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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 어쩌다 보니 황혼, 마음은 놔두고 나이만 들었습니다
이나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행운이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노후를 준비해야 할 즈음 어떻게 해야 할까에 고민하던 독자의 걱정을 이 책 한 권이 말끔히 걷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데 중점을 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살 삶에 훨씬 무게가 실린 책이다. 물론 저자인 이나미의 삶은 안 봐도 훌륭한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니 돌아봐서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는 삶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만족하는 삶, 풍요로운 삶, 타인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동안 그 틈의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이 없을 리 없다. 그의 삶은 그런 일도 모두 훌륭하게 극복하고 평온한 삶의 순간에 이르렀는데 다시 성찰하고 반성하는 많은 내용을 이 책에 실었다.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비추어 안타깝고 후회할 일이지, 보통의 삶에서 보면 매우 잘산 삶이라고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그렇게 조그만 후회도 놓치지 않고 반성하는 삶을 살아온 저자에게 후회할 정도로 큰 과오는 없었으리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옛날 기준으로는 '장수'라는 환갑이 되어서야 조용히 삶을 관조하는 평온한 삶에 반성할 일이 얼마나 있으랴 싶다. 그러나 그의 지식과 경험으로 얻은 지성(知性)과 성품은 자신이 후회할 일도, 반성할 일도 하나 놓치지 않고 되돌아봄으로써 아름다운 나머지 삶을 살아가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독자로서는 감동이고 존경의 마음이 인다.

저자의 삶을 잠깐 되돌아본다. 요즘 육십이라는 나이는 퍽 애매하다. 환갑 잔치를 앞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던 것은 아주 옛말. 중년보다 더 중년 같은 외모에, 자식들 수발을 받기는커녕 여전히 품에 끼고 등골 빼주느라 경제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일컫기에는 숫자 ‘60’이 주는 노쇠함이 묵직하다.
그러니 중년도 아닌, 노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라는 것.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인지 어딜 가든 영 반겨 하지 않는 눈치라 서운한데, 입장 바꿔보면 자신들보다 더 나이 든 노인들이 달갑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 그런데 나도 사실 양로원 봉사는 좀 버겁다. 삼십여 년 같이 산 시어머니만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면서 어떻게 양심 없이 다른 노인을 찾겠는가. 어머니도 손주나 증손주가 환갑 된 딸보다는 훨씬 더 반갑고 예쁘다 하시지 않는가.
아마 이래서 아주 늙지도 않고 아주 젊지도 않은, 노인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이들이 그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카페고 식당이고 여행지를 시끄럽게 만드는 모양이다. 나이로 대우받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들 섬기기도 뭐하고. 결국 다른 세대 사람들 눈살이나 찌푸리게 만드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겠다."
- 「아주 늙지도 않고, 아주 젊지도 않은」 「홀로 서는 법」(독자 요약)

이 책은 정신의학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 연구가인 이나미 박사가 육십이라는 나이를 지나며 보이는 것들, 알게 된 것들, 받아들이게 된 것들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분석심리의 창시자 구스타프 칼 융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신의학자인 융은 어린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이 마치 성자가 돌보고 치료하는 모습으로 그린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다. 그는 의사로, 심리학자로, 저술가로, 작가로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성공한 여성’이다. 그와 동시에 어느 누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도 살아내고 있다.
딸, 며느리,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 말이다. 이제는 솜털 같은 손주를 둔 할머니로서의 삶도 추가되었다. 그런데도 반성할 게 남았다는 것은 그의 인품에서 비롯된 측은지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저자는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현실에 타협해버렸던 학창 시절, 자퇴서를 품고 다녔던 의과대학 시절, 일요일도 빠지지 않고 이른 아침에 밥상을 차려드려야 했던 시부모 밑에서의 시집살이, 치매에 걸린 시부모를 모셨을 때의 처절한 나날들… 그는 젊은 날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버거워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한다. 한때는 집에서고 밖에서도 소처럼 일하다, 폭삭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오히려 죽음을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 아픈 부모들에 대한 부담,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대한 염치…. 그런 것들 때문에라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렇게 놓아버린 죽음에 대한 유혹들이 육십이라는 나이에 서고 보니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어쩌면 굳이 힘들게 죽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서, 아무에게도 상처나 죄의식 같은 것을 심어주지 않아도 고되고 무거운 삶을 떠날 수 있는 날이 바짝 당겨져 와 있는 느낌 때문일까? 이 어찌 성자(聖者)의 측은지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다 겪은 일도 저자에게는 삶의 원칙에 적용되었나보다. 재미로 봤을 타로점도 삶의 지혜로 바꿔놓는다. 그만큼 넉넉한 품성의 소유자인 것 같다.
‘사주 타로’ 봐주는 곳에 들어가 식구들 일을 묻다가 “나는 언제 죽어요?”라고 물었다가 혼이 났다. 그런 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인간적인 점쟁이였던 듯. (…) 따지고 보면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사형수가 되는 것과 같다. 그때부터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면 죽음과 관련된 난리법석과 귀찮음과 슬픔과 허무함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듯 평온하게 살 수 있지만, 나의 마지막을 확실히 알게 되면 매일 마지막을 상상하느라 죽음이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힐 것 같다. (…)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 죽을지 사실 궁금하지 않다. 점쟁이에게 내가 언제쯤 죽겠냐고 물었던 것은, 그 당시 내 나름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팍팍했기 때문에 이 고생이 언제쯤 끝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편해진 것일까. ‘때가 되면 죽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한다.(p. 45)

