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싶은 삶의 모든 답은 한 마리 개 안에 있다 - 젊은 철학도와 떠돌이 개 보바가 함께 한 14년
디르크 그로서 지음, 추미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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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젊은 철학도 시절 떠돌이 개 보바를 입양해 함께 했던 14년 동안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 쓴 에세이다. 일반 에세이와 다른 점은 이 떠돌이개를 스승이자 선사로 보고 그 가르침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의 자전적 수행서인 셈이다.

심지어 저자는 개 한 마리와 함께 있다면 스승은 필요하지 않다라거나 니체가 '망치의 철학자'라면 개는 '전기톱을 가진 스승'이라는 극단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불교 서적이 대부분 수행의 엄격함과 평온함을 강조한 데 비해 자유로운 발상과 의식의 흐름도 카테고리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도록 해놓고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들은 보바 같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곧 진리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환생설에 백 퍼센트 설득당하지 못하면 곧 ‘진짜 불교도가 아닌’ 게 된다. 성경의 특정 구절을 ‘단지’ 하나의 비유로 이해한다고 하면 당장 질타를 받고 교회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혹은 요가 박람회에 가서 소시지를 한 번 팔아보시라."(p. 159)

 


 

책의 초반부에는 어떻게 이런 멋진 개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여러번의 입양과 파양을 겪으며 동물보호소를 전전하던 떠돌이개 보바는 이미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서 보바를 감당할 수 없었던 친구가 입양을 제안하면서 만나게 된다.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라는 평가를 받은 보바였지만 저자는 첫눈에 ‘영혼의 단짝’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인연은 보바가 췌장암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14년간 이어졌다.

독자는 이 점을 보고 개 보바를 '아이' 혹은 '자식'으로 보며 책을 읽어보니 아무 반대 감정 없이 대부분이 그대로 들어맞아 보바는 상징일 뿐 세상 물 들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는 점을 느낀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의 아이나 자식을 보고 있으면 마치 명상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잊게 되는데 저자는 그런 순간을 철학적 사유가 묻어난 멋진 문장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임의적으로 개를 아이에 대입시킨 점은 독자의 생각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

"개울가에서 잠든 보바가 그 깊은 고요와 만족감을 나에게도 전달했던 그 순간, 나는 자연의 그 무엇도 계획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개울은 흘러갈 뿐이고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나무는 바람의 멜로디를 알아차리고 춤을 출 뿐이다. 자연의 그 어떤 것도 인간적인 사고에 빠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가에서 ‘무위(無爲)’라고 했던, 행동 없는 행동을 할 뿐이다. (중략) 무위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道)가, 삶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두는 것이고, 모든 것이 스스로 자라고 꽃피우게 두는 것이며, 개울물 소리에 집중하고 자기만의 내면의 고요함과 자기만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원 벤치는 무위를 연습하는 데 아주 이상적인 공간이다. 세상 느긋한 어느 중국인이 인류 최초로 벤치를 설치하는 모습이 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p. 45~46)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철학적 질문과 불교, 여러 영성가들의 말을 보바와 함께 풀어간다. 공(空), 무아(無我), 사성제, 윤회, 도(道)와 선(禪). 그리고 붓다의 여러 가르침과 틱낫한, 중국의 한산 스님, 조주 선사, 앨런 와츠, 스즈키 순류, 리처드 로어 신부 등. 머리로만 익히고 알았던 철학 이론과 영성가의 말을 보바의 행동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핵심을 뚫은 것이다. 철학 전공자로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범주화하는 습관에 길들어 있던 저자에게 본능대로 움직이는 보바는 세상을 새롭게 보는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

책에 따르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갈 때면 낯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도, 또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흔들다 저자의 머리를 세게 때린 것도, 아끼는 안락의자를 다 물어 뜯어놓은 것도 ‘한심한 제자’인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느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비로소 지금까지 어떤 틀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머리로 꾸며진 가짜 현실 속에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과거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며, 그것이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고 애써 의미 부여를 해온 자신을 발견했다. 진흙을 잔뜩 묻혀온 보바가 욕실을 온통 추상화로 가득 채우고는 활짝 웃으며 잔뜩 화가 난 저자에게 안기던 날, 보바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인간은 그렇게 산다니까!”

