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 - 지도로 읽는다
쓰지하라 야스오 지음, 유성운 옮김 / 이다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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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상황이 혼돈과 패닉 상태에 빠지면 사람들은 현실적인 리얼리즘보다는 유토피아 등 이계(異界)의 공간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힘들고 공허할수록 현실을 직시하려는 열정은 시들해지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무한대의 상상력을 문학에만 투영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 종교, 철학, 과학 등 인류가 영위하고 쌓아온 문화 활동들이 상상력의 산물이며, 발전과 발명,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쯤되면 인류의 역사는 상상력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흔히 유토피아라고 표현하는 전설의 땅과 지상낙원이나 이상향은 어느 시대나, 어느 문화권에도 존재해 왔다. 황금으로 덮인 마을, 보석으로 만들어진 산, 불로불사의 샘, 아름다운 여자들만이 사는 섬 등 미지의 영역과 상상의 세계는 역사와 전설, 신화 속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전해지고 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도 인간이 처한 가혹한 현실과 고통스러운 삶을 부정할 수 없고, 또 생의 앞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삶이 힘들수록 꿈은 아름답다고 누군가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비현실적인 세계에 몸을 던지고, 아름다운 환상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유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낙원이자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기후는 화창하고 먹을 것은 풍부하며, 전쟁과 다툼이 없고, 주변이 온통 금은보화로 장식된 공간이라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또한 불로장생과 불사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도 충족시켜주는 땅이어야 한다. 즉, 고통 없이 무한의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가 인류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묘사한 이상적인 공산 사회인데,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이 어떻게 고지도 속에 그려지고, 또 각종 기록으로 남아 지금껏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책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이 발간된 이유다.

책에 따르면 문명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현대와 달리 고대와 근세에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제한된 상태였기에 미지의 지역과 공간이 많았다. 그래서 각지에서 여행담이나 전설로 전해오는 이상향과 황금향의 수수께끼와 신비에 대해 인류의 동경이 점점 강해지면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때문에 새로운 탐험과 모험에 나서면서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지도로 제작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특히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 지중해 세계는 고대부터 교통망이 발달해 세계 각 지역의 다민족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다. 자연스럽게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기담과 전설이 모였고,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전인미답의 땅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민족과 이문화를 접하는 과정에서 공상 여행기와 모험담까지 만들어지고 역사에까지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책은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고 믿어온 전설의 이상향을 당시에 제작된 고지도와 세계사에 남아 있는 여러 기록과 정보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알거나 들은 것보다 생면부지인 것이 더 많다. 그러나 이상향은 생면부지일수록 더 관심이 간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유토피아라면 상상력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당연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서 고지도와 도판 그리고 설명을 읽어가다 보면 마치 자신이 탐험가가 된 것처럼, 또는 그 당시의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미지의 이상향을 방문하는 듯한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탐색은 유사 이래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고 전달돼왔다. 이 책은 실재하지 않는 인간의 이상향을 찾아 나선 탐험가들이 남긴 지도와 기록,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세계지도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땅을 찾으려는 탐험가의 열정이야말로 지상낙원을 꿈꾸는 우리의 열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의 책 『크리티아스』에 상세하게 묘사한 아틀란티스 대륙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건설했다는 전설의 왕국이다. 태평양에 가라앉은 고대 인류의 탄생지 무 대륙은 흥미로운 전설로 어린 가슴을 설레게 한 태양의 제국이다. 인도양에 가라앉은 레무리아 대륙과 영국 아서왕의 전설이 탄생한 신비의 섬 아발론섬은 지금도 실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은 천국·낙원과 동의어가 되었고, 인류가 영생을 누리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원초적 고향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성서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일부 지리학자와 종교인들은 에덴의 땅을 찾으러 나섰고, 실재 위치를 고지도에도 그려 넣었다. 솔로몬 왕과 로맨스를 만들어낸 시바 여왕의 왕국에 대한 전설과 남미의 황금향으로 유명한 엘로라도에 얽힌 스페인 정복 시대의 뒷이야기도 소개한다.

가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했던 전설의 땅과는 달리 어느 시기에 실재로 존재했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섬들이 있다. 현재까지도 출몰을 반복하는 남태평양 환상의 섬 팔콘섬이 대표적이다. 통가 제도의 팔콘섬은 1865년 영국 군함 팔콘호가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5번이나 출몰을 반복하는 신출귀몰한 섬이다.

빙산과 육지 논쟁을 일으킨 남극의 도허티 제도, 북극해에서 세 번이나 발견된 산니코프섬의 존재 여부도 여전히 환상적인 소문에 둘러싸여 있다.



북유럽에서도 북쪽 끝에 있다는 환상의 섬 툴레의 현재 위치를 둘러싼 지리학자의 논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의 역사, 전설, 신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성 브랜던 제도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성 브랜던이라는 수도사가 지상낙원을 찾아가는 모험담을 그린 『성 브랜던의 항해담』에는 온갖 괴물과 신기한 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유럽 서쪽 대서양에 7명의 주교가 건설했다는 안틸리아섬도 수수께끼가 가득한 신비의 섬이다.

이 책에는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금단의 지상낙원인 에덴동산부터 아틀란티스, 무대륙, 아발론 왕국, 황금의 땅 엘도라도, 일본판 아틀란티스 우류지마까지 21개나 수록되어 있다. 독자의 지식이 짧아 놀랄 만한 숫자의 유토피아가 지도에 버젓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특히 동양에서 아가르타, 뇨고가시마 등 유토피아의 기록들을 발견한 것은 독자로서는 큰 수확이다. 동양의 유토피아는 중국의 문헌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한 번 들은 적만 있을 뿐 눈으로 지도를 봤다든지 TV 등 영상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 이 책의 내용이 더욱 놀랍다.



저자 : 쓰지하라 야스오

일본 히로시마시에서 태어나 메이지대학교 역사지리학과를 졸업했다. 지리연구가로 지리와 역사, 풍물 등 문화지리와 국제관계 분야에서 다양한 도서의 기획과 집필 활동 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바라키현 류츠게자이대학교 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정보편집 싱크탱크 ‘견문록’을 이끌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음식의 역사를 세계지도에서 읽는 방법》, 《세계지도에서 지명의 기원을 읽는 방법》, 《인명의 세계사》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유성운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마음을 바꾸어서 기후환경학을 공부했다. 정치부와 문화부를 거치며 〈중앙일보〉지면과 온라인에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歷)발상’, ‘역지사지’ 등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펴냈고,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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