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반야심경 2
혜범 지음 / 문학세계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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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당 지월 노스님의 상좌가 된 소년은 ‘해인’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소년은 가호적과 주민등록증도 새로 만들어 신분 세탁을 하고 사찰에서 무탈하게 성장해 고3이 된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아침이면 문을 열고 들여다보던 노스님이 돌아가시고 노스님은 해인에게 4년 치의 대학 등록금과 함께 추사 김정희의 난(蘭) 그림을 유산으로 전해 준다. 해인은 의대에 들어가 승려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형 성운은 그 노스님에게 물려받은 통장과 도장, 추사의 난 그림을 가지고 도망을 간다.

그쯤 해인은 괴로움으로 울다 큰 사형 성운 스님의 은처, 자비행 보살의 딸, 반야 지혜를 아무도 몰래 사랑한다. 세상은 바람 불고 춥고 어두웠다. 숨겨야 하고, 비밀스러워야 하는 절집 사랑, 만남에 세 살 어린 유년 시절부터 같이 자란 지혜는 늘 해인을 안타까워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실망한 해인은 괴로워하다 도망치듯 3년, 천일을 기약하고 무문관 선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산 나그네, 선방 나그네가 된 해인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고, 삼촌, 지효 스님의 위독함을 전보로 받는다. 지효 스님은 죽기 전에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어이없고 황망해하던 해인은 삼촌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다. 남산 타워와 청계천을 구경시켜 준 해인은 삼촌 지효 스님과 쓰러질 듯 서울역 지하도로 들어가 노숙 생활을 한다.

 


 

삼촌은 승복을 버리고 노숙자들에게 얻은 옷을 입고 야인으로서 지하도에 앉는다. 그리고 역 광장에서 노숙자들이랑 술을 마시다 입적한다. 그때 같은 노숙자가 준 불온서적을 소지한 죄로 인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류를 살고 나온 해인은 사제 스님인 도연의 도움으로 무연고 사망자인 삼촌의 시신을 찾아 동해안 바닷가로 가서 엄마 아빠의 유골로 만든 염주까지 배를 빌려 바다에 던져 준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실명한다.

몸을 뒤척이게 하는 오랜 병상 생활로 꿈틀거리던 해인에게 사제 스님인 도연과 배우가 된 지혜는 극진히 병간호를 한다. 각막에 손상을 입어 두 눈을 잃은 해인은 살아 있는 게 악몽이라며 어찌할 수 없음에 버둥거리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먹먹해진 채 병상 생활을 이어가고 마침, 같은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의 지정 각막 기증으로 각막 이식수술을 한다. 그러나 국립 재활병원의 3개월 입원 기간 제한으로 만신창이가 된 해인은 강제 퇴원을 당해 국립 재활원을 나온다.

 


 

해인은 병상 생활 중 한 불자인 간호사를 만난다. 간호사는 해인에게 자신의 오빠라며 한 불자를 소개해 준다. 그는 국가 기밀 기관의 차장으로 은퇴한 국가 고급 정보원이었다. 해인은 그에게 그간 일어난 자신의 개인사를 조사하게 한다. 그에게서 그간 불행에 얽힌 두 가족사의 비화를 들을 수 있게 된다.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에 있을 때 다리를 저는 한 친구, 박문수가 맞는 걸 보고 ‘형들 때리지 마’ 하고 나섰던 게 이 모든 불행의 단초였다. 그 친구는 바로 아버지와 함께 감염병 바이러스 연구소로 강제 이주 당한 아버지의 선배, 파출소 소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해 준 은인이었던 해인의 눈을 멀게 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교통사고 유발자가 바로 어릴 적 양명원에서 탈출시켜 주었던 친구인 박문수의 동생 박보현이었다. 모두 다 세상의 운명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사형인 성운 스님이 훔쳐간 돈으로 절을 지어 불사를 하기로 한 땅을 해인의 명의로 매입한 사실도 국가 고급 정보원이었던 이에게 확인한다. 그러나 ‘지금 너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닦는 일이다.’라던 은사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비승비속으로 인연으로 빚어진 이 모든 인과(因果)는 실존(實存)이다’라고 하며 평생 크지 않은 오두막 같은 절을 짓고 기도하며 살기로 결심을 한다.

해인은 아버지와 함께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으로 내몰렸던 친구 문수가 암에 걸려 죽음에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비가 내리는 데도 해인은 대학로 S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친구 박문수를 찾아가 면회를 하고 교통사고 가해자이면서 실명의 원인이 되게 한, 뺑소니를 쳤던 박문수의 동생 박보현에게 자수를 권하고 나온다. 병원을 나오던 해인은 ‘그래.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길바닥에서 충격을 받은 뒤 갑자기 눈이 벌에 쐰 듯 통증을 느끼다가 눈을 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혜범 스님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반야심경』은 인간 본성의 탐구, 인간의 구원 문제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에 초점을 맞춘 그의 소설은,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삶과 구원 등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굴곡진 인생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함께 슬퍼하고 좌절하고 번민하게 된다. 그러나 갑작스레 닥친 불행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와 진리를 깨닫고 일어서는 주인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올 수 있다. 경전의 신비고 이 소설의 힘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혜범 스님의 이 소설을 읽다보니 70년대 한국 불교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 김성동의 『만다라』가 기억난다. 저자가 20대 젊은 날에 겪은 삶에 대한 번민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잿빛 노트’이면서, 당시 산업화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던 한국사회와 속세의 가치를 탐했던 불교에 대한 직관적인 비판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내용들을 모른다고 해서 작품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만다라』는 불교라는 상자 안에 인생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며 맹목적으로 불교의 교리가 주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다라』는 작품에 사용된 불교용어들을 접어두고 읽더라도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때문에 『소설 반야심경』과 『만다라』는 2021년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힐링’ 이상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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