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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의 모든 것 - 35년의 연구 결과를 축적한 조현병 바이블
E. 풀러 토리 지음, 정지인 옮김, 권준수 감수 / 심심 / 2021년 5월
평점 :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병이라 불리던 질환으로 사고(思考), 감정, 지각(知覺), 행동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 걸쳐 광범위한 임상적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 질환이다. 조현병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며, 단일 질병이 아닌, 공통적 특징을 지닌 몇 가지 질병으로 이루어진 질병군으로 파악되고 있다.
뇌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신체적 기능들을 조절, 관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뇌에 이상이 생기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뇌 이상 현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은 아직까지 완치에 이르는 치료제가 없어 '신(神)의 영역'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의학과 약학계의 꾸준한 연구 노력으로 일부 장애에 관해서는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까지 성공한 부문도 있다. 조현병은 뇌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뇌질환, 뇌장애로 보는 것이 옳고, 증상은 다양하다. 조현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물론 있지만, 환자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연구결과가 보고된다. 조현병 증상에 대해 정밀하고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1980년대 이후부터는 크게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으로 나누는 것에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이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분류에 따라 치료적 접근도 세분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많은 정신 질환이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조현병의 완치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효과적인 치료방법들이 꾸준히 개발된 결과 이제 조현병 환자들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정도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조현병은 뇌의 만성질환이다. 하지만 조현병을 일으키는 명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책 『조현병의 모든 것』의 저자 E. 풀러 토리는 이 책에서 아동기 트라우마가 조현병을 일으킨다거나(226p), 나쁜 가족 또는 나쁜 문화가 조현병 발병의 원인(230p)이라고 주장한 이론들을 비과학적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유전자로 인한 발병(213쪽), 감염으로 인한 염증과 면역 반응에 따른 발병(218p), 신경전달물질과의 연관성(219p), 태아의 뇌 발달 시기에 뇌의 특정 부분 손상이 병을 초래할 가능성(220p) 등 최신 과학이 조현병의 원인으로 주목하는 이론들을 소개한다. 특히 해부학적으로 조현병에서 뇌의 우측보다는 좌측이 주로 영향을 받는다는 최근 연구 결과(209p)도 흥미롭다. 그는 최근 염증, 감염, 면역과 관련된 이론들이 조현병의 원인에 관한 가장 유망한 이론으로 등장했다고 밝히면서도 조현병의 원인은 아직 한 가지로 말할 수 없으며, “여러 이론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최종 답은 여러 이론을 조합한 것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조현병의 원인과 더불어 진단을 받은 당사자와 가족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조현병의 초기 증상을 어떻게 알 수 있나”이다(134p). 저자는 조현병 환자의 4분의 3이 17~25세 사이에 발병하고 14세 이전이나 30세 이후에 최초 발병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특히 11~13세 사춘기 시기에는 행동의 표준 자체가 이상해지기 때문에 조현병 초기 증상과 명확히 구분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밝힌다.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조현병 초기 증상은 여러 연구와 저자의 임상경험을 더해 정리한 표(157p)를 참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현병 환자 중 발병 후 완전히 회복되거나 개선되는 비율은 얼마일까? ‘조현병의 10년 후 경과’와 ‘조현병의 30년 후 경과’를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둘 다 완전히 회복되는 비율은 25%, 비교적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개선된 비율은 각 25%(10년), 35%(30년)로 30년 경과가 10년 경과보다 더 양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화가 조현병 증상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30년 경과가 10년 경과보다 더 양호하다는 사실이 지금은 확실히 입증되었다. 이렇게 장기 예후가 더 좋은 주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노화가 조현병 증상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조현병 증세는 20대와 30대에 가장 심한 편이고, 40대에는 그 정도가 조금 덜하고, 50대와 60대에는 훨씬 덜하다. 그 이유가 뭔지는 아직 모르고 물론 예외도 많지만, 조현병은 생애 과정에서 노화가 이로운 역할을 하는 몇 안 되는 질병 중 하나다."(172p)
조현병은 치료가 가능할까? 책에 따르면 “명백히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그것이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는 말은 아니다.” 완치란 병의 원인을 영구히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조현병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현병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질병 모델로 ‘당뇨병’을 꼽는다. 당뇨병 역시 발병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며, 약을 통해 증상을 통제하듯이 조현병 치료에 있어 “완치보다는 증상을 통제해 비교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에는 17세 때 발병해 현재 상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셰넌, 25세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통해 안정화된 뒤 심리학자가 되어 조현병에 관해 2000회 넘는 강연을 한 프레더릭 등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증상들을 비교적 잘 통제하며 살아가는 조현병 환자의 사례도 실려 있다(180p).
약은 조현병 치료에 얼마나 중요할까? 조현병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항정신병약물’이라 불리는데, 현재 이 약들은 결코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제 약을 복용하고 제대로 사용하면 대부분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 미국에서 사용되는 항정신병약물의 종류와 상품명, 효능 등을 제공하고(281~283p), 처음으로 정신증적 장애가 발생한 사람들이 가족, 의사와 상의해 안전하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초발 정신증 치료 계획’을 수록했다(293p). 한국에서 허가되지 않은 약물은 감수자인 권준수 교수가 별도 표기했다.
