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조은별 그림 / SISO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생각나는 에세이다. '구보'씨는 소설 속 인물이고, '서소'씨는 에세이 작중 화자다. 구보씨는 식민지 서울의 고독한 산책자이고 서소씨는 38세 평범한 대한민국의 회사원이다. 이 소설에서 제목을 차용해온 것인지 쓰다보니 이 제목이 가장 좋아서 사용한 것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많은 독자들처럼 이 소설이 생각해낸다. 혹시 내용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내용은 다르다. 글의 형식도, 배경이나 환경도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사실만 시대 차이를 두고 같을 뿐이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필생의 자랑이었던 '그'였으나,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서소 씨는 몇 달 동안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다. 느긋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던 서소 씨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산책, 마침내 발견한 아지트 카페 ‘B’에서의 이야기와, 안 하던 짓을 하던 중 벌어진 우스운 사건,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겪었던 식은땀이 흐르는 사건, 두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와 연애를 했던 일, 비뇨기 질환과 성욕의 감퇴를 느끼고 당황했던 사건, 삼십 대 초반에서 이제 사십 대를 바라보면서 들게 된 생각, 불안장애 치료기, 가족들과 있었던 일, 가족에 대한 생각,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극복한 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2년간 연애를 했던 사건 등이 이 책 내용의 전부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나 어떤 주제에 집중한 글은 아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저자는 재미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서소 씨의 일일은 웃음 속에 슬픔이 있고 방황이 있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하루하루를 글로 쓴다면 아마 희극보다는 비극 쪽이 가깝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비극이라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잘 다니던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5개월간의 휴가(?)를 받은 서소 씨는 그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기로 결심한다. 가급적 평범한 선택을 해왔다고 믿은 그였으나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어디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버린 것인지 이제 더 이상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어지지만 서소 씨는 날이 갈수록 과감해지는 중이다. 아무리 평범한 선택을 해도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도 되는 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일 수 있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소씨의 신입사원 이야기는 특히 공감이 간다. 첫 회사에 입사하여 실수도 많이 하고,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서소씨의 신입 시절 그와 동료의 실수담을 읽을 땐 누구나 공감의 웃음이 나올 것이다. 마치 내 얘기를 써놓은 것 같아 더욱 그렇다. 깜빡 졸면서 키보드를 눌러 DDDDDD가 모니터화면에 계속 찍힐 때의 민망함, 팩스를 거꾸로 넣은 실수 등 흔히 한 번쯤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도 모아 놓으니 그럴 듯한 글이 되고 에세이로 책에 담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서소씨는 서울 망원동에 산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망원동은 독자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살았던 곳은 상도동, 사당동, 그리고 쌍문동 정도니 망원동은 학교 다닐 때도 가본 적이 없는 동네다. 기억으로는 70년대 후반쯤 홍수 때 집이 물에 잠기는 동네 쯤으로 남아 있다. 수십 년 전 이야기라 지금은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많이 변했으리라 짐작은 할 수 있다. 망원동과는 인연이 없지만 할머니가 커피는 타주시는 시장 안 카페 , 아지트 카페B의 반려견 대박이와 카페 두 자매 사장님 이야기, 단지아버지에서 단지아빠로 동네의 인싸가 된 서소씨의 여러 가지 에프소드들이 정겹다. 그렇잖아도 핫 플레이스로 변했다고 해 한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더욱 가보고 싶다.

"선택이 쌓여 인생이 되었다. 가급적 평범한 선택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어긋난 선택을 했던 것인지, 어디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버린 것인지, 이제 그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이혼과 사 개월의 정직과 책을 써보는 경험을 모두 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평범하지 못할 바에야 독특한 선택도 한번 해볼 걸 그랬나 보다. 약간 가난하고 몹시 펴업ㅁ하게 태어나는 바람에 다양한 선택을 고려해 볼 여지가 별로 없었던 사람의 인생도 서른여덟 살쯤 되어 돌이켜보니 평범하지 않은 선택지를 고를 뻔한 순간들이 꽤나 있었다. 대체로 예술에 관한 것이었다."(p. 365)



저자 : 서소

38세

회사원

그리고 이야기꾼

@SEOSO_C

그림 : 조은별

그래픽디자이너

@EGAL_BYEOL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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