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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힘 - 사유하는 어른을 위한 인문 에세이
최준영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5월
평점 :
이 책 『결핍의 힘』은 저자 최준영의 일상에서 경험하고 사유하며 얻어낸 삶의 모습과 지혜가 담긴 에세이다. 소제목의 숫자만큼 55개의 단상(斷想)이 실렸다. 제목 『결핍의 힘』은 1부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의 글 17개의 주요 소재로 쓰였다.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으로 사전에 풀이돼 있다. 저자는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어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결핍을 인문학적 접근으로 시도하면 많은 연관어가 나올 수 있다. '모자람' 자체일 수도 있지만 '느림' '짧음' '아쉬움' '미숙함' 등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으며 우리 삶을 치열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결정적 단어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우는 저자 최준영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한다.
강연하는 곳도 이른바 '돈 되는' 기업체나 관공소 간부 대상 강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결핍 투성이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교도소와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 자활센터, 공공도서관 등이 주된 활동무대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과 타인의 결핍을 마주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한 학자가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다.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지금ㆍ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이 엮인 글타래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의 내면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이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결핍이 있다. 결핍은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 결핍에 시달린다. 부자라고 해서 결핍이 없을 리 없다.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외의 삶의 가치를 압도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결핍 역시 심각한 결핍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 재산의 상속 권한도 없이 자라났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결핍은 되레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고 일화를 전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 역시 서자라는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또한 그런 경우였다.
인간의 역사는 저마다의 결핍을 극복해온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 역시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결국 삶이란 끝없이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결핍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저자의 결핍에 관한 사유는 깊고, 통찰력을 가졌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한마디로 결핍의 삶이라고, 그러나 결핍에 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고 싶지 않지만 책 중간에 슬쩍 끼워넣은 자신의 결핍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아버지 없이 살았다. 4살 때 돌아가셨다니 아예 기억에도 없다. 가난은 기본이었고, 무엇보다 수시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곤 했다. 어머니의 부질없는 염려가 위축감을 키웠다. 애비 없는 놈 소리 듣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때의 결핍은 저자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저자는 집안의 대소사를 손수 해결했다. 관공서에 갈 일이 있으면 글을 모르는 어머니 대신 자신이 갔다. 마을 어른들과 회의를 할 때도 집안을 대표해서 나갔다. 어린 나이에 어른의 삶을 경험하며 살았다. 그 덕분에 책임감을 키웠다고 술회한다. 인생의 중요 포인트가 된 셈이다.
저자의 이런 삶은 되레 결핍의 힘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타인의 결핍도 들여다보며 어루만지려 노력했다고 한다. 십대 시절부터 노동현장을 전전하며 야학에서 공부한 경험은 대학에서는 그 시절의 청년들과 함께 불의에 맞서 거리에 나서는 힘이 됐고, 지금까지도 거리의 삶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은이의 글에서는 결핍되었던 삶의 여정과 그것에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낸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 어려 있다.
생면부지인 어느 출소자에게서 온 편지에 덥석 생활비를 부쳐준 이야기, 두어 달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수강자에 관한 에피소드, 예순 넘어 한글을 배우셨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 등 자기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이 글들을 통해 독자들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가지며 비로소 삶에 대한 무비판적인 비관과 부정을 걷어내고 세상을 ‘레디컬하되 익스트림하지 않게(3부 소제목)’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바탕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자의 눈이다. 저자는 인문학이란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읽고 세상에 대해, 사회와 정치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유롭게 비평한다. 그래서 이 책의 글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리뷰와 비평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넘나들고, 생각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책과 영화, 신문과 텔레비전은 인문학적인 사유를 꿰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스스로 ‘부박한 사유’라고 폄하지만, 때때로 격하고 단호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지은이의 글에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세상을 이해하고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를 바라는 인문학자의 소망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이렇게 이 책은 결핍의 힘으로 자신과 세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한 인문학자이자 개인이 나와 세상의 부족함으로 고심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응원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이 누군가의 결핍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 : 최준영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됐다. 2005년부터 노숙인, 미혼모, 재소자, 여성 가장, 자활 참여자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삶의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프란시스대학(최초 노숙인 인문학 과정) 교수를 거쳐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전국을 떠돌고 있다. 2019년부터 경기도 수원시 장안문 근처에서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꾸려 운영 중이다.
2004년부터 경기방송, SBS라디오, MBC, 국악방송 등에서 다양한 책소개 코너를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최준영의 책고집』과 『결핍을 즐겨라』,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동사의 삶』, 『동사의 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