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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박혜성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3월
평점 :
독자는 이 책을 받아들기 전까지 루이 비뱅이라는 화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서양미술사나 각 테마별 그림이야기 책, 정통 서양미술 감상법 등을 다룬 미술 서적들이 화려한 그림과 뛰어난 인쇄술로 눈에 확 띄는 책이 되어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이 책도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이미 파리에선 유명한 화가였던 그런 분 중의 한 명이리라 짐작한 독자는 조금 뻘쭘해지고 말았다.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독자의 그림에 대한 무지만 드러낸 셈이 됐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이 아니라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눈은 약간 의심부터 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들이고 어린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그림삽화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은 일러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인물들이 조그맣게 표현된 대성당 그림 등에서는 우리나라 조선 의궤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모두 익숙한 듯한 느낌의 그림들이라 쉽게 정이 드는 그림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림 몇 점 봤을 뿐인데 화가도, 그가 그린 그림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파리의 삶'을 그린 것들이 독자의 눈을 잠시도 책에서 뗄 수 없게 한다. 순식간에 내달려 읽다가 책을 덮을 무렵 독자는 루이 비뱅을 좋아하게 됐다. 그의 그림을 사랑하게 됐다.
루이 비뱅은 파리 시민들이 ‘행복한 화가’라고 부르며 사후 70여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는 화가라고 한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좋은 물감이나 캔버스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늘 작은 크기의 종이에 무채색이 대부분인 그림을 그렸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서툴지만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는 듯한 그의 그림들은 위안이 필요했던 시기 파리 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바로 그의 이름은 루이 비뱅이다. 우리에겐 진정한 파리 시민이고 파리의 화가라고 일컬어질 만하다.
이 책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은 저자 박혜성이 루이 비뱅의 일생과 그림을 설명을 곁들인 에피소드 위주로 편찬한 책이다.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꾸었던 루이 비뱅이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파리의 우체부로 살아가면서도 오래 전 꿈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말로만 듣던 가난한 파리의 화가였나 보다.
파리로 이주한 뒤에는 61세 은퇴 전까지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평범하지만 성실한 삶을 살았고, 남는 시간에는 우체부로 파리를 누비며 눈에 담았던 풍경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그 자체가 작품이자 일상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은퇴한 뒤 더욱 그림에 전념하던 루이 비뱅은 우연히 근처를 방문한 유명한 화상 빌헬름 우데를 만나 전시회를 할 기회를 얻게 된다. 파리 외곽의 정겨운 전원풍경, 결혼식을 축하하는 하객들, 눈 오는 날 동심으로 돌아간 파리의 모습 등 파리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이 주인공이 된 루이 비뱅의 그림을 보며 행복에 젖었다.
저자에 따르면 정규 미술 교육 한번 받지 않고 62세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로 데뷔한 루이 비뱅에 관한 이야기는 ‘프랑스의 행복한 화가 스토리’로 여러 번 회자되었지만 남겨진 기록은 별로 없다. 저서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등으로 '아트 스토리텔러'로서 대중들에게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쉽게 알려주는 역할을 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루이 비뱅의 인생 여정과 꿈, 삶에 관한 메시지까지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그런 루이 비뱅의 그림과 인생 이야기에 흥미와 감동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곁에 두고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거나 지칠 때마다 한 번씩 열어볼 만하다. 작가론과 작품론을 한 책에 모두 수록한 셈이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돼 있다.
〈PART1. 인생을 그리다〉에서는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재능 많던 소년이 파리로 상경해 우체부가 되고 가정을 꾸리는 인생 여정을 그린다. 〈PART2. 꿈을 그리다〉에서는 루이 비뱅뿐만 아니라 그처럼 늦은 나이에 재능을 꽃피운 소박파 화가들의 일생이 교차하며 꿈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다.
