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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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이 책 『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을 발간하면서 저자 박애희는 독자들에게 출간에 부친 편지글을 내놓았다.

 

"요즘 저는 그렇게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 찾아온 인생의 의문과 숙제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인생에 정답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기필코 답을 찾아 이 시간을 이겨내리라,

이런 다짐 속에서 헤매는 와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언제나 답은 찾아내지 못하고 고통을 견딜 만큼 견디고 나야 삶이 이어지는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 안에서 깨지고 부서지지 않기 위하여, 나를 단단히 지켜내기 위하여,

어떻게든 삶을 이해하고 견뎌내기 위하여

고통 속에 몸부림칠 때마다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나처럼 잠 못 이룬 채 하얀 밤을 맞고 있을 누군가를.

고통과 슬픔과 불안의 동지들을."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간다. 모두 책 머리에 「한숨이 차오르는 어느 밤을 견디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머릿말에 썼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당신이 옆에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어떤 마음들과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당신의 옆에서

티슈를 건네주며 같이 울고 싶은 마음과, 들썩이는 어깨를 가만히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과

무릎 아래로 힘없이 툭 떨어져 있는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그랬다고, 나도 당신과 다르지 않았다고, 그러니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의 슬픔과 고통과 불안과 상실과 좌절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많은 마음을 품기에 저란 사람은 너무도 작고 약해빠진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도 어떻게든 견디며 살고 있으니

당신은 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잘 견뎌왔으니 내일은 더 좋은 날이 꼭 찾아올 거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으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보듬은 박애희 저자의 신작 에세이다. 삶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 매일을 견뎌내는 이들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썼다.

인간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깊이 성찰한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에 따르면,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때 그 공통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이 이러한 ‘고통’을 더 많이 감지하는 지극히 민감하고 유약한 성정을 지닌 탓에, 생의 문제들에 맞닥뜨릴 때마다 제발 누군가가 이 힘겨운 시간을 지혜롭게 통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 어떤 말이라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랜 시간 그 답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저자가 끝내 찾아낸, 지난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위안의 말들과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는 태도가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무엇이 우리 삶을 견디고 버티게 하는지, 무엇으로 우리는 위기와 어려움의 시간을 건너야 하는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들어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이쯤 되어서 저자의 '고통'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저자에게는 사는 동안 내내 어떤 고통이 밀려왔을까. 저자의 고통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책의 내용이 저자의 삶 깊숙이 자리잡도록 평생 괴롭히던 고통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저자의 고통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통'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내재해 있는 원초적 고통일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고통은 인간이 살면서 극복해가는 고통이고 그 고통을 사는 동안 평생 극복해간다. 그래서 세상은 고통의 운동장이고 그 운동장에서 뛰는 인간들은 닥쳐오는 고통의 색깔에 관계없이 하나씩 하나씩 극복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고통이다. 인간은 그 고통을 극복하고 나면 또 하나의 고통이 다가오고 우리는 다시 또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삶 자체가 고통인 것과는 약간 다르다. 독자의 이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쇼펜하우어의 고통은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10년 전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동유럽으로 여행을 갔다. 그 여행은 정말이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며 그리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저자는 아주 오랫동안 확신했었다. 한여름을 피해 여행 일정을 잡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럽의 더위는 최악이었다. 폭염이 여행 내내 이어졌다. 냉장고에 있던 생수와 맥주캔을 꺼내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처음부터 징조가 좋지 않았다. 비행기가 연착됐고, 환전 사기를 당해 10만 원을 날렸다. 레스토랑에선 분명 피자를 한 판 시켰는데 두 판이 나오는 황당한 일도 겪었다. 심지어 그 맛까지 너무 형편없었다. 일정을 반 정도 소화했을 때, 너무나 간절히 집에 가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더위도, 덩치 큰 유럽인들도 전부 싫었다.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안도감마저 느꼈다. 그 후로 동유럽 여행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최악의 경험을 굳이 떠올려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아주 오랫동안 그 시간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한 번씩 그때 생각이 난다. 당시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어떤 풍경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저자는 궁금해졌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진저리쳤던 것일까 하고.

 


 

처음에는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여행을 간 지가 하도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최악의 여행마저 근사하게 생각나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당시에는 기분과 상황에 휩쓸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 알아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아름다움은 그렇게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일까. 그 안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떠나고 난 뒤에야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일은 여행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내내 반복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청춘을 지나오고 나서야 그때 시리게 아팠던 청춘이 인생의 봄이었음을 깨닫는 것처럼, 지긋하게 싸웠던 어떤 관계도 이별 후에는 어쩐지 그리워지는 것처럼.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믿어보라고.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지는 어느 하루도, 한숨만 터져 나오던 어느 밤도 훗날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게 선물할지 모른다고.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게 버거울 때면 지금 여기가 아닌 먼 곳을 내다보라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각각의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시련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전보다 단단하고 깊어진 자신을 느끼게 되는 날도 온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저자의 고통과 쇼펜하우어의 고통(욕망)은 맥락이 같다. 사는 동안 어떤 색깔이든지 고통이 뒤따른다. 사는 동안 고통과 함께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나 저자나 쇼펜하우어는 고통이나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도 고통을 극복한다. 개인적으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모두 극복해내고, 기다리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니 고통이나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릴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살아 있으면 고통은 극복한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고통은 극복된다. 그것이 살아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면 결국 인간은 삶의 의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슬픔, 고통, 분노, 질투 등 부정적 감정의 틀 안에 있는 감정 조각들은 폭발력이 강하다. 인간이 그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선 더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나간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성숙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생각지 않고 자신에 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극복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결국 살아 있는 한 어떤 어려움도, 부정적 감정조각들도 모두 극복된다. 슬픔이 두 번, 세 번 거듭될수록 인간으로서의 성숙도는 높아간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을 극복했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고통과 극복, 슬픔과 이겨내는 것 등은 모두 동의어가 된다. 인간에게는...

 


 

저자 : 박애희

 

헤매고 흔들리는 사이, 결코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란 진실을 마주한 후부터 기쁨보다 아픔, 높은 곳보다 낮은 곳, 강한 것보다 약한 것, 눈부신 것보다 스러져가는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연약하지만 다정한 마음으로 쓴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작은 물결처럼 일렁이길 소망한다. 기대와 다르게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생의 의지를 지켜가야 하는지, 울고 화내고 방황하면서 어떻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3년 동안 KBS와 MBC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고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쓴 책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누군가 당신은 어느 편인지 묻는다면 준비해놓은 답이 하나 있다.

“슬픔의 편.”

슬퍼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속 깊은 헤아림,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품은 연민과 진정성. 이런 것들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이 기쁨보다 슬픔에게 자주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부터 슬픔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고통, 불안, 상실, 좌절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읽고 쓰고 있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을 생의 기쁨과 의미들을 찾느라 날마다 고군분투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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