한 것으로부터 해방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색화된 한국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뜻이 맞는 스님들과 봉암사 결사를 단행했던 것, 그리고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산승은 산승다워야 함을 강조하셨던 성철 큰스님이 계셨기에 우리나라 불교계가 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같이 혼란한 시국에는 더욱 더 성철 큰스님이 그립다. 힘들 때마다 큰스님의 말과 글을 하나씩 떠올려보면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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