 


 

저자는 현재 불교계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도 서슴치 않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동물보호소를 가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또한 종교에서 영적 깨달음보다 종교단체에 대한 소속감이 극도로 중시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소속감만이 존재하고 애초의 가르침과 진정한 해방은 등한시되는 폐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다른 종교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한다. 그러나 잘못된 흐름만을 지적할 뿐 비난이나 폄훼는 하지 않는다.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이는 데 독자는 반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매료된다. 영적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스승의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지만, 수년 동안 아무 소득도 없는 면벽 수행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스승이 될 자격을 부여하고는 제자들과 의존관계, 혹은 그보다 더 나쁜 관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데 과연 누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선불교 공동체를 찾아가려 한다면 나는 가까운 동물 보호소로 가보라고 권하겠다. 개들은 선불교 스승 자격증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다. 네 다리로 서서 혀를 내밀고 있지만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대하고, 늘 털을 떨어트리지만 자신의 지혜를 아무런 대가 없이 전수해준다. 권력 관계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존재 자체로 깨달음을 준다.

어디서든 명상하며 되지도 않는 법석은 떨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말이 없는데도 걸어 다니는 공안 그 자체이다! 그리고 자신의 에고보다 당신에, 그리고 당신의 기쁨에 더 관심이 있다! 진짜 솔직히 말해보자. 당신은 이 이상 뭘 더 바라는가?"(p. 93~94)

 


 

책장을 넘길수록 보바와 수행중인 저자는 마음으로 교감하고 진심으로 나눈다. 진심으로 대하고 솔직한 것이 우리 신경과 에너지를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현명하기 이를 데 없는 보바처럼 사는 것이 진정 하나의 대안이 되어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주장한다. 많은 영적 전통에서 안타깝게도 그런 소속감이 극도로 중시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소속감만이 존재하고 애초의 가르침과 진정한 해방은 등한시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해서 둘도 없이 옳은 길을 가는,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그 길을 가는 행위가 아니라 그 길 자체가 추앙된다. 하지만 그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돌아서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옆길이나 남들은 가지 않는 오솔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원래 야생의 오솔길이었던 선의 길에 아스팔트가 깔려버렸다. 하지만 모방을 통해서, 혹은 자신만의 경험을 그 어떤 전통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으로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p. 204)

 


 

그렇게 개 보바를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즐기고 모든 존재를 열린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두며 이 우주에서 먼지에 불과한 생명의 존재 이유를 배운다. 이런 불교철학적 배움 말고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과 한 마리 개 사이에 나눈 교감과 사랑을 감상할 수 있는 에세이다.

근본적으로 이 책의 핵심은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 개가 나눈 깊은 교감에 있다. 생명을 가진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생명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사랑한다면 이 세계를 따듯하게 만들어갈 수 있음을,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 : 디르크 그로서(DIRK GROSSER)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정신세계와 명상, 불교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이자 음악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산책, 책, 개, 숲, 산, 바다를 사랑한다. 전 세계 여러 종교의 신비주의와 명상 전통들에 조예가 깊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책을 출간했으며, 관련 CD를 발매했다. 덧붙여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며 각자만의 길을 새롭게 보는 일을 돕고 있다. 고대철학과 신비주의자 소로우, 에머슨, 도가, 명상,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기만의 경험에서도 많은 걸 배웠다. 국제 기독교 신비주의 명상 공동체에서 청소년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고, 정신세계 전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다양한 음악 밴드에서 활동했다. 전통적인 단체에 소속되는 걸 싫어하지만 꾸준한 명상 수행으로 온갖 명상법의 좋고 나쁨을 두루 경험했다나. 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좋은 명상으로 판명되기도 했고 그 반대도 있었다. 두 딸의 아버지로, 독일 빌레펠트 근교 어느 목장에서 살고 있다.

홈페이지_ WWW.DIRK-GROSSER.DE

 

역자 : 추미란

 

동국대학교와 인도 델리 대학교에서 인도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독어, 영어 출판 전문 기획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기계발, 철학, 역사, 명상, 종교, 뉴에이지, 뇌과학, 양자역학, 사진 분야에서 4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 『두려움과의 대화』, 『원네스』,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 『당신이 플라시보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보통의 깨달음』 등이 있다. 긴 산책, 명상, 개와 고양이, 요리, 그림, 낯선 곳으로의 여행 등 깨달음을 주는 삶의 소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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