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문학 - 동물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강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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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능을 발달시켜 왔고, 동물들은 감각과 기능을 발달시켜 왔다. 결과는 모두가 아다시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 올랐고, 감히 어떤 동물도 인간의 자리를 넘볼 수 없게 됐다. 생물학적 먹이사슬로 보면 가장 높은 자리에 유일하게 위치해 있다. 동물은 각각의 독특한 감각과 기능을 발달시켰으나 생존의 위한 능력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진화론적으로 살펴봐도 인간은 지능의 발달로 다른 동물을 아우르는 위치에 오르긴 했지만 기능이나 감각 면에서는 뒤진 채 그대로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능을 이용해 동물의 특성을 탐구하고 연구를 거듭해 그들의 기능을 능가하는 대체물을 만들어냄으로써 개체의 생명과 안전을 한손에 쥐었고, 종의 존멸까지도 장악했다. 인간은 감각이나 기능의 부족함을 동물들을 훈련시켜 대신하게 했고, 동물들은 생존의 방법으로 인간에게 길들여졌다. 인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길들여지는 대신 인간의 근처에 얼씬하지 못할 정도의 공포심을 심어준다. 인간의 잔인성이 한몫 했다.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은 결국 지능의 무한한 발달로 이어지고, 이젠 인간의 능력은 지구 내에 머물지 않고 우주로 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협력관계나, 반목해 멸종의 위기까지 간 동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히 호기심이나 흥미의 단계를 넘어 인간 능력을 더욱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상은 독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왕국에서 수천~수만 년간 이루어진 일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동물의 왕국'이란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것도 인간의 긍정적 호기심과 지식욕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유전자적 발달에 기여한 동물은 가축일 것이다. 개나 고양이 등이다.

가장 일찍 가축으로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준 것으로 소와 돼지도 있다. 이 동물들은 인간의 필요, 노동 능력이나 식육 등에 쓰이기 위해 길들여졌다. 이 책 『동물 인문학』은 유럽의 소가 아메리카에 정착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스페인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의외의 동물을 데리고 왔다. 주인공은 긴 뿔을 가진 육중한 이베리아반도의 소인 롱혼이다. 스페인 국왕 부부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 혈통의 소를 최초로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덩치 큰 롱혼을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넌 것은 유럽인의 식문화와 관련이 있다. 신대륙에 정착하는 스페인 이주민들의 입맛을 위해서였다. 이는 신대륙을 안정적인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 스페인의 준비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TV 화면을 보고 잘못 이해했거나, 잘못 전해 들은 것도 많다. 사향소는 북극늑대가 나타나도 새끼를 지키기 위해 무섭지만 도망가지 않고 스크럼을 짠다. 사향소의 얼굴에는 북극늑대의 이빨 자국이 깊게 생기고, 사방은 사향소의 핏방울로 붉게 물들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어른이라면 희생과 용기라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수사자는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흰개미집 위에 올라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하는 포효를 한다. 하지만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전형이다. 천신만고 끝에 무리(pride)의 왕이 되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시한부 권력자다. 실속은 미토콘드리아를 후대에 남기는 암사자의 몫이다.

