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집 연대기 - 일생에 한번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찾는 경이로운 시간
박찬용 지음 / 웨일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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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니 대학 때 하숙, 자취 생활을 하던 때, 결혼 후 집을 처음 사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특히 처음 집을 사서 이사하던 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라 일상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들도 잘 아시겠지만 처음 집을 산다는 것, 오랜 직장생활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작지만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일상의 기억보다는 특별한 날의 특별한 기억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이 기분 좋은 날의 추억은 곧 책읽기로 이어지면서 저자의 궁상스러운(?) 행위도 나중에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걸 아는 선배로서 내용 하나하나도 모두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 책 『첫 집 연대기』는 좋은 물건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 모든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 쓴 글이다. 일상을 소중하게, 시간을 아름답게 활용하는 꼼꼼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사람이라고 추정된다. 그의 글 여기저기에서 잡지 에디터답지 않게 조금은 궁상스러운(?) 행위도 발견되지만 소시민의 삶을 개인의 취향과 원하는 삶을 위해 과감하게 바꿀 줄 아는 분인 것 같다.

 


 

저자는 서울에서의 다양한 임대 형태 앞에서 독립은 취향처럼 선택의 범위가 아닌 예산의 한계에서 협의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의 독립 생활에 앞서 집을 고르는 일, 내부를 자신의 취향으로 바꿔가는 일, 그리고 만족감으로 고된 노동과 힘든 집 수리도 마다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성향의 '월세 세입자'다. 정원은 있지만 호화롭지 않은, 대학가 수준 임차료의 오래된 단독주택 2층을 얻고 종종 '돈을 주고 벌칙을 산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집을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바꾸고 채워가는 일을 혼자 다 하는 고됨과 힘듦도 느끼지만 의자가 '예뻐서'라고 눙치는 모습도 쉽게 연상된다. 저자가 화장실에 이탈리아 피안드레의 타일을 깔고 스위스에서 온 의자를 빈방에 두는 것, 종이 박스 위에서 원고 작업을 하는 궁상(?) 속에서도 우아하지 않으면 어떠하랴. 그렇게 저자에게는 첫 집이라는 낭만의 맨얼굴은 위로처럼 찾아왔나보다. 저자의 첫 집은 구입이 아니라 월세였던가. 저자는 이 책에서 집뿐만 아니라 삶에도 서툰 사람임을 고백하는 듯하다. 맞다. 직업에서의 일은 일류지만 삶 속의 집은 영 서투르다. 우리 일반 직장인들의 보통 모습이다. 그러나 월세지만 첫 집에 가구가 아닌 '나'를 채워간다고 느끼는 사람, 저자는 삶의 멋을 안다.

이 책은 한 독립 인간이 살림이나 인테리어보다는 자기 자신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마 삶의 많은 변화를 느낄수록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잡지 에디터다.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브랜드를 읽고, 도시의 보통 사람을 위해 감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유를 하는' 박찬용이 쓴 책이다.

저자의 새로운 책 『첫 집 연대기』는 오롯이 자신의 독립으로 채워져 있다. 삶의 변화를 위해 생에 첫 독립을 다짐하지만, ‘마감-출간’이라는 급급함으로 인터넷으로 해결하게 된 서울의 임대 정보는 일상의 피로함에 '괜찮은 집들이 얼마나 비싼지 알게 되는 과정'을 더할 뿐이었다. 심지어 독립해 살 지역조차 발 딛고 있는 일과 작업에서 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독립하는 내내 배웠다”라고 고백한다. 삶의 맛을 제대로 느낀 표현이다. 그러나 독자는 이 표현이 참 좋다. 삶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집이 바로 마음에 들었다. 왜였는지는 아직도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시세가 싸서였을까?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였을까? 마당에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있어서였을까? 내가 쓸 수 있는 차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디가 됐든 나가서 혼자 살고 싶어서였을까? 그게 뭐든 일상을 바꿀 요인이 필요했을까? 이 모두가 이유였을 것 같다. 나는 그 모든 막연한 기분을 모아서 한순간 결심을 하고 말았다.

“저 계약할게요.”

집을 보여준 할머니께 그렇게 말하고 그 집에서 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가서, 신도림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버스 생활권에서 지하철 생활권으로."(p. 75)

 


 

저자의 '독립 판타지'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자 “몸을 쓰고 돈을 쓰고 소소한 손해를 입어가”는 과정이다.

