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기 좋은 방
신이현 지음 / &(앤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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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결말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의 문체로 새롭게 씌어졌다. 비 오는 날, 오동나무 잎들이 운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툭툭 떨어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던 마지막 결말부는 거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주인공 윤이금의 이후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에필로그」 형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어느덧 작가의 시선이 인생 너머의 비밀을 알아챌 만큼 성숙해진 때문으로 보인다. 비로소 주인공과의 작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 씌어진 마지막 문장처럼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 인생에서 아름다운 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기에. 1994년 출간된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소설가 신이현의 데뷔작이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경쾌한 정신, 니체적 질문으로 가득 찬 소설”(문학평론가 진형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가벼움 속에서 제법 묵직한 철학적 주제를 이끌어낸 소설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이 당대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점은 놀랄 만큼 다른 성향을 지닌 주인공 윤이금이라는 특이하고도 이상한 캐릭터의 출현에 있었다. 사회적 통념과 질서, 원칙 ‘따위’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무개념'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윤이금은 대학의 자퇴부터 직장 무단결근, 혼전순결 심지어는 인생의 중대사라 할 수 있는 결혼에 있어서도 그리고 어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눈앞에 닥쳐도 단 1초의 진지한 고민이나 갈등 같은 심리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모든 선택은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다. 90년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마디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최악의 캐릭터였다. 작가는 이제 『숨어있기 좋은 방』의 새로운 결말로 우리를 안내한다.



​20대 초반의 대학 불문과를 중퇴한 윤이금이 소설의 여주인공다. 그녀에겐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려 생사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윤이금이 벌어다 주는 월급만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아직 어린 여동생, 남동생이 있다. 장녀라는 가족의 굴레 속에서 숨이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의 중요서류와 공금을 잃어버린다. 회사로 돌아가지도, 집으로 가지도 않은 채 술에 취해 우연히 만난 여관 월세방에 사는 남자 태정과 일주일을 보낸다. 윤이금이라는 인물에게서 두드러지는 전형적인 특징은 바로 무책임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학의 자퇴라든지 직장의 사퇴 혹은 결혼 같은, 이른바 인생의 중대사를 앞에 두고 고민의 흔적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인생의 중대사뿐만 아니라 그녀가 겪게 되는 사건이나 행동들에 있어서도 진지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남들이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도 실은 이 무책임성에서 나온다.



태정은 가난하고, 폭력적이다. 돈이 없어 여동생이 몸을 팔아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태정이 술에 취해 재떨이를 부셔버리고 다친 틈을 타 윤이금은 붕대를 사러 간다는 핑계로 도망 간다. 막상 나와 돈도 아무것도 없어 지나가는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유일한 친구 봉희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봉희는 윤이금에게 관심조차 없고 다이어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봉희와 전화를 끊고 다른 남자 휘종에게 전화를 한다.

휘종은 단숨에 윤이금에게 달려왔다. 그 일을 계기로 번듯한 직장, 부유한 집안의 휘종과 결혼을 한다. 부유하고 행복한 시부모님과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지만 윤이금은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다시금 태정을 찾게 되고 태정과 몸을 섞는다. 그렇게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태정은 윤이금이 결혼한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태정은 윤이금이 결혼했어도 사랑한다면서 함께 하길 원한다. 윤이금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딸을 낳는다. 그런 상황임에도 태정과 헤어지지 못하고 만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윤이금은 태정의 여관방으로 찾아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진형준은 다음과 같이 썼다. "착한 딸도 아니고 정숙한 가정주부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마땅한 출구도 없는 20대 여성의 무덤으로 읽을 수도 있을 소설을 나는 그렇게 악마의 드라마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반윤리적 소설을 하나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젖는다. (중략) 단도직입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소설들은 우리의 내부에서 '즐거움의 욕망'이 부르는 손짓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욕망을 억압해온 만큼, 그 욕망은 패배자의 모습으로 우리 내부에 잠복해 있었다.

그 패배의 모습의 존재론적 원형에 대해 질문하는 태도는 패배를 패배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는 비윤리적일지 모르지만, 그 패배한 삶, 그 소외된 삶, 때로는 악마적이기까지 한 삶을 우리와 익숙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실은 더 적극적으로 윤리적이다. 그 시선은 타인을 향한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되돌리게 하는 시선이며, 그리하여 가장 이질적이고 낯설고 적대적인 모습에서도 자신의 모습의 일부를 찾아보게 하는 시선이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숨어있기 좋은 방을 갖고 싶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신이현

1964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살림, 1994)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하루는 집 앞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에 나올 책을 위해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기다란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쓰기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설레는 즐거움이다.

오랫동안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현재 한국 충주에 정착해 와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갈매기 호텔』, 『잠자는 숲속의 남자』와 에세이 『알자스』, 『루시와 레몽의 집』, 『에펠탑 없는 파리』, 『열대 탐닉』, 『알자스의 맛(그래픽노블 공저)』, 번역서 『에디트 피아프』, 『야간 비행』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1994년 데뷔작으로, 출간 당시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와 윤리적 논쟁으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작품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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