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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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성 가득한 아날로그 소재의 소설을 읽었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소통을 해갈해줄 대체용으로 에세이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이 많이 출판되지만 막상 그것들은 대부분 '마음 치유'를 위해 심리 요법이나 미술 치유법을 사용한다. 이 소설은 LP판을 소재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운다. 뮤직숍에서 파는 것은 오로지 LP판이다. 그것은 뮤직숍의 주인이자 주인공 프랭크의 LP판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 때문이다. 프랭크는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이후 어릴 때부터 살아온 바닷가 하얀 집을 떠나 허름하고 낡은 가게들이 늘어서있는 유니티스트리트에 음반 가게를 열고 정착한다. 유니티스트리트가 있는 항구 도시는 지난날 한때 치즈와 양파를 주재료로 사용해 영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과자 공장이 크게 번성하면서 활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점점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낙후되어가고 있다. 한때 산업의 발달로 활기찬 도시는 그 산업이 쇠퇴하면서 사라져가는 옛 모습을 그리워하고 향수에 젖을 수 있는 멋진 소재이기도 하다.

유니티스트리트 인근 이 도시의 최대 번화가인 캐슬게이트에 대형 음반사의 체인점이 있고, 엘피판 대신 시디(CD)가 음반 시장의 대세를 이루어가기 시작하면서 프랭크의 음반 가게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14년 전, 프랭크가 처음 음반 가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엘피판이 중심이었다. 프랭크는 음악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엘피판을 들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음반사 영업사원들이 시디(CD)를 취급해주길 원하지만 프랭크는 끝내 엘피판만 판매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사실 프랭크의 음반 가게는 다른 가게와는 음반을 판매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프랭크는 어릴 때부터 집 안이 온통 엘피판으로 가득 채워진 집에서 살아왔고, 단 하루도 음악을 듣지 않았던 날이 없을 만큼 평생을 음악과 더불어 숨을 쉬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랭크의 어머니 페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었던지 프랭크의 내면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 들어있다시피 하다.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극히 일부분만 듣고도 무슨 곡인지 알아내고, 허밍만 듣고도 무슨 노래인지 제목을 맞힐 만큼 프랭크의 몸 안에는 방대한 음악이 들어 있다. 어머니에게 매일이다시피 들었기에 음악가나 음악에 얽힌 이야기도 무수히 많이 알고 있다. 프랭크는 손님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금세 어떤 음반을 소개해주면 좋을지 감을 잡는다.

