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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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상통하는 은둔형 외톨이는 핵가족화와 인터넷 보급 등 사회 구조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나홀로 문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사회 부적응, 가정 붕괴, 부모의 폭행, 왕따, 인터넷 게임 중독 등의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빈번히 발견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를 왕따로 자청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데 쓴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공격적 폭력성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사례가 보고된 것은 2000년이며, 현재는 그 수가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 생활 패턴을 보여주는 ‘혼자 놀기’, ‘시체 놀이’ 등의 말도 유행했다.

 


 

이 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이른바 ‘실내형 인간’을 다루고 있다.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반갑고 기대됐지만, 어쩌다 약속이 취소될 경우 무척 아쉽거나 짜증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날씨까지 좋은 날 기분 좋은 외출을 기대했다가 약속이 취소된다면 화가 날 수도 있고, 약속을 취소시킨 원인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는 게 보통 상식이다. 그러나 혼자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앞서 언급한 은둔형 외톨이와는 결이 다르다. 은둔형 외톨이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거나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회피하니 훨씬 심각한 상태다.

그러나 실내형 인간도 정상적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렵다. 더욱이 기쁨을 느낀다면 보편적이고 적당한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밀하고 달콤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내색하지 않을 터다. 그리고 이후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되돌아갈 게 뻔하다. 저자 하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쁨을 발견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고 반문한다. 은근히 실내형 인간임을 고백하는 듯하다.

이 책은 이렇게 내 마음대로 연결되고 고립되고 싶은 마음 등 솔직히 들여다보면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여러 감정의 모습들을 그렸다. 『달의 조각』을 시작으로 그 섬세하고 다정한 글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하현 작가의 신작 에세이로, 이번 책에서는 좀 더 일상의 모퉁이에 숨겨진 감정의 조각들에 빛을 비춰 뜻밖에 내가 나여서 좋은 순간들을 발견해 보여준다.

 


 

이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괜찮아, 다음에 보자.” 오랜만에 잡힌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런데 서운하지 않고 은근히 공짜로 생긴 하루가 즐거움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아마 ‘실내형 인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반갑고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아마 약속이 그대로여서 외출했다면 또 세상 쾌활한 사람처럼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만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약간 피곤했겠지만. 반드시 주말 중 하루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말이다.

실내형 인간들은 이 은밀하고 달콤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 보편적이고 적당한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쁨을 발견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저자는 전업 작가다. 전업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실내형 인간의 전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실외 환경에서 글이 잘 써질 리가 없다. 그러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 동료, 기타 사회 생활 중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단절한 채 살 수 없는 게 작가들이다. 그러니 약속이 생길 것이고 그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글 쓰거나 책 읽는 게 하루 일상인 작가들에게는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그나마 마음이 평온할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에 기쁘다는 말로 읽힌다. 저자는 이를 '실내형 인간의 들키고 싶지 않은 기쁨'으로 표현한다.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 조그만 고리를 숨기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처럼. 친구도 피자도 노래방도 좋지만 그게 조금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안전한 고립감이 너무 달콤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창밖은 푸르고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어느 맑은 날에.” (‘외로운 건 솔직히 홀가분하거든요’ 중에서)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바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연결되고 고립되고 싶은 마음 등 솔직히 들여다보면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여러 감정의 이면들을 포착했다. 저자는 삶의 환절기 속 불완전해서 소중한 날들을 기록해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달의 조각』 이후 꾸준히 그 섬세하고 다정한 글로 독자들의 깊은 공감과 지지를 얻어왔다. 이번 책은 그런 그가 오랜 만에 펴내는 신작 에세이로, 좀 더 일상의 모퉁이에 숨겨진 감정의 조각들에 빛을 비춰 자신만의 시간에 소중함을 부여해 자신이 작가임을 확인하는 기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저자의 표현대로 '솔직히 들여다보면 내가 나여서 좋은 순간들'로 환원시킨다.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되는 ‘실내형 인간’이 아니더라도, 저자는 자주 나 자신이 적당하고 보편적인 사람이 아닐까 봐 갸웃하곤 한다. 그리고 독자들도 그런 적이 있을 것이라는 동의를 구한다. 그리고 다시 사색 속으로 빠진다. 과연 그 평균적인 기준이란 게 명확히 존재하는 걸까. 살아갈수록 그 기준만큼 모호하고 피상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삶이 부족해서, 좋고 넘쳐서 좋은 이유를 밝힌다.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모든 게 적당한 삶. 아무도 아무것도 평균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세상. 그런 상상을 하면 왠지 쓸쓸해진다. 때로는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는 부족하고 넘쳐서 생기는 뜻밖의 기쁨이 있다. 너무 많이 삶아버린 물만두를 처리하기 위해 가족들을 꼬드기며 시작되는 한밤의 만두 파티.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가까워진 친구들과 처음의 어색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는 시간.” (‘적당히의 감각’ 중에서)

 


 

“나는 앞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모으는 사람이 될까? 이 질문은 내가 나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 것인지 묻는 말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아주 좁고 얕은 세계밖에 볼 수 없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모으는지 곁눈질로 열심히 힐끔거린다. 그렇게 서로를 기웃거리며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본다.”(‘모과나무 길’ 중에서)

 

저자의 독백 같은 사색의 결과는 계속된다. 우리는 모두 아직 잘 모른다. 내 삶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게 될지. 그래서 어떤 것들이 우리 사이에 공감되는 일이 될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될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나여서’ 그대로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밖에도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해도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나의 공간을, 나의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편집해 나갈지, 어떤 색깔로 칠해 나갈지 생각해보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 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나만의 기쁨들이 있을 테니까. '아직 발견되지 않아서 기대되는 나만의 세계'를 찾아 또 사색의 바다로 빠져들기 위해 저자의 실내형 인간으로 살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저자 : 하현

 

약속이 취소되면 마음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일탈보다 일상에 관심이 많다. 《달의 조각》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를 썼다. 장래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다. (인스타그램@2YOUR_MOON)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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