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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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혼하던 날, 남편은 자기가 만나는 여자를 데려왔다.

공정하게 말하면, 그 여자가 실제로 회의실 안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리고 에릭의 주장에 따르면 그 여자는 만나는 상대가 아니라 '친구'일 뿐이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도 그걸 알았고 나도 알았으며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됐다. 남편은 방어적이었고 상처받았으며 비열했고, '봤지? 봤지? 누군가는 날 사랑해. 당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날 사랑한단 말이야'라고 말하려고 '친구'까지 데려와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잠자코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소설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소설은 저자 엘리 라킨의 세 번째 소설이다. 첫 장편소설인 『기다려』와 차기작인 『나는 왜 당신이 될 수 없는가(WHY CAN’T I BE YOU)』가 큰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능력을 인정 받아 빠르게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은 것 같다. 저자 엘리 라킨은 나넷과 빗시 같은 칠십 대 여성이라는 인물들을 창조하면서, 저 유명한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를 비롯한, 1960년대 여성운동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고 한다. 수조 속 나넷과 빗시, 친구들은 당시 미국에서 태동하던 여성 자의식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다. 케일들린 역시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된 그들에게서 여전히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케이틀린 앨리스에게 남편의 외도는 더 이상 바로잡을 수 없는 결혼 생활을 포기하게 만든 계기가 돼 주었다. 이혼 소송에서 남편은 케이틀린을 괴롭히겠다는 이유만으로 케이틀린이 사랑하는 개 ‘바크’의 양육권을 가지려 하고, 케이틀린은 새 출발과 바크를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모두 잃어도 상관없다고 호소한다. 집과 비싼 차, 위자료를 포기한 대신, 충직하지만 겁 많은 개 한 마리만을 겨우 건사한 그녀는 스물일곱 살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이혼 후 플로리다에 있는 할머니 나넷의 집으로 돌아간다. 소설의 앞 부분에서 느껴지는 케이들인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개 한마리를 위해 위자료며, 집이며, 차 등을 모두 포기한다는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아직 모른다. 읽어가면서 독자들이 찾아내거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케이들린은 개 한 마리만 건사하고 스물일곱 살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이혼 후 플로리다에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익숙한 곳에서 추억에 젖어 현재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케이들린의 생각과는 달리 상황은 반전을 드러낸다. 케이들린의 할머니 나넷은 전통적인 할머니 상에서 탈피한 인물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며 케이들린의 앞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바라보면서도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바라던 케이들린에게 할머니의 변화는 낯설고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운동과 식이요법에 열정을 불태우며 적극적인 태도로 손녀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는 나넷의 곁에는 저마다의 다른 개성과 매력을 가진 주변 인물들도 가세한다.



젊은 시절 할머니 나넷은 고속도로변에서 인어로 분장해 공연하면서 재능 있는 친구들과 함께 물속에서 춤을 추고 헤엄을 쳤다. 인어들은 대부분 그 후로 연락이 끊어졌지만, 케이틀린은 인터넷을 통해 할머니의 옛 친구들을 찾아주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의 친구들은 다시금 인어 쇼를 열고자 하고, 케이틀린은 더 이상 누군가의 ‘보조 디자이너’가 아닌 자기 혼자의 힘으로 그들의 의상을 제작하는 큰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케이틀린에게 할머니들이 인어 의상을 입고 들어가야 할 수영장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인어 쇼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옛사랑 루카가 등장하면서 케이틀린이 느끼는 감정의 파고는 더욱 격심해진다.



인어 쇼를 준비하는 과정은 여자 친구들이 재회하고 연대하는 과정이다. 나넷은 젊은 시절 친구들을 다시 모아 ‘동창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자기 삶이 지닌 의미를 규정하고 남은 삶의 의지를 재확인한다. 이를 통해 나넷은 자신과 친구들이 살아온 여정을 돌이키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그 안에서 지니는 사랑과 우정의 가치를 손녀에게 전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케이들린과 함께, 서로가 감춰뒀던 가장 깊숙한 상처를 드러내고 쓰다듬고 위로하면서, 아름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세대를 가로지르는 이해와 공감을 통해, 케이틀린은 오랫동안 회피해 온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우리가 왜 치유의 이야기를 자꾸 찾게 되는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케이틀린처럼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처를 지니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닭고기스프나 초콜릿 케이크, 혹은 죽고 싶어도 이것만은 먹어야겠다 싶은 떡볶이를 찾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순간이 닥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감과 이해를 통해 연대하며 ‘햇살을 향해 헤엄쳐나가는’ 이 이야기는 따뜻하고도 눈부신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새 출발은 낯설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곳에서 모든 것을 리셋하는 것과 동일시되기 쉽다.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자신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점’은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로 쓰이곤 한다.



저자 : 엘리 라킨(ALLIE LARKIN)

엘리 라킨은 이타카 컬리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세인트 존 피셔 컬리지에서 작문을 공부하며 첫 작품인 《기다려(STAY)》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글쓰기를 향한 갈망을 잊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첫 장편소설인 《기다려》와 차기작인 《나는 왜 당신이 될 수 없는가(WHY CAN’T I BE YOU)》가 큰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섰다. 《나는 왜 당신이 될 수 없는가》는 곧 영상화될 예정이다. 현재 라킨은 남편 제레미와 겁 많고 충직한 저먼셰퍼드 스텔라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역자 : 이나경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르네상스 로맨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메리, 마리아, 마틸다》 《어쌔신 크리드: 르네상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불타버린 세계》 《세상의 모든 딸들》 《피버 피치》 《애프터 유》 《로그 메일》 《세이디》 《프랑켄슈타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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