프랭크가 소개해준 음악을 들어본 손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프랭크의 음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음반을 구입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음악을 통해 위안과 치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프랭크는 마치 정신과의사처럼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나서 손님들이 현재 처한 감정 상태에 적합한 음반을 소개해준다. 따라서 프랭크의 음반 가게에 처음 발을 들여놓긴 쉽지 않지만 한 번 와본 사람은 누구나 단골이 된다. 프랭크가 시디를 취급하지 않겠다는 건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유니티스트리트에는 프랭크의 음반 가게 말고도 오래전부터 문을 열고 장사를 해온 이웃들이 있다. 전직 사제인 앤서니 신부가 운영하는 종교 선물 가게, 언제나 당당하고 밝게 보이지만 남다른 아픔이 있는 모드가 운영하는 문신 가게, 쌍둥이인 윌리엄스 형제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장의사, 젊은 시절 폴란드에서 이주한 노박이 운영하는 빵가게가 있다. 종교 선물 가게의 앤서니 신부와 문신 가게의 모드는 틈만 나면 프랭크의 음반 가게에서 시간을 보낸다. 저마다 가족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처지인 데다 10년 넘게 우정을 나누며 지내온 사이라 전혀 허물이 없다. 프랭크와 함께 가게를 지키는 유일한 종업원 키트는 물건을 손에 쥐었다 하면 망가뜨리고,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유쾌하고 부지런해 언제나 음반 가게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느 날 음반 가게 쇼윈도 밖에서 녹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커다란 눈으로 가게 안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가 프랭크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진다.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간 프랭크는 앤서니 신부와 키트의 도움을 받아 녹색 코트 여자를 가게 안으로 옮긴다. 여자는 의식을 잃고 있지만 숨을 쉬고 있다. 키트는 앰뷸런스를 부르지만 잠시 후 여자는 눈을 뜬다. 여자의 이름은 일사 브로우크만이다. 첫사랑을 떠나보내면서 실연의 상처가 컸던 프랭크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순수하고 매력적인 일사가 나타나면서 점점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 간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세 가지의 재미를 선사한다. 첫 번째 재미는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이 있다. 저마다 녹록치 앟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웃음과 눈물을 준다. 마치 영국의 유명 제작사 '워킹타이틀 필름스'의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을 보는 것 같다. 또 조연급 캐릭터들의 신 스틸러들이 다수 등장해 독자들의 즐거움을 끌어내고 만족할 만한 미소를 짓게 한다. 엉뚱하고 모자라 보이지만 착하고 유쾌한 키트, 원래는 사제였다가 가슴 아픈 사연을 뒤로 하고 조기에 은퇴해 종교 선물 가게를 꾸려가는 앤서니 신부,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이 야속해 늘 툴툴거리는 모드, 프랭크와 일사가 매주 만나는 카페 〈싱잉 티포트〉의 종업원도 생동감이 넘쳐 자칫 무거워질 분위기를 살려낸다. 이들이 어울려 내는 말, 몸짓, 웃음 등은 소설의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이끌어준다.

 


 

두 번째 재미는 따뜻한 웃음이다. 독자들은 이야기 사이사이에서 프랭크의 어린 시절을 접할 수 있다. 괴퍅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프랭크, 청소년 시절의 프랭크의 모습이 그려진다. 유니트스트리트 사람들의 곡절과 사연이 많은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그들은 힘든 날이지만 좌절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삶에 대한 희망과 극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절망과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 독자들의 미소를 끌어내는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에도 저자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 번째 재미는 음악이다. 책을 읽으며 소설 속에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저자의 말에, 인물들이 하는 말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알던 곡이라도 몰랐던 곡이라도 다 들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옮긴이의 귀띔이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독자들은 귀와 정신이 한층 고양됨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늘날 LP판에 대한 향수는 50~60대 이상의 기성 세대만 느끼겠지만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해 더욱 감성적이고 어려운 시절의 감성까지 더해지면 이 소설에 흠뻑 빠질 수 있을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소설의 배경이 영국의 어느 도시이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어떤 곳을 떠올리면 이와 비슷한 삶들이,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남의 나라 남의 일이 아닌 코로나 시대 우리가 바라는 이웃과의 소통, 정감, 감성들이 뚜렷이 그리워지는 소설이다.

 


 

저자 : 레이철 조이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고, 브리스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후 왕립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99년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BBC 라디오4에서 브론테의 소설들을 비롯한 고전을 각색한 라디오 드라마 20편을 집필했고, BBC 라디오2에서 드라마 시리즈 각색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7년 BBC 라디오 극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2년 《선데이 타임스》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한편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 소설로 커먼웰스 도서상, 2012년 올해의 신인 작가상을 수상했고, 맨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 2014년에는 올해의 영국 작가 후보에 올랐고, 현재 30여 개국에서 작품을 출간하고 있다. 2017년 작 《뮤직숍》은 《더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퍼펙트》, 《퀴니 헤네시 양의 사랑 노래》, 연작 단편소설집 《스노 가든과 그 밖의 이야기들》 등이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레이철 조이스의 『뮤직숍』은 2018년에 영국의 [더 타임스]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이다. 레이철 조이스는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다. 2012년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레이철 조이스는 드라마 작가 출신답게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장점이 있고, 웃음과 감동이 버무려진 이야기로 독자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소설을 써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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