동물은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소는 인류에게 노동력과 단백질을 공급했으며, 소가죽은 산업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소뼈라는 보양식을 제공했다. 개는 인류의 사냥 도우미였다.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하고 발이 빠른 개와 협업을 시작하자 인류의 사냥 성공률은 크게 개선되었다. 더구나 개가 없었다면 인류는 축산업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낙타는 로마군과 파르티아군의 승패를 가르기도 했다. 파르티아군은 낙타의 등에 엄청난 양의 화살을 싣고 와서 로마군에게 화살비를 내렸고, 이 화살을 맞고 로마군은 맥없이 쓰러졌다. 로마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던 크라수스는 4만 대군을 이끌고 동방의 파르티아 원정에 나선다. 크라수스는 기원전 73년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지만, 사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오합지졸 노예 반란을 막아낸 것일 뿐이었다. 당시 대부분 시민들은 크라수스의 군공(軍功)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꾸준히 국력이 신장되던 파르티아를 정복하기로 마음먹고 행동에 옮긴다. 반면 파르티아군은 로마군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기원전 53년 지금의 터키 땅인 카레의 들판에서 조우한 크라수스의 원정군과 파르티아군의 승패를 가른 것은 낙타였다. 낙타는 전략 무기인 화살을 등에 잔뜩 지고 전쟁이 벌어진 사막으로 옮겼다. 파르티아군은 낙타를 잘 활용해 크라수스의 원정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인류 역사에서 축산업은 식생활의 대전환이었다. 인류는 야생동물을 개량해 소, 양 등의 가축으로 만들었다. 가축을 키워 고기를 얻거나 젖을 채취하는 식으로 단백질 공급 방식을 다양화한 셈이다. 축산업은 사냥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았다. 그만큼 인류는 육류를 더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사냥개나 집을 지키던 번견(番犬)은 가축을 지키는 목양견(牧羊犬)이 되었다. 개의 넓은 시야와 하루 종일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이 일에 제격이었다. 개는 목숨을 걸고 그 임무를 수행했다. 개가 자신보다 강한 대형 포식자와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을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개는 인류와 가족처럼 살아왔다. 수만 년 전부터 개는 사람과 자신이 같은 무리에 속한 운명공동체라고 여기고 자신의 주인을 우두머리처럼 떠받들어왔다. 이처럼 충실한 개가 없었다면 인류는 축산업을 계속해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만큼 인류에게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 동물은 없다. 산업화 이전까지 소의 핵심 역할은 노동력 제공이었고, 산업화 이후에는 질 좋은 단백질을 제공했다. 또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맛도 좋은 우유도 제공했다. 이 세상 동물의 가죽 중 산업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우피(牛皮), 즉 소의 가죽이다. 우피는 내구성이 우수해서 소파같이 가죽이 질겨야 하는 제품에는 다른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기 어렵다. 소처럼 묵묵히 일하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인류에게 준 동물은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용도 흥미를 끈다. 책에 따르면 고양이는 배에서 식량을 축내고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박멸해 원양 항해의 안전성을 높여 인류가 대항해 시대를 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고양이는 신이 인간에게 보내준 수호천사다. 고양이가 인류의 눈에 띈 것은 탁월한 사냥 능력 덕분이다. 고양이는 사냥감이 내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 발생한 쥣과 동물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고양이가 야생을 떠나 인간이 사는 곳으로 이동한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는 인류에게 더 큰 세상으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고양이가 선내(船內)에서 쥐를 사냥한 것이다. 쥐가 배에 타면 식량을 축내는 것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번지고 선체 곳곳에 상처가 난다. 인간은 안전과 행복을 위해 불청객을 박멸해야 했다. 인간은 이 불청객을 박멸하기 위해 최고의 전문가인 고양이를 초대했다. 배에서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함재묘(艦在猫)라고 하는데, 이 고양이 덕분에 15~16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인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판다는 1972년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판다는 20세기 중국 외교사에 큰 획을 그으면서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발전에는 수많은 동물이 헌신하고 기여해왔다. 어쩌면 동물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와 문명은 지금보다 훨씬 뒤처졌을 것이다.

1972년 미·중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는데, 두 나라는 적대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했다. 바야흐로 데당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중국 외교관’인 판다는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 큰 힘을 보탰다. 이렇게 ‘판다 외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의 ‘판다 외교’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국민당 국가주석인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은 1941년 12월 국민당의 최대 우군인 미국을 감동시키고자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인 판다 2마리를 데리고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을 방문한다. 쑹메이링은 화려한 외모, 뛰어난 언변, 능숙한 대인관계로 국제적인 스타가 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내공을 갖추고 있었다. 이 판다들은 1972년 미·중 정상회담 때의 판다들보다 31년이나 앞서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인들은 쑹메이링과 판다에게 매료되었다. 쑹메이링은 귀여운 판다가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꿰뚫고 있었다.

이처럼 『동물 인문학』은 동물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물들의 삶이나 특징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었고,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 상세히 살펴본다. 또 동물이 인간의 삶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살펴본다. 제1부는 동물의 왕국, 제2부는 동물과 인간이 만든 역사, 제3부는 중국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 제4부는 세계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과 환경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류와 동물은 영원히 함께 지구에서 같이 살아야 할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지속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중국과 미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중국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악재가 2018년 8월 3일 발생했다.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돼지고기 부족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돼지고기는 살아 있는 돼지의 몸에서 생산된다. 부족 물량을 공장에서 생산할 수가 없다. 중국 돼지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발병 36년과 3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염병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이 앞으로 치러야 할 전염병과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돼지 먹일 밥’이 다시 미·중 양국의 무역 전쟁의 주요한 무기로 등장할지 주목된다.

저자 : 이강원

건국대학교 축산경영학과에 입학해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 바닷가에서 성장한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사랑해 개와 고양이는 물론 금붕어, 비단잉어, 열대어가 가족이며 친구였다.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 개를 전공한 것도 동물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관심의 발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연구사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이후 국회와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가치확산본부장과 경영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신동아』에 동물 칼럼인 ‘동물만사’를 2년 넘게 연재했으며, 지금은 반려동물 매거진 〈노트펫(NOTEPET.CO.KR)〉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DOG: 사람과 개가 함께 나눈 시간들』(공저), 『개들이 있는 세계사 풍경』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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