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 - 데면데면한 딸과 엄마의 3개월 남미 여행
조헌주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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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저자처럼 여행을 좋아한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여행을 떠났는지는 구태여 헤아리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여행을 간다며 정식으로 짐 싸서 떠난 횟수는 대략 100회 정도는 된 듯싶다. 사진이나 기념품은 있어서 굳이 센다면 셀 수는 있겠지만 횟수를 센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헤아리지도 않았고 기록도 해놓지 않았을 뿐이다. 저자와 다른 점은 아직 혼자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치안상 문제를 염려했기 때문은 아니고, 단순히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서일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혼자 가야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했지만 공감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던 독자로서는 굳이 혼자 여행을 갈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늘 누구와든지 공모(?)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과도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때문에 저자가 엄마와 떠난 여행이 부럽다. 그만큼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으로 다가왔다. 물론 결혼 후 새로 생긴 가족과는 많이 다녔지만 결혼 전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의 여행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20대 초반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때의 좋은 추억은 힘들 때마다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는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마다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고 한다. 여행은 치열하고 조급한 삶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기회이자 휴식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20대의 여행엔 항상 동행자가 있었다. 각자의 삶이 바빠지는 30대에 들어서면서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길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문득 느껴지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엄마’였다. 생각해보니 그토록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엄마와 단둘이서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위를 보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막연히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생각하며 시간이 흐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저자 의도와는 달리 독자에게 비수처럼 다가와 꽂혔다. 하긴 저자 역시 그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계속 미루던 ‘언젠가’는 본인이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엄마와 단둘이 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지로는 가까운 동남아나 우아하게 다녀올 수 있는 유럽 등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엄마의 의견으로 조금은 난도가 있는 남미를 선택하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라고 얼버무렸지만 중요한 지점이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을 남미로 택했다는 것은 드문 상황일 것이다. 더욱이 엄마의 선택이라니 엄마의 선택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닐 터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실 엄마와 팔짱을 서슴없이 끼고, 함께 쇼핑하러 다니며,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말하며 대화를 하는 그런 모녀 관계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빠듯한 살림에 4남매를 키우느라 바쁘게 사신 엄마와 저자는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고 한다. 마음속의 생각을 풀어 놓기보다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고 애를 썼다고. 그래서 서먹한(?) 관계인 엄마와 24시간을 붙어 있어야 한다니 처음엔 여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겠다. 하지만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등 남미 8개국 여행 후엔 어색했던 모녀 관계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관계 밀착의 힘' 아닐까.



저자가 엄마와의 남미 여행을 마칠 때쯤 저자의 의식은 한층 성숙해졌고, 엄마와의 관계는 더욱 더 친밀해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누구와 여행을 같이 간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을 새롭게 주고 받는 일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단단한 관계로의 성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행이란 게 그런 것을 만들어주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실 엄마라는 존재. 누구나 항상 옆에 든든하게 계실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 역시 엄마는 언제나 곁에 함께할 존재라고만 생각해오다가 어떠한 사고로 인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독자도 곰곰이 생각을 돌이켜보니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무얼 좋아하시는지, 무얼 하고 싶으신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의 추억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하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 가족여행이라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거의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 역시 10대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냈으며, 20대 때는 대학을 가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30대에 들어서면서는 결혼으로 서로의 삶의 방식이 어느덧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인 엄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와 엄마는 남미 여행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3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모녀에게 어떻게 엄마랑 여행을 하냐고,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독자도 가족여행뿐 아니라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당연히 엄마는 돈 얘기를 꺼낼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단둘이 여행을 가봤자 돈 얘기만 하다 올 게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또 엄마와 함께 다니는 여행이라고 하면 자유로워야 할 여행에서 뭔가 제약을 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였기에 저자는 더 자유로웠고, 행복했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엄마도 똑같이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 그 사실은 엄마와 단둘이 여행 가는 것은 재미 없고 따분한 일이 될 거라는 사전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마 불편하고 힘든 일이 많을 것이라는 불편함이 미리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성장 모습은 독자의 마음에 훈훈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와의 여행을 못해 본 아쉬움에 대한 뒤늦은 후회를 하게 한다. 저자의 표현은 진솔하고 열려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와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에 몰랐던 그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된다. 엄마도 그랬다. 강인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와서 호랑이 같은 이미지의 평소 엄마와 달리 말을 못해서 웃고만 있는 순진무구한 엄마,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겁먹은 엄마,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좋아하는 해맑은 엄마를 만났다. 엄마라는 존재도 사실 부모 자식 이전에 한 여자고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보고 존재를 자각하고 나면 그 사람 자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더 풍요로운 관계가 된다." 우리 대부분의 젊은 시절의 엄마는 먹고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열심히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셨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과감히 남미를 택하는 열정과 함께 남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보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셨다. 나이가 들면 도전보다는 안정을 찾으려 하고 몸을 사리게 되는데 말이다. 저자 역시 10대에 가졌던 꿈과, 20대에 가졌던 열정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 점차 작아지는 열정 앞에서 저자는 나이 드신 엄마에게 다시 한 번 많은 것을 배웠다.



