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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평점 :
노가다, 막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건설현장에서 막일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흔히 '노가다'란 석 자로 불리웠지만 일본식 용어에서 파생돼 나온 것으로, 우리말로 순화해 '막일꾼' '막노동꾼'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나 그들과의 대화에선 여전히 노가다로 지칭된다. 큰 건물이든, 작은 집이든 건설현장에는 이들이 있다. 필수 필요 인력이기 때문이다. 큰 건물이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에는 기계화돼 크고 무거운 물건을 크레인으로 옳기지만 작은 집을 지을 땐 여전히 이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력이다. 집 곳곳이 그들의 숙련된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 집은 겉으로도 번듯해야 하고, 내부는 더 튼튼해야 한다. 이 일은 대개 숙련된 막노동자들이 한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다 이른바 노가다 일을 하게 된 지 3년이 된 초보 노가다꾼 송주홍 저자가 쓴 『노가다 칸타빌레』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는 노가다의 세계를 텍스트로 풀어준 신선한 에세이이다. 지금까지는 왜 이런 에세이나 책이 없었을까. 독자 생각으로는 막노동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라 그들이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일 터다. 힘든 일 끝날 때쯤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하는 게 어쩌면 일의 스트레스, 삶의 스트레스를 풀 유일한 기회가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겠는가.
작년 노가다꾼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 있었다. 예쁜 얼굴로 유명했던 학원 수학 강사가 갑작스레 노가다 비하 추문에 휩싸여 사과영상을 올린 일이 있었다. 고등학생들을 대학에 보내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강사이기에 공부를 독려하려고 한 표현이었겠지만, "공부 못하면 노가다를 하게 된다"는 강사의 표현은 노가다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못 배우고 기술도 없어 하는 일이 막노동이라는 인식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듣기 좋은 말은 실제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로 지칭하고, 육체 노동자보다 정신 노동자가 돈도 더 많이 벌고, 귀한 일이다라는 인식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아마 그 강사도, 노가다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저 공부가 아닌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 『노가다 칸타빌레』는 사회 인식을 변화하는 데 한몫을 할 수 있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에 쓰인 '칸타빌레'는 음악 용어다. 칸타빌레란 칸토(canto:노래)를 형용사화한 말로 ‘노래하듯이’라는 뜻이다. 노가다와 칸타빌레는 어딘지 어색하다. 서로 호응이 안 되는 단어가 합쳐져 무슨 뉘앙스를 풍기는지 수십 번을 되뇌이며 생각해도 독자의 지식 부족과 노가다 일 무경험이어서인지 어떤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노동일을 노래 부르듯이 즐겁게 한다라는 의미인 것도 같고... 『노가다 칸타빌레』는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나, 저자가 느끼고 경험한 일들의 기록이다. 현장 기록이니만큼 사실적이고 듣기 거북한 일본어나 일본어에서 조금 변형된 표기가 많다. 일제강점기 때 각 건설현장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데려다 일을 시켰기 때문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은 건설현장에서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직군별로 나누어 하는 일과 그들의 애환 등을 가감없이 서술한다. 일본식 표기를 그대로 쓴 것도, 그들의 거친 언행도 사실적 표현을 위해 순화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뜻이리라. 책 마지막 부분에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를 사전식으로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아 독자의 추측이 맞다라는 느낌이다. 건설현장 노동자도 하는 일이 각기 다르다. 맡은 일이 다르니 일당(하루 임금)도 다르다. 하루 10만원에서 25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이 책은 외부인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노동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하는 일에 따라 분류하여 그들의 일을 텍스트로 전환해준다. 단순히 직업 가이드북처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위트와 묘사를 겻들여 풍성한 에세이로 표현한다. 독자로서는 읽기도 편하고 마음도 무장해제한 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저자를 따라 노가다꾼의 하루를 추적해본다. 넥워머를 입고 각반을 찬다. 못주머니를 두르고 카우보이처럼 망치를 쓱 빼본다. 안전화를 신고 선글라스와 안전모를 쓴다. X자 안전벨트를 걸치고는 작업용 장갑을 바짝 당겨 손가락을 한번 움직인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자재 위로 소음과 먼지와 욕설이 뒤엉킬 눈앞에 풍경이 펼쳐진다. 현장이 열린다.
