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농서 - 이름 없는 영웅들의 비밀 첩보 전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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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풍기농서』는 나관중의 『삼국지』와 크리스티앙 자크의 『이집트의 판관』을 많이 닮았다. '닮았다'는 표현은 자칫 '표절'을 의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삼국지의 배경과 등장인물 등이 많이 겹치고, 크리스티앙 자크의 구성력과 소설을 끌어가는 이야기의 전개가 닮았다는 뜻이다. 표절된 책이 이렇게 대한민국 출판계에 버젓이 출판되어 나올 리 없잖은가. 이 책의 저자 마보융 (?伯庸, 1980~ )이 스스로 밝힌 말이기에 독자도 마음 편히 이 사실을 먼저 밝힌다. 저자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650페이지에 이르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은 중국 삼국시대의 첩보전을 다룬다. 전쟁 중이던 세 나라의 첩보원들의 암약과 숙명적으로 생사를 오가는 위험하지만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등장인물도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자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이다. 즉 시대적 배경과 현대의 첩보전을 적당히 가미해 독자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읽는 신선한 맛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저자는 「후기」에 "드디어 끝났다. 이십 만 자(중국 한자로, 독자 주)가 훌쩍 넘는 분량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프로작가에게는 별일 아니겠지만, 천성이 게으른 내게는 한계를 절감하는 일이었다"고 술회한다. 대하드라마를 쓰는데 시간이나 체력은 물론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도 소모됐을 터다. 그래서 저자의 엄살 섞인 후기 1성이 오히려 정감 있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 같은 소설을 구상하는 데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다.

"사실 나는 천성적으로 일반적인 것보다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 철저한 고증을 기반으로 한 역사 소설보다 이렇게 새로운 역사 소설이 훨씬 매력적이다."

이에 따라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최대한 열심히 역사 자료를 조사하고 현대적 감각이 살아 숨 쉬는 삼국시대를 창조하고자 노력했으나 어색한 흔적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삼국 시대를 만들어냈으나 어색한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이집트의 판관』은 사실과 허구가 완벽한 혼연일체를 이뤘지만 『풍기농서』는 가공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독자는 그의 겸손함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정안사, 사문조, 군정사 등 『풍기농서』에 등장하는 관부 명칭과 자질구레한 촉나라의 행정 절차는 모두 명확한 고증 없이 지어낸 것들이라고 밝힌다. 또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관부 명칭이 많다고 말한다. 저자는 "『풍기농서』는 삼국 역사 소설이 아니라 삼국 역사를 차용한 공상 소설이다며 누군가 저자에게 삼국 역사르 제대로 보기는 했느냐는 비난한다면 아마도 "아, 사실 이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일어난 일입니다"고 답한다는 여유 있는 유머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풍기농서』는 크리스티앙 자크가 영감을 주고 프레더릭 포사이스가 살을 붙이게 해준 작품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두 대가의 덕분이라는 뜻이다. 가장 먼저 접한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작품은 『자칼의 날』이고 올해 초 그의 작품집을 구매해 독주를 한입에 털어넣듯 단숨에 완독했다. 그의 문장은 아주 차분하고 간결했다. 어떤 상황 묘사든 늘 변함없이 맺고 끊음이 명확했다. 화려한 수식어나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첩보 작전에 딱 어울리는 명료한 문장이다. 그리고 매우 섬세했다. 사소한 사건도 대충 넘기지 않고 세부 사항까지 자세하게 묘사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가 사이의 문체적 비교를 하면 재미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앞서 언급되지 않았던 또 한 명이 『풍기농서』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댄 브라운의 음모론적 관점은 절대적으로 내 취향이다. 나는 확실히 음모론자다. 그래서 모든 역사 사건에는 반드시 내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정말 없다면? 그럼 만들어야지. 사실 역사 소설에서 팩트와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장르를 불문하고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내가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의 진실과 더 가깝다거나 인간 내면의 추악한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첩보 소설의 기본 요소인 계략과 내막, 그 이중성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음모론적 관점은 확실히 색다른 세계를 만드는 데 유용하다"고 자신의 소설론을 밝힌다. 따라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모는 당연히 팩트가 아니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이용한 공상일 뿐이다. 저자는 전혀 다른 세상의 관점에서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저자의 소설 집필과 출간 배경이 되는 위에 언급한 내용을 토대로 독서를 즐기면 훨씬 재미를 더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제 소설 속으로 독자의 안내대로 따라 들어가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재미 위주로 읽어도 좋다는 저자의 말을 밑바탕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시대적인 배경은 서기 229년 위, 오, 촉의 삼국 시대이다. 이 세 나라는 중국의 패권을 쥐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위나라를 치는 동안 각국의 간첩들이 비밀스럽게 움직임을 시작한다. 책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요 인물을 새삼 열거한 필요는 없다. 책 앞 부분에 등장인물들을 간략하게 나라별로 소개해서 작품 이해를 돕는다. 주요 인물 중 첫 번째로 꼽는 사람이 진공이다. 진공은 위나라에 파견된 촉나라 고정 간첩으로 자는 문례, 간첩명은 '흑제'다. 실제로는 촉나라의 비밀 정보국인 시문조 소속이지만, 오랜 세월 위나라 천수군 태수부의 주기로 근무한 인물이다.