환갑을 넘긴 엄마와 여행을 하려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저자 역시 예상되는 많은 난관들에 부딪쳤다. 우선 숙소 문제다. 혼자나 친구들과 다니던 즐거움 위주의 여행과는 달리 편안함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걷는 것은 최소화하고, 교통수단은 되도록 빨리 목적지에 가는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여행이 아닌 안전을 선택하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여행을 하게 되면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누구나 친구와의 여행에서 크건 작건 다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저자 역시 여행 준비를 하면서 짐을 싸는 순간부터 엄마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딸과 달리 긴 여행은 처음이라 들뜨신 엄마. 짐의 크기부터 다를 수밖에 없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구 반대편 남미로 출발하게 되었다.

외국이란 곳이 주는 낯설음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남미는 유독 색다른 곳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중에서도 볼리비아에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라는 곳이 있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융기하면서 지금의 지형이 형성된 곳으로, 말 그대로 소금이 사막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서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는데, 엄마는 이곳에서 하늘과 땅이 이어져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가는 투명하고도 찬란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볼 수 있어 너무 행운이라고 하시면서 말갛게 웃음을 지으셨다. 또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진 촬영 역시 진행했는데,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양한 포즈를 지으시는 엄마를 보면서 남미에 오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그리고 파라과이에서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 폭포를 방문했다. 이구아수는 원주민어로 ‘큰 물’ 혹은 ‘위대한 물’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승용차로 6시간, 그리고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엄마는 장엄한 폭포를 꼭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연세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이구아수 폭포는 이름 그대로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폭포수에 옷이 젖어도 상관없다고 하시면서 온몸으로 폭포를 마주했다. 엄마의 용기에 저자는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들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저자는 이렇게 여행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소소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소 짓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개월간의 남미 여행.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남미를 엄마는 명령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불평 한 번 없이 자신이 짊어야 할 짐을 지고 아픈 무릎에도 아프다고 내색하지 않으시며 끝까지 딸을 인정해주시면서 그 험한 여행을 다 마치셨다.



아마 본인이 짐이 되고 싶지 않으신 마음에 불편함도 감수하면서 이겨내셨을 것이다. 실로 그 마음 깊이를 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엄마라는 존재. 그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사람이 바로 ‘엄마’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가끔은 서로에게 독설을 하기도 하고, 뼈아픈 말들에 상처받고 반항을 하기도 한다. 가족이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서로 상처를 주게 된다. 그리고 살아온 방식이 달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딸로서는 엄마의 방법이 답답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3개월간 함께하면서 저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해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남미 여행을 끝낸 후 저자는 말한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시길. 그리고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시길.그녀는 오늘도 다른 여행지로 엄마와 함께 떠나기를 꿈꾸고 있다.

저자 : 조헌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통해 나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글을 쓰며 그 깨달음을 나누고 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그녀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저서로는 『자존감 있는 글쓰기』, 『무작정 떠나는 산티아고, 나답게 뜨겁게』, 『여행, 가장 나답게』, 『혼자 만화영화 좀 보는 게 어때서?』, 『어쩌다, 해방촌』 등이 있다. SBS [좋은 아침], [손숙·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 KBS [장밋빛 인생], [더 뮤지션], [스타 오락관] 등 방송 대본에서부터 칼럼, 뮤지컬 대본, 에세이 등 종횡무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며 활보하고 있다.|||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져,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으로 수필작가가 되었고, 예술인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증평 문인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딸과 함께한 자유 여행으로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상황과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여행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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