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펼치자 고등학교 시절의 세계지리와 세계사를 가르치시던 은사님들이 생각난다. 당시 세계사 교과서 분량으로 볼 때 미국에 비해 유럽의 역사가 압도적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유럽의 역사를 기술했고, 미국은 중국 등과 같이 요점만 약간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대학 시험에도 세계사 부분은 대부분 유럽의 역사에 대해 출제됐다. 미국의 역사는 짧고 유럽의 역사는 긴 데다 화려하고 치열했으며 웅장하고 아름다움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 비해 이야깃거리가 많으니까.
이 때문에 세계사 선생님들은 인기가 있었다. 왕과 왕비, 유명 예술인과 연인 등의 야사를 곁들여 설명해주면 머리 쓰지 않고 재미 있게 배울 수 있어서다. 그만큼 유럽의 역사는 다양하고 재밌었다. 이에 비해 우리와 관련이 깊은 중국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적성국가(한중 수교 전이어서)라는 이유로 한, 당, 송, 명, 청 등 통일 제국의 변천 정도만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럽의 역사는 아테네 시대부터 로마제국을 거쳐 영국의 대제국 건설 과정까지 정말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칠판에 세계지도(약도, 대륙 모양만 그린)를 그려 놓고 열심히 설명하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엊그제 일처럼 기억된다.
이 책 『세계도시 바로 알기. 1: 서부유럽ㆍ중부유럽』은 정확하게 그때의 독자의 기억을 소환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큰 관심이 있었지만 오래 전 일이라 제국 건설과 카이사르의 활약 등만 부각돼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지금의 유럽 문화는 대부분 로마 제국의 유산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건축뿐만 아니라 유럽인들과 유럽의 각 국가들은 이념이나 사상적으로도 로마 제국에 뿌리를 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적으로 유럽 역사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나라는 약 5~6개 나라다. 물론 독자가 배운 교과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 때문이다. 로마의 후손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유럽 수많은 나라가 명멸했지만 이들 4개 나라는 유럽의 중심국이 되려는 치열한 경쟁을 계속해왔다. 심하면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치열한 것으로 배웠다. 그 경쟁 속에서도 로마의 영향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도 이채롭다. 로마의 영화를 그리워해서일까? 위 4개국 이외에도 스페인(에스파니아),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이 자주 거론되지만 이들 나라는 유럽 패권을 쥐어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모두 독자적인 장점을 잘 살려 유럽 문명에 기여했고 합류했다.
독자는 수차례 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한 번에 전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여러 번에 걸쳐 갔다왔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오스트리아, 스위스다. 아주 작은 공국 수준의 나라를 빼고. 첫 번째 여행에서 받은 느낌은 왜 영토 싸움을 했을까를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다. 관광차 가서 관광지 중심으로 돌아다녀서인지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이 많았다. 그때 경치가 좋은 곳을 차로 돌면서 "이런 땅을 빼앗으로려 서로 싸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이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은 빼어난 경관만큼 건축들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옛날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 해변의 별장을 지어 살았다고 하는데 이런 곳이 아니었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에 갔을 때는 프랑스 파리 등 내륙 중심의 도시를 들렀다. 가는 도시마다 느낌이 다르고 색깔이 달랐다. 어떤 곳은 그들 나라가 강성했던 시절을 회상하듯 더욱 드러나게 꾸미고 가꾸었다는 느낌이 들고, 어떤 곳은 쇠락한 느낌을 지울려고 했는지 옛 유적을 그대로 방치한 곳도 있었다. 역사적 유물이라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옛 로마 제국의 정신을 자신들이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당히 일하고 즐기는 여유 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 그때 그들은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어김 없이 오후 7시에 문을 닫고(호프집은 손님이 원할 경우 8시까지) 점심 시간에도 2시간씩 문을 닫았다. 24시간을 일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고 사실 충격이었다.
이런 문화를모르고 나중에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했지만 허탕만 쳤다. 몇 번의 유럽여행에서 독자가 얻은 결론은 "유럽인들은 조상덕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유럽 도시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고, 도시들의 특성을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연계해 쓴 책이다. 저자 권용우는 지리학(도시지리학) 교수로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직접 방문 확인한 일을 계속 해왔다. 하계와 관직에서도 오랫동안 관련 일을 했다. 수많은 저서 이외에도 현재는 「세계도시 바로 알기」 YOUTUBE 강의교수를 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지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외교학을 부전공하여 석사과정까지 공부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 곳곳을 답사했다고 한다. 대학교수가 된 이후 1987년부터 해외답사를 시작했으며, 2020년까지 34년간 60여 개국 수백개 도시를 답사했다고 한다. 답사가기 전 답사지역을 예습해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현지에서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면서 학습했다. 답사를 다녀온 후 복습하여 답사내용을 정리했다. 지역 연구자들이 행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답사의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지리학 이후 수많은 방법론이 나와 있다. 세 가지 설득력 있는 방법론이 있다.
첫째는 독일학자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의 총체론(Totalitat)이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으로 현지답사를 통해 지역을 이해해야 그 실체가 오롯이 드러난다고 했다.
둘째는 프랑스학자 블라슈(Vidal de la Blache)의 생활양식론(genre de vie)이다. 땅과 연관된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들여다봐야 지역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셋째는 독일학자 헤트너(Alfred Hettner)의 지역론(Landerkunde)이다. 자연과 인문 현상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현상을 알아내야 지역의 본모습이 나타난다고 했다. 세 분은 박물학적 식견을 갖추고 현장답사를 실천한 지리학자들이다. 세 가지 방법론을 종합하면 총체적 생활양식론으로 정리될 수 있다.