이 책은 정신의학의 명과 암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정신의학의 발전은 조현병의 원인을 찾고 경과를 예측하며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지만, 조현병에 대한 학계의 오랜 무관심은 많은 조현병 환자들을 절망의 늪에 빠지게 했다. 저자는 미국의 노숙 조현병 환자 수, 구치수와 교도소에 있는 조현병 환자 수, 치료받지 않는 조현병 환자의 폭력 행위 건수, 조현병 환자가 처한 참담한 환경 등 현대 미국 의료와 사회서비스가 간과함으로써 발생한 재앙의 규모를 수치화해 신랄하게 비판한다(558p).
"우리가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해온 방식도, 너무나 자주, 잔인하며 모순적이었다. 사실 그 방식은 현대 미국의 의료와 사회서비스의 표면에 생긴 가장 커다란 오점이다. 우리 시대의 사회사가 쓰일 날이 오면 조현병 환자들이 겪은 곤경은 전국적인 추문으로 기록될 것이다."(552p)
앞서 언급한 대로 조현병은 1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이 비율로 따지면 국내에는 대략 50만 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다고 예상되지만, 환자와 가족들 대부분 조현병이라는 것을 밝히기 꺼려하기 때문에 그 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 따르면 장애 등록을 한 사람은 10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난 몇 십년간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조현병이 뇌의 질병이라는 인식이 점차 자리 잡고 있지만, 조현병에 대한 낙인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낙인이 계속되는 이유는 소수의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폭력적 행위들이 아주 큰 화제로 다뤄지기 때문인데,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 이들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을 때 벌어진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증을 치료하지 않는 기간이 길수록 4년 후 기능과 증상에서 유의미하게 더 나쁜 결과가 나온다.”
조현병 환자를 향한 공포와 불안감은 쌓이고, 낙인은 그들의 치료를 지연시킨다. 조현병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고, 가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믿을 만한 정보가 없어 진단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조기에 진단을 받는다 해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재발하진 않는지, 가족들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등 정보가 부족해 막막해하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이 대부분이다. 조현병 환자와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가 믿고 참고할 만한 교과서가 필요하다.
평생을 조현병 연구에 바친 저자 토리는 지난 35년간 수백 명의 환자를 상담한 사례와 뇌 과학, 인지과학, 생물학이 밝힌 조현병에 관한 새로운 지식, 그리고 환자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이 책에 체계적으로 담았다. 그는 감염에 의한 조현병 발병 가능성을 비롯해 수많은 연구를 했으며, 중증 정신질환은 사회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조현병의 교과서', 조현병의 바이블'로도 불리우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조현병에서 생존하기Surviving Schizophrenia’다. 조현병에 걸린 여동생을 둔,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입원 치료와 좋은 의사 찾는 법(6장), 항정신병약물의 종류와 구체적인 치료 계획(7장), 재활 치료(8장), 조현병의 10대 주요 문제(10장), 환자와 가족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와 생존 전략(11장), 도움이 될 옹호 단체와 피해야 할 단체(15장) 등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이 비난과 수치로 인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와 실질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또한 이 책은 국내 조현병 환자의 권익을 지켜온 조현병 연구의 대가이자 세계적인 뇌 과학자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교수가 감수를 맡아 관련 법률, 의료보험제도, 입원 치료, 정신건강 관련 기관 현황 등 국내 실정에 맞게 일부 내용을 추가, 국내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했다(270p).
저자 : E. 풀러 토리
정신의학자이자 조현병 및 양극성장애 연구자. 스탠리 의학연구소STANLEY MEDICAL RESEARCH INSTITUTE의 부소장이자 치료 옹호 센터TREATMENT ADVOCACY CENTER(TAC)의 창립자다. 치료 옹호 센터는 외래 치료 명령법과 민사입원법 통과와 시행을 추진하고, 미국 전역에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사람들의 입원과 치료를 쉽게 하기 위한 개별 주들의 기준을 홍보한다. 토리는 감염에 의한 조현병 발병 가능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를 실시했으며, 중증 정신질환은 사회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미국 국립 군의관 의과대학교UNIFORMED SERVICES UNIVERSITY OF THE HEALTH SCIENCES의 정신의학과 교수이며 지금까지 22권의 책을 썼다.
《조현병의 모든 것》은 토리가 지난 35년간 수백 명의 환자를 상담한 사례와 조현병의 원인, 진단과 증상, 치료, 예후에 관한 최신 연구를 총망라한 책으로 1983년에 출간, 현재까지 7판을 거듭하며 수많은 환자들과 가족, 정신건강 전문가 들에게 ‘조현병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라는 찬사를 받았다. 토리는 조현병 연구에 인생을 바친 전문가이자 조현병에 걸린 여동생을 둔 가족으로서, 조현병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와 가족 들이 비난과 수치로 인한 재앙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매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역자 : 정지인
《우울할 땐 뇌 과학》,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공부의 고전》, 《무신론자의 시대》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어려서부터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재미가 커서 좀 조숙한 나이에 번역을 하겠다는 ‘장래희망’을 품었고, 그대로 세월이 흘러 꽤 오랫동안 번역만 하며 살고 있다.
감수 :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교수이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뇌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1998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에서 뇌 영상술을 이용한 정신질환의 기전을 연구했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병원에 강박증 클리닉을 열어 전문적인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지난 30년간 연구자이자 치료자로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특히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신분열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조현병調絃病으로 병명을 변경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현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다. 아산의학상(임상부문),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에밀폰베링 의학대상, GSK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조현병학회 이사와 국제정신약물학회 평의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지금까지 조현병과 강박증 등에 대한 37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저서로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가 있고, 공저로 《강박증의 통합적 이해》, 《쉽게 따라하는 강박증 인지행동치료》, 《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 《만족》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