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문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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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시구문(屍口門)의 정식 명칭은 '광희문'이다. 표지에 '시구문' 현판은 소설적 제목이어서 대신 써놓았을 뿐 현판은 '광희문'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조선 숙종 때(1719년) 현판이 걸렸다고 한다. 광희문은 조선의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로 서울 중구 광희동(光熙洞)에 있다.

광희문은 태조 5년(1396)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기록을 보면 남소문과 광희문의 자리를 혼동하기도 하고, 성문 터과 군영의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도성을 수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은 도성 수축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숙종 37년(1711)에 중건에 착수하는데, 수구문을 다시 쌓고 아울러 문루도 조성하게 하였다. 수구문은 심하게 파괴되어 석축을 새로 개수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서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아문에 목재를 넘겨 주어 돈의문 문루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성문이 수축되고 그 이후 언제 문루가 중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숙종 45년(1719)에 수구문은 옛 이름이 광희문이니, 해당 군문에서 액호를 써서 걸 것을 요청하자 대리청정하던 세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시구문』은 조선시대에 시신을 내어가던, 죽음과 삶의 순간이 어우러진 시구문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넘어 새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청소년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지금의 나이에 비유해 청소년이지, 당시로서는 성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생활 전선에 뛰어든 청소년을 아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하던 시절은 아니니까. 따라서 이 소설은 조선시대 성장소설로 분류하면 될 것 같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던 인조 시대, 백성들의 어려웠던 삶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무당인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는 기련, 편찮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책임지는 소년 가장 백주, 누명으로 몰락한 양반가의 소애 아씨. 어느 시대나 청소년들의 삶은 불평등하고 아프듯이, 이들 역시 괴롭고 힘든 삶을 이겨내려 애쓰지만 각자의 발목을 움켜쥔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제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무당의 딸인 ‘기련’은 시신을 내어가는 시구문 앞에서 사람들을 속이고 푼돈을 벌어들이는 소녀다. 무당인 어머니를 원망하고 외면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 역시 어머니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친구인 백주는 그런 기련을 나무라며, 아픈 아버지와 어린 동생 백희를 책임지기 위해 바삐 살아간다.

기련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양반가의 소애 아씨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런데 청나라의 침략에 도망쳤던 임금이 돌아옴과 동시에, 역모를 꾀한 양반가의 참수가 있었다는 소문이 돈다. 이 사건으로 집안이 몰락한 소애 아씨는 누명을 벗지 못하고 어느 대감 집의 몸종이 되어 버린다. 기련은 팔려간 소애 아씨를 만나기 위해 백희와 함께 김 대감 집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오해와 누명을 쓰고 크나큰 고초를 겪는다.

무당의 딸이라는 운명을 짊어진 기련, 홀로 아버지와 동생을 지켜야 하는 백주, 양반가에서 자라나 누명으로 한순간 노비가 된 소애. 세 사람은 각자의 운명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운명 너머의 삶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러나 치열한 삶의 의지가 펼쳐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과 갈등을 안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다. 때론 벗어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끝내 곁에 남는 유일한 존재가 가족이다. 기련 역시 어머니가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된 후에야 세상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단 한 사람이 어머니뿐이었음을 깨닫는다. 조선시대 무당의 딸이라는 독특한 배경에도 어머니, 가족, 운명의 이야기는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시대가 변해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의 고민과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이 소설은 마치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인 양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요즘의 청소년들과 한없이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시구문 바깥의 삶도 여전히 거칠고 험난하겠지만, 직접 두려움의 문을 넘어선 이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덮은 아이들 역시 마음속 자신만의 시구문을 넘어, 서툴고 어리숙한 모습을 벗고 조금 더 변화한 내일을 맞이할 것임을 믿는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해 계속 밀도 높은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소설의 제목도 그런 의미에서 채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독자의 생각이다. 작중 화자를 통해 죽음의 공포에 대해 작가는 고민하는 것 같다. 작가가 내놓은 해결책은 '기억'이다.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써 떠나보내게 되지만 그 사람의 기억이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화자와 함께 살아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기련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기억, 소년가장 백주의 기억, 몰락한 양반 아씨 소애의 기억도 모두 가슴속에 살아 있는, 죽은 이의 원망과 한을 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금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나이이고, 그때는 충분히 성인 대접을 할 때라 삶의 최일선에서 아픔과 상처를 겪지만 그 상처가 단단한 굳은살이 될 때, 비로소 서툴고 미숙한 자신을 끊어내고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다.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직시하고, 원망하던 가족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무당도 아니고, 아버지를 잡아먹은 나쁜 아내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일 뿐이었다. 아니, 어머니는 한순간도 어머니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외면해온 순간들이 있었을 뿐이었다.(p. 162)

“어머니가 이리 되신 게 저 때문인가요?”

드디어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머니의 대답이 나를 아주 오래 힘들게 할 것을 예감했지만 이런 나와 달리 어머니에겐 작은 두려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기련아, 그저 이 삶은 나의 몫일 뿐이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 두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기꺼이 내 짐을 짊어졌는데도 이제껏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매 순간마다 내 옆에 있었던 건, 오로지 어머니뿐이었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떠나는 사람은 가볍게 가는 거야. 그래야 좋은 길로 간단다.”

이 세상에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단 한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사실을 넘어선 진실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나는 이외에 다른 어떤 진실이 필요했던 걸까. 무엇이 더 필요해서 어머니와 나 사이를 괴롭혔을까.(p. 166)

 

저자 : 지혜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나치기 쉬운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 오래도록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2017년 계간 『어린이와 문학』 청소년 단편소설을 통해 등단했고, 202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시구문』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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