총체적 생활양식론으로 세계도시를 바로 알기 위한 구체적 논리는 무엇인가? 먼저 각 도시의 지리, 역사, 종교,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각각의 내용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알아낸 내용이 정확한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관련 문헌과 자료를 검토하며 현지답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오랜 시간과 검증이 요구되는 일이다.
저자는 이어 세계 도시는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총체적인 특성을 바르게 알 수 있다고 제시한다.
첫째는 말(language)이다. 한 나라와 도시가 생겨나고 유지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말을 가지고 있을 때 소멸하지 않고 존속한다. 자국어가 세계 언어인 나라는 그 자체로 세계 국가가 된다. 식민지 상태로 있다 해도 자국어를 붙들고 있으면 독립국가로 일어선다.
둘째는 먹거리(industry)다.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세계 유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배경은 산업이다. 자기들에 맞는 산업을 일으켜서 끊임없는 혁신으로 유연하고 다양하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한다. 핵심적 산업은 자동차, 조선, 전자, 건설, 석유, 기계, 의료, 방위산업, 교육, 관광 등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사물 인터넷, 생명산업, 3D 프린터 등의 신산업이다. 세계도시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은 이들 핵심 산업의 상당 부분을 세계 상위권에 자리매김해 놓고 있음이 확인된다. 부유하지 못한 나라들은 이들 핵심 산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상위권에 들어 있지 않음이 관찰된다.
셋째는 종교(religion)다. 한 나라와 도시가 흔들림없이 유지되는 배경에서 종교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종교로 인한 전쟁과 분쟁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여하한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상당수가 종교적 신앙으로 뭉쳐있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견고하다.
『세계도시 바로 알기』 1권은 서부유럽과 중부유럽 6개국을 다루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에서 해양강국으로 올라섰다. 영어를 세계공용어로 만들었고,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으며, 기독교로 정신적 안정을 추구했다. 영국은 의회민주주의를 처음 세운 국가로 전 세계 의회민주주의 모델이 되고있다. 런던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로 영국의 총체적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영국인의 심장이다. 전원도시 레치워스와 웰윈, 신도시 밀턴 케인즈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친환경도시다. 영국 도시는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시민중심의 도시 거버넌스를 도모한다.
프랑스는 비옥한 땅과 3면의 바다를 가진 나라로 유럽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불어를 세계 5위 언어로 만들었다. GDP 규모는 세계 7위다. 가톨릭의 장녀(長女)라 불리는 가톨릭 국가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통해 세운 자유·평등·박애의 시민정신을 전 세계에 널리 보급했다. 파리는 세계의 문화수도다. 칼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공민정신의 표본도시다. 보르도는 세계적 와인산지다. 남부의 아를, 마르세유, 소피아앙티폴리스, 칸, 니스는 지중해 연안의 명품도시다.
네덜란드는 바다를 메꾸고 방조제를 쌓아 땅을 만들어 국토를 넓혔다. 무른 땅을 농목업 농지로 바꿨다자국어 외에 영어, 독일어, 불어 등을 익혀 국제적 경쟁력을 키웠다. 식품·금융·제조업 등에서 부를 창출해 1인당 국민소득 51,290달러를 올렸다. 국민적 단결과 기독교 신앙으로 스페인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 암스테르담은 수도로 교통기능과 3차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헤이그는 정치행정 중심지이며, 로테르담은 유럽의 관문도시다.
독일은 통일과 분단, 재통일의 과정을 겪었다. 탄탄한 산업과 푸른 환경, 내실 있는 문화적 콘텐츠, 종교가 있어 이겨냈다. 독일어는 유럽에서 영향력 있는 언어다. 독일은 마르틴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이 일어난 국가다. 베를린은 1701년 이후 독일의 수도다. 베를린과 본은 내용상 2극형 수도다. 라인 강 연안의 도시에서는 독일인의 다양함이 꽃핀다. 함부르크는 한자도시(Hansa city)다.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활동했던 도시이며, 뮌헨은 1백만명 마을도시다. 프라이부르크, 슈투트가르트는 환경도시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함께 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제조업 강국으로 1인당 GDP가 48,634달러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흐름이 이어지는 가톨릭 국가다. 빈은 오스트리아 역사의 중심지로 음악도시다. 그라츠에는 전통적 도시경관과 현대적 이미지가 공존한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이다.
스위스는 독어, 불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등 4개 국어를 쓴다.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해 1인당 GDP가 81,867달러로 세계 2위다. 장 칼뱅과 츠빙글리가 활동했던 기독교 국가다. 앙리 뒤낭은 적십자운동을 펴 스위스를 박애실천 선도국가로 올려 놓았다. 스위스 최대도시 취리히,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제네바, 사실상의 수도인 베른, 교역과 문화중심지 바젤 등은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했다.
저자 : 권용우
서울 중 · 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대 지리학과 동 대학원(박사, 도시지리학), 미국 MINNESOTA대학교 / WISCONSIN대학교 객원교수,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대 지리학과 교수 / 명예교수(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총장권한대행 /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한지리학회 / 국토지리학회 / 한국도시지리학회 회장, 국토해양부 · 환경부 국토환경관리정책조정위원장,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 부위원장, 국토교통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장,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회 위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대표 / 고문, 「세계도시 바로 알기」 YOUTUBE 강의교수(현재), 『교외지역』(2001), 『수도권공간연구』(2002), 『그린벨트』(2013), 『도시의 이해』(2016) 등 저서(공저 포함) 72권 / 학술논문 152편 /, 연구보고서 55권 / 기고문 800여 편.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