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도시에서 사일 시골에서 삼일
한순 지음, 김덕용 그림 / 나무생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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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서울 토박이는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와 수십년 살았으니 말씨도 서울말씨이고 친구들도 서울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학교를 마치고 얼마 안 돼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군대와 취업 전 잠시 쉴 때를 빼고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계속한 셈이다. 이제는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인데도 아직 직장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오직 노후준비의 부족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노후 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들어가는 국민연금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노후에 큰 관심이 없었고, 큰돈 들어갈 일이 없으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 없는 낙관의 결과다.

그래도 시골에 가면 돈이 덜 드니까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순진함 그 자체였다. 우선 집값이 이른바 전원주택 규모는 서울집 팔아도 부족했다. 경기도에서만 찾아서 그런지 집값이 서울 변두리보다 비싼 데가 많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찾아보자며 우선 미뤘다.

 


 

이 책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의 저자 한순은 시인이고 에세이스트다. 지금은 출판사를 운영중인 것 같다. 그가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의 '반쪽 귀촌'을 생각한 것은 계속된 도시생활, 직장생활에서 오는 번아웃 현상 때문으로 읽힌다. 그는 "오십 중반이 되어서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듯한 허기가 몰려와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 반절짜리 귀촌을 선택한 이유가 시골에만 가면,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나무와 흙냄새 나는 시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관성을 뿌리치며 일터인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매주 오가는 것도 숨 가쁘긴 매한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살면서 부러 외면하고 떨어뜨려 놓았던 '본질'과의 밀당이 본격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저자가 '본질'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일종의 '자아 찾기' '자신의 본성 회복하기' 정도로 독자는 이해한다. 평생 도시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허술하기는 저자나 독자나 매한가지 같다.

 


 

‘도사시삼’, 말 그대로 도시에서 4일 시골에서 3일을 살겠다는 건 작가에게 크나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출판사를 운영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오십 중반이 되어서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 반절짜리 귀촌을 선택한 작가는 시골에만 가면,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나무와 흙냄새 나는 시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그 생활도 숨 가쁘긴 매한가지였다. 관성을 뿌리치며 일터인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매주 오가는 것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살면서 부러 외면하고 떨어뜨려 놓았던 본질과의 밀당이 본격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요하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라는 본질은 금형 프레스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저자는 살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꽉 채웠던 자연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면 볕이 잘 드는 마당에 앉아 따스했던 옛집의 풍경을 떠올려보고 나라는 존재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전원생활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본질도 회복되고, 건강이나 감성, 감정 등 모든 게 다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저자의 희망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때로는 일로부터 삶으로부터 무심해지려고도 애를 썼다는 저자가 완전히 삶의 패턴을 바꿔 귀촌생활에 쉽게 안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는 저자에게 그런 시골의 한가롭고 정감어린 옛날 얘기만 머릿속에 있었지 현실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는 각자 주인공이면서 스스로 그러한 모두에게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굴참나무로, 누군가는 고라니로, 누군가는 굴참나무 잎의 보호를 받고 피어난 남보랏빛 각시붓꽃으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 앞에서 나는 자비와 무자비가 비빔밥이 된 여름을 맞게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전적 정의가 무너지는 것이 한편으로 혼돈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 그동안 나를 누르고 있던 금형 프레스 같은 것이, 가벼이 날리는 아카시아 향기에 실려 사뿐히 사라진 기분이다.(p. 74~75)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확립했던 개념들이 무너지는 것은 혼돈스러운 일이 분명하지만 ‘나를 누르고 있던 금형 프레스’가 치워지는 순간 저자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잠든 순간에도 굴참나무는 종자를 떨어트리고, 내가 번민에 휩싸인 시간에도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깨운다.”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으며, 나라는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를 따라 도사시삼을 따라 들어가본다. 속도를 멈춘 순간, 작가에게는 ‘스스로 그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심한 듯 자신의 일을 하고, 생명을 빚어내는 ‘자연’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본질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저자에게 큰 위안이자 선물 같은 것이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싱그럽고, 우아하고, 때론 처절하고, 그러나 끝내 또다시 꽃을 피우는 여인의 삶을 부정하고 살았던가. 선머슴처럼 떠돌던 마음을 움찔하게 만드는 대자연과의 조우. 우주, 땅, 밭, 돌, 이들이 가진 여성성을 보며 작가는 여성이지만 더 큰 여성을 선망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아우르고 독려하고 참고 키우는 그 순함과 성실함에는 신앙과도 같은 경건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귀먹고 눈먼 후배들을 참아주고 끌어주던 선배들처럼 나이 먹은 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들어선 길에서 오지랖만 넓어졌다는 작가의 푸념에 사람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순하고 정갈한 마음이 느껴진다. 글속에서 저자는 생활에 완전 녹아든 것처럼 느껴진다.

"식물이 떨어뜨린 씨앗 하나가 생명의 움을 틔우기까지, 두더지는 포슬포슬하게 땅을 일궈놓고, 빗방울은 대지의 목마름을 적셔놓고, 또 낙엽은 이불을 덮어 온기를 지켜준다. 무심한 듯 자신의 일을 하지만, 이런 무심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빚어낸다."(p. 204)

 


 

이 책에서 시골 신입생의 묵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끝없이 이어진다. 누군가 하지 않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해, 얽매어 있던 일상의 문제들과 마음의 갈등에 대해, 한 끼 밥에 대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신체를 단련하듯' 저자는 도시와 시골을 매주 성실히 오가며 지금도 '여자 사람 한순'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아직은 적응이 제대로 안 된 듯한 느낌도 난다. 아마 또다른 적이 나타났나 보다.

"저 사이로 무엇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숲속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저것. 그것은 바로 ‘절대 고독’ 그분이다. 깨달아도, 깨닫지 못하여도 비껴갈 수 없는 그분. 사랑해도 소용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소용없는 절대자 그분. 나는 그분과 아주 천천히 친해지려 한다. 나는 그분 앞에서 백전백패이므로 가급적 아주 천천히 다가가려 한다."(p 142)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다 번아웃에 빠진 저자가 자연과 만나면서 치러낸 ‘자신과의 직면’ 서사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나무와 만나듯 자신과 직면한 곳에서 자연은 때로 스승으로, 때로 부드러운 친구로 치유하고 다독인다. 그 과정에서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눈이 쌓인다. 자연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직 내 인생의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다면 '도사시삼'의 탄력 있는 에세이에 빠져볼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에는 바쁘지만 사람과의 접촉은 가급적 줄이기 위한 생활에는 그런 대로 괜찮아 보인다. '반쪽 귀촌'이라고 폄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저자 : 한순

 

1960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시인, 에세이스트며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다. 2015년 문화체육부장관 출판공로상을 받았다. 첫 시집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와 함께 한순 노래 모음 《돌이 자란다》를 발매했다.

 

그림 : 김덕용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UAE관광문화청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미의 고유한 특성을 나무와 자개를 사용하여 세계화시키고 있는 대표적 작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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