의사로서 저자는 당연히 '죽음'과 늘 가까운 곳에 서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때문이다. 그것은 의사가 되기 위해 들어간 의과대학에서 수없이 배우고 들은 얘기일 테니 자신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을지라도 현실이 그렇다. 그렇게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또 깊이 생각해보았다가도 다시 멀찍이서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듯싶지만, 그의 글을 따라 읽는 동안 마음은 전혀 무겁거나 우울하거나 어두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삶에 불을 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충만한 ‘현재’를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거대한 담론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네 삶의 면면에 대해 소탈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해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 며느리, 손주가 사돈댁으로 가 꽤 오랫동안 머물 때는 해방이 되는 느낌이다. 아이 없는 집이라 썰렁해도 모든 것을 노인에게 맞추며 살 수 있다. (…) 하지만 아이와 헤어지고 나면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자꾸 보고 싶다. 아이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나를 보며 쓱 웃어주는 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내가 뭐라 하면 답을 해주는 그 소리도 들린다. 하루하루 새로운 음절을 내며 스스로 배우고, 어떤 때는 그 소리가 낯선지 눈이 동그래지는 손주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신 차리자. 이나미. 아들, 며느리, 손주는 언젠가 내 앞에서 모두 사라져 제 갈 길 가는 별개의 존재다. 홀로 서는 법.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갈고 닦아라."(p. 20)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의 삶, 그쯤에 서서 생각해보는 죽음과 여러 이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은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아니, 공감을 넘어 삶을 ‘공유’하는 차원의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삶의 숭고함을 가슴 저릿하게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 안 있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無)’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는 동안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무지 애를 썼고, 이름을 떠올리면 추억으로 미소라도 짓게 만드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찰나, 생겼다 없어지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한 ‘거짓말’ 같은 인생. 그럼에도 내 영혼은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감히 이 찰나의 거짓말에 ‘멋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철저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표는 없어도 그저 사고나 실수, 얼굴 붉힐 일 없이 넘기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다 보니, 쓸데없이 나이만 잔뜩 먹었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내 힘만으로 살았던 순간은 없었는데도, 투덜거리고 불안해하고 원망하며 슬퍼했던 때는 왜 그리 많았을까요. 예전 같으면 노파라는 소리를 들을 처지라, AI와 로봇과 디지털 첨단 기술의 시대에 살려니 실수도 어려움도 답답함도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의사니, 교수니, 분석가니 하는 가면을 쓰고 숙고 없이 내놓은 수십 권의 책이 많이도 쌓였네요. 아, 정말 뻔뻔하군요! 딸, 며느리, 아내, 엄마 그리고 할머니로서의 삶이 앞뒤 재지 않고 지르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까요.
앞으로는 좀 더 지혜로워져야겠습니다. 옹졸하고 부족한 저를 참아주며, 귀한 시간, 귀한 자리를 저와 함께 나눈 분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니까요. 환자로 친구로 친지로 가족으로, 제가 걸어온 길목마다 저를 성장시켜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책 출간에 부쳐 쓴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독자에게 전해져오며 전율 같은 공감과 감동을 느낀다. 또 독자도 앞으로의 삶을 자서전을 쓰는 심정으로 살기를 다짐해본다. 독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책을 읽고 감동을 느낀다. 진심으로 저자에 감사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힘들고 지칠 때 언제나 꺼내 다시 읽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