오래된 월셋집에 시간과 돈을 들이며 집을 고치고 채우는 과정을 들은 사람들이 놀라거나 황당해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할 터다. 하지만 이 과정은 고작 독립 판타지에 대한 성공과 희망, 남다른 특별한 취향을 채운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있는 실패와 고됨, 곤궁한 현실 앞에서 한발 물러서는 취향에 있다. 이 책의 저변에는 저자 자신의 고집스러운 삶의 변화를 복기하는 일이 담겼다. 이 책을 결코 제 자신의 독립 이야기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저자의 처음 다짐은 책의 말미에서 더 선명해진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내 어쭙잖은 기호와 취향이 아닌 내 태도와 행동과 그 이유였다. 내가 무슨 의자를 골랐는데 그게 누가 어디서 만든 물건인지, 내가 무슨 타일을 골랐는데 그게 얼마나 훌륭한지, 그런 건 이 책에 나오긴 하지만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아니다. 나는 선언하거나 제안하는 대신 대응하고 적응하려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이런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요즘 집이 주는 의미는 과거의 것과 무척 다르다는 것을 독자도 이미 안다. 안락한 공간 자체와 휴식의 의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타인의 것보다 더 넓고 더 많이 비싸야만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부의 경쟁 한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반대로 새로운 것을 제 공간에 담기 위해 치열해진다. 결코 세속적인 ‘수단으로서의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집의 기쁨과 슬픔의 차이는 여기에서 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건 2010년대 후반 서울에 혼자 살게 된 어느 평범한 30대 남자가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살아보겠다고 애를 써보는 이야기다. 눈은 높아졌지만 돈은 모자라고,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모든 조건이 제한되어서, 알면서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어떤 걸 하고 나서 바보처럼 기뻐하기도 하는, 그렇게 첫 집을 조금씩 채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 집에 책을 나르던 초여름 밤이 ‘단독주택의 스위트 스폿’ 같은 기분이었다.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창밖에는 마당에 심은 감나무의 꼭대기가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도로의 불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이파리의 진한 초록빛이 숨길 수 없는 생명력을 반짝이며 드러냈다. 도로의 불빛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다른 집들의 틈새 사이로 10차선 도로의 일부가 드러났다. 멀리 어둠 속의 자동차들은 헤드라이트 불빛과 함께 시야 속으로 달려왔다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와 저 멀리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옆집에서 틀어둔 노래의 드럼과 멜로디 라인처럼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p. 187)

 


 

이 책은 작가가 얹혀살고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나가기’(1부)부터 시작한다. 고정된 삶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집을 고치고(2부 고치기) 채우면서(3부 채우기) 느리지만 소소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온 내면의 변화를 발견한다. 저자는 동선을 바꾸며 택시를 덜 타게 되고 책을 더 읽게 되었다. 또한 오래된 집에서는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파트에서 살던 편안함이 아닌 관리해야만 하는 낡은 집에서, 바람이 불면 삐걱거리는 구석을 살피고 봄이 오면 천장에 낀 거미줄을 걷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마당이 있는 낡은 집에서 느끼는 생명의 대단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주변 환경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 지붕을 공유하는 특이한 건물주와의 어려운 관계 속 의사소통 기술도 배운다.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벽과 집주인과 임차인 간의 건널 수 없는 틈은 있다 해도 삶의 허들이 될 수 없다는 것조차 집이 알려준 것들이다. 2년 계약한 집에서 2년 더 연장해 사는 이유도 집에서 배운 삶을 대하게 된 태도 때문 아닐까.

독자는 혼자 살아본 적은 대학 생활 때 외에는 없어 저자처럼 오밀조밀, 세심하고 유쾌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책을 통해 배운 저자의 의지는 한 수 빠른 독자가 한 수 더딘 저자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한 수 배운 것 같다.

 

저자 : 박찬용

 

1983년 어머니의 고향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7년 아버지의 고향 서울로 왔다. 금천구와 영등포구 등 서남 권역에서 살았다. 2010년 서강대학교 영미어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12월부터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로 일했다. 일했던 5개의 매체 중 지금까지 출판되는 잡지는 [크로노스]와 [에스콰이어] 정도다. 직업 덕에 도시 생활의 여러 면모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기까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름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많은 걸 잃었다. 심야의 올림픽대로와 강남권의 아주 매운 야식과 고타르 담배와 함께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다 저자가 됐다. 『요즘 브랜드』(2018) 『잡지의 사생활』(2019). 둘 다 많이 안 팔렸다. 출간만으로도 영광이다.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2020)를 냈다. 『요즘 브랜드 2: 한국편』(가제)을 작업 중이다. 아직은 서울에 살며 원고를 만든다. 담배와 아주 매운 야식은 끊었다. 독립한 후엔 올림픽대로 대신 강변북로를 오간다. 강변북로보다 올림픽대로를, 올림픽대로보다 노들길을 좋아한다. 화려함보다 소박함, 명성보다 품질을 좋아한다. 스스로를 강남도 강북도 아닌 영등포 사람이라고 여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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