〈PART3. 행복을 그리다〉에서는 살아가면서 꺼내볼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을 어떻게 마음속에 그릴 것인가에 대한 삶의 메시지가, 〈PART4. 장소를 그리다〉에서는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파리를 바라보는 루이 비뱅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따라 느긋하게 파리 곳곳을 여행을 하고 난 듯한 설레고 여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이 루이 비뱅의 그림에 열광한 것들도 그런 이유였다. 강변에서 한가로운 소풍을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습, 꽃 시장에 꽃을 사고파는 풍경, 우체부인 비뱅을 맞이하는 파리 외곽의 정겨운 풍경들… 그림 속에 얽힌 소소한 사연들과 따뜻한 화풍으로 꾸며진 일상의 주제들이 마치 자신들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제로 비뱅의 삶 대부분은 고되고 힘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비뱅이라면 마음만은 따뜻하고 파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누구보다 파리를 사랑한 화가였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루이 비뱅을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특별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그림들이 하는 말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빛나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며, 어쩌면 평범하게 지나친 지금 이 순간이 당신 인생의 가장 특별한 순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후 2년 뒤 모든 화가들의 꿈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화가로서 이름을 올리기까지, 이 책은 그런 루이 비뱅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에 대해 되새겨보게 해주는 감동 에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파리를 '예술의 도시' '화가들의 천국' 등을 떠올린다. 그만큼 파리라는 도시는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의 도시로 각인돼 있다. 독자는 '파리에 가면 누구나 화가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독자 역시 파리에 여행한 적이 있지만 그림에 관한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기억을 갖고 돌아왔다.
십수 년 전 이야기지만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했다. 가기 전 일정에 넣어둔 방문이었다. 30분 넘게 줄 서서 들어간 모나리지가 있는 방은우리나라 장날 못지 않게 붐비고 있었다. 「모나리자」를 보겠다고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니 박물관 측에서 그림의 훼손을 우려해 가이드라인을 쳐놓고 가까이 접근을 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가까스로 떠밀려 10여초 간 본 「모나리자」는 이번엔 새로운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왕이나 황제의 초상화가 아닌 다음에야 매우 큰 작품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예상보다 너무 작은 크기에 실망했다. 모나리자의 미소도, 눈썹도, 피부색마저 못 본 채 떠밀려나오고 말았다. 화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의 성지이기에 그러려니 애써 실망감을 감춘 채 되돌아오면서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세밀한 계획을 세워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보고 오리라고 홀로 속으로만 다짐했다.
이 책에 나온 파리의 예술적 향기는 비뱅에게 잠재되어 있던 화가의 꿈을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만을 고집해 그린 비뱅의 진정한 의도는 파리를 사랑한 나머지 온전히 파리를 자신의 그림 안으로 품어 안았다는 느낌이 든다. 파리의 유명한 건축물은 물론 야외 풍경, 심지어는 파리 시민의 사소한 일상까지 모두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배어 있다. 독자 개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몽마르트르, 눈 내린 테르트르 광장」이다. 눈 내리는 설경을 그렸지만 차갑고 움츠려들기보다는 뛰어노는 아이들, 손수레를 이용해 물건을 파는 사람, 우산을 받쳐들고 어디론가 총총히 가는 사람들... 모두 생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슴속 숨어 있던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아득한 옛날 행복했던 기억도 전부 소화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옛 정취를 담은 카페를 구경하다 보면 금세 테르트르 광장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몇 년 전 내가 이곳에 갔을 때는 마침 함박눈이 펑펑 내렸는데 그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비뱅의 그림 〈몽마르트르, 눈 내린 테르트르 광장〉이 오버랩되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의 향연에 가게 주인들은 살짝 당황하지만 나무에 핀 눈꽃과 하얀 모자를 쓴 지붕, 사람들의 미소에 마음이 금세 포근해진다
「PART4. 장소를 그리다」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는 꿈을 이야기하며 자란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비뱅은 자신의 그림과 인생을 통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준다. 그러니 지금 당장 여건이 안 된다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섣불리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행복인 삶, 그것이 비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생의 비밀이다.
「마치며, 꿈은 행복이다」 중에서
저자 ' 박혜성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00여 회의 국내외 전시를 한 화가자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쉽게 풀어주는 에세이 작가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미국, 멕시코 등 2014년부터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 살며 미술관 탐방을 하고 있다. 아트 스토리텔러로서 미술 인문학 강의, 누적 방문자가 260만 명에 달하는 미술 분야 인기 블로그 [화줌마 ART STORY]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2021년, 2016년 네이버 미술 분야 「이달의 블로그」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키라의 박물관 여행 10: 뉴욕현대미술관』이 있다.
2016~2006 이서전 (인사아트센터 외)
2016 이화크라프트 앤 아트페어
2003 재뉴질랜드 미술협회전 (오클랜드)
1995~1986 신이화전 (예술의전당 외)
한국미술협회전, 초대전, 단체전 100여 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