손령은 천수군 태수부 문학좨주이나 쉽게 전란에 휩싸이는 지역의 특성상 주어진 업무가 많지 않은 인물이다. 자는 정경, 재능이 있지만 천성이 거만한 인물이다. 위량은 천수군 태수부 문하서좌로 문서 창고인 서좌대를 관리한다. 술을 좋아하며, 호방한 성격이다. 또 곽회는 옹주 자사로 농서 지역 위나라 군대 최고 통솔자이자 근엄하고 검소한 성격의 전형적인 군인이다. 곽강은 곽회 수하의 아문장으로 자는 의정이며, 천수군 지역의 촉나라 간첩을 색출하는 간군사마로 활동한다. 이밖에도 임량, 마균, 서영, 적제, 백제, 장관, 극정, 설영, 배서, 성번, 마충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촉나라가 위나라에 간첩을 심어두었듯, 위나라 또한 촉나라 고위층 가운데 정체불명의 간첩을 숨겨놓았다. 촉나라의 최강 병기인 노기 설계도를 탈취하겠다는 위나라의 음모 아래, 금지된 사교인 오두미교 조직이 연합하면서 두뇌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져간다. 그저 ‘올빼미’로 통칭되는 베일에 싸인 간첩들 중 사상 최악의 위나라 간첩 ‘촉룡’의 뒤를 쫓는 촉나라의 비밀 정보국 정안사 소속 관리 ‘순후’. 촉룡의 암흑 같은 그림자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면서 순후는 절체절명의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책에 따르면 촉한은 2차 북벌에서 실패하고 후퇴하고 있었는데 촉한의 '노기'가 왕쌍의 군대를 공격하고 그때 왕쌍의 군대는 전멸을 면치 못하고 왕쌍도 전사한다. 진공은 위나라의 천수부 태수부에 근무하고 있는데 그는 원래 촉나라 고정 간첩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옹주 자사인 곽회와 곽강으로 진공은 긴장한다. 그러다 황제가 보낸 급사중에 대해서 알게 되어 그와 관련하여 조사를 벌이게 된다. 진공은 급사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촉나라 고정 간첩이며 천수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백제를 만나려 하지만 백제가 곽강에게 포위되고 백제는 진공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진공은 백제가 자결하면서 남긴 정보들을 통해서 급사중의 정체와 위나라에서 벌이려고 하는 일들을 알게 되고...

 


 

저자 : 마보융

 

중국 현대 장르 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문학 귀재鬼才’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작가 마보융은 1980년 내몽골자치구 츠펑시에서 태어난 만주족 출신이다.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발표한 글들이 유명세를 얻어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2005년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풍기농서』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중화권 젊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 흡입력 넘치는 빠른 전개, 생동감이 느껴지는 인물들, 약간의 유머 감각이 결합된 그의 작품들 중 『장안 24시』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5년 SF문학상인 은하상, 2010년 인민문학산문상, 2012년 주즈칭산문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동시에 얻었다. 대표작으로 『풍기농서』, 『장안 24시』, 『용과 지하철』, 『삼국기밀』, 『초원동물원』 등이 있다.

 

역자 : 양성희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장안 24시』, 『아, 베이징』, 『용과 지하철』, 『위장자』, 『참새 이야기』, 『전족』, 『란란의 아름다운 날』, 『도시를 읽다』, 『다그치지 않는 마음』, 『대국굴기』, 『채근담』 ,『공유경제』 등 7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출판번역 강의와 출판기획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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