‘노가다꾼’의 아침 풍경이다. ‘데마’(일거리가 없어 쉬는 날) 맞은 날이 아니면, 새벽 5시에 일어나 눈꼽만 떼고 현장으로 향한다. 6시에 출근해 아침밥을 먹는다. 7시에 일을 시작해 몸에 열기가 돌면 9시 참 시간이 된다. 참 먹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11시 반, 대충 작업복을 털면서 함바집으로 향한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으니까. 밥을 빠르게 ‘흡입’하고 1시까지 휴식한다. 그렇게 오후 일과가 시작된다. 그런데 3시가 되면 또 참 시간이다. 배고픈 것도 있지만 쉬는 시간이어서 꿀맛이다. 참 먹고 다시 일하다 보면 4시 반, 하던 일을 정리하고 5시에 퇴근한다. 이후는 개인의 시간이다.
책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다. 건축 공정에 따라 제각기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낸다. 처음 인력사무소에 발을 들인 저자는 현장 잡부로 일하면서 여러 공정을 두루 겪었다. 목수 밑에서 일할 때는 “투바이 못 좀 죽여라”(각목 튀어나온 못을 정리해라)에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바리했다. 곰방 일을 할 때는 ‘신체 건장한 청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저앉아야 했다. 흙손으로 곱게 갠 시멘트를 벽에 바르는 미장공 조수로 일할 때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쉬워 보이는 작업을 하는 철근공이 왜 위험하고 복잡한 작업을 하는 목수보다 임금을 많이 받는지 어렴풋이 생각도 했다. 지름 5센티미터 쇠파이프 위에 서서 구조물을 설치하는 비계공의 작업은 그야말로 아찔했다.
그뿐인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못아줌마’를 비롯해, 자재를 수거하는 ‘핀아줌마’, 현장에 먹선으로 도면을 옮기는 ‘먹아줌마’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대한 여성들 또한 현장에 있다. 또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곁의 현장에서 우리들이 살아갈 공간을 묵묵히 짓고 있다. 그리고 현장 사람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함바 식당 사람들이 있다.
저자 : 송주홍
글 쓰는 노가다꾼.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다. 책을 읽으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글로 세상을 위로하고 싶었다. 글쟁이로 살게 된 이유다. 대전과 서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뒤로도 출판과 홍보 관련 일을 하며 살았다. 서른둘, 모든 걸 정리하고 노가다 판에 왔다. 머리나 식힐 요량이었던 노가다 판에서 삶을 배우는 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2016)이 있다.
저자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무거운 벽돌을 나르며 몸을 짓누르는 ‘중력’을 이겨내고, 시멘트가 굳지 않게 물로 시간을 사기도 하며, 거푸집에 들이붓는 콘크리트의 거대한 ‘압력’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즉 자신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아냈다. 자신이 만든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형틀목수인 저자는 오늘도 망치질을 한다. 막노동꾼 노가다가 책을 냈으니 대한민국 노가다 중 처음이리라. 그래서인지 인터뷰도 했다.
- 건설노동 가운데 형틀목수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노가다 판'에서는 형틀목수를 탑 오브 더 탑으로 여겨요. 항상 무거운 걸 날라야 하고 위험하고 기술 배우기도 어렵거든요. 일당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요. 그런데 제가 따분한 걸 못 참는 성격이에요. 어릴 때부터 항상 들어온 잔소리가 '넌 어떻게 된 놈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였어요. 그런 저에게 형틀목수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잡부 시절, 형틀목수가 일하는 걸 종종 지켜봤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무언가를 분주하게 들고 나르고, 서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 나도 저기에 섞여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죠. 그러다가 형틀목수 '오야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어요. 마다하지 않고 덥석 그 손을 잡았죠.
-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나요?
같이 일했던 형님 가운데 40년 가까이 형틀목수만 하신 형님이 있어요. 진짜 베테랑 목수죠. 그 형님이 언젠가 농담 반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40년을 했는데도 적성에 안 맞아. 너도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일 알아봐.' 자신도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른 일 알아볼까 한다고요.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형틀목수 일이라는 게 그래요. 솔직히 말해, 진짜 힘들어요. 이제 좀 적응할 법도 한데,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삭신이 쑤셔요. 파스 뿌리기가 일상이에요. 가끔 '무슨 부귀영화를 누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죠. 그런데, 정말 재밌어요. 아침마다 손목은 '욱신욱신' 하지만 심장도 '두근두근' 해요. 오늘은 또 얼마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거죠. 후회했으면 벌써 그만뒀을 거예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 하기 싫은 일까지 하면서 살지는 말자는 주의거든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