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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일 침대맡 미술관 - 누워서 보는 루브르 1일 1작품
기무라 다이지 지음, 김윤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 대한민국의 예술은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 최정상급의 능력과 깊이가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돼 있다. 특히 한류에 이어 K팝, 영화까지 세계의 주요 상을 휩쓸다시피 활발하게 세계 문화 예술을 주도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문화나 예술은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고유의 색을 갖고 있어 비교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인이 공통으로 인정한다면 문제가 다르다. 선도하는, 앞서가는 문화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우리 문화 예술 영역에서 비교적 뒤진 부분이 서양 미술이 아닌가 한다. 짧은 지식으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인 줄 독자는 이미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예술 중 세계적 반열에 오를 업적을 남긴 화가나 예술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백남준 비디오아트 등 몇몇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분도 없지 않지만 숫적으로는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자의 미술 지식이 낮은 이유이기 때문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우리 미술계가 상당한 수준의 미술 수준이란 것이 간접적으로나마 인지할 수 있는 단서가 포착돼 독자로서 큰 기쁨을 맛보고 있다. 뜻 있는 미술 지식인들의 서양 미술 관련 책 발간이다. 독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미술 관련 책이 코로나 1년 동안 쏟아져 나온 것이 그 이전 나온 숫자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고 알고 있다. 초등학생 등 어린이를 위한 미술 서적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서양 미술 서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출간돼 온 것 같다. 이는 우리 미술계의 저변 확대에 큰 영향을 줄 터 미술계의 '용틀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술관이 그리 많지 않은데 저변 확대 시기가 끝나면 본격 미술관 러시 시대도 올 것으로 독자는 희망하고 있다. 대형 미술관이 아닌 소형 개인 미술관이나 화방 같은 수준의 미술관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의 해설이지만 한국어 출판이어서 우리에게 선보임으로써 미술계에도 영감 이상의 영향을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예술, 특히 미술에 관한 한 프랑스를 꼽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가보지 않았어도 어렸을 때부터 파리의 예술이라 하면 미술, 화가, 몽마르트, 루브르 등 연상되는 단어들이 줄줄이 떠올릴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 따로 교육을 받지는 않지만 현재의 프랑스를 생각하면 마땅한 예우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파리에는 손꼽히는 3대 미술관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중 가장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루브르에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제작된 약 6,000여 점 이상의 미술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독자도 간 적이 있어 현장 안내를 맡은 가이드의 설명으로 알 수 있다. 한 작품에 30초씩만 본다 하더라도 일주일은 걸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루브르의 작품을 우리가 모두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다고 이 책 『63일 침대맡 미술관』의 저자 기무라 다이지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의 회화 중 시대별, 지역별로 꼭 알아야 할 대표작 63작품을 엄선했다고 말한다. 미술에 목마른 미술 지망생과 문외한이지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쉽게 서양 미술을 이해하도록 이 책을 발간한 이유다. 이 작품들만 안다면, 그림이라고는 〈모나리자〉밖에 모르는 미술 초보자도 어디서 ‘꿇리지 않게’ 교양을 뽐낼 수 있다고 말한다. '교양을 뽐내기 위한 미술 공부'는 저자의 겸손의 표현일 듯하다. 이 책 한 권이면 루브르까지 직접 가지 않고 편하게 누워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꾸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또한 이 책은 한눈에 보기 쉽게 왼쪽에는 그림,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림에 대한 핵심 설명을 담은 구성으로 되어 있어, 순서대로 보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부터 보아도 무방하도록 구성해 저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 가능하다. 이 책을 침대맡에 놓고 잠들기 전 하루 한 페이지씩 본다면, 63일 후 독자들의 교양은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서양미술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미술 작품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유럽의 역사를 아는 일이며, 그 다양성을 접하는 일이고,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아는 일이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서양 미술 작품 중 최고의 작품들만 모인 루브르는 유럽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재가 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루브르 미술관의 소장 작품은 기본적으로 13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회화다. 서양 회화는 종교화에서 발전했는데, 특히 19세기 이전에는 역사화를 정점으로 한 장르의 계층화가 뚜렷했기 때문에 회화는 주로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신화의 에피소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회화들에는 각 시대와 그 지역의 사회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이를 읽고 이해하는 지식은 서구 사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했던 시대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로 활약했는데, 그가 그린 펠리페 4세를 비롯한 왕족의 초상화는 이웃 국가인 프랑스 왕가의 초상화보다 모두 단순하고 수수해 보인다. 이는 유럽에서 첫째가는 명가인 합스부르크가에 화려한 연출은 필요 없다는 사고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가 되어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라난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 왕으로 즉위해 펠리페 5세가 되자, 스페인 왕가의 초상화도 단번에 프랑스처럼 화려해졌다.
종교화의 경우 17세기 들어 성모마리아와 성인이 빈번하게 그려졌는데, 여기에는 1517년 이후 종교개혁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성서만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아온 프로테스탄트가 성상 숭배에 비판을 가하자, 가톨릭교회는 이에 맞서 종교미술을 통해 성서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양하려는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편 18세기가 되자 회화의 색채는 17세기의 중후함이 누그러지며 경쾌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귀띔이다. 왕후, 귀족 사회도 여성화되어 남성도 화장을 했으며, 그때까지는 여성적인 색조로 취급되던 파스텔 톤이나 장밋빛 의상을 즐겨 입었다. 프랑스에서도 이성에 호소하는 데생을 중시한 묘사보다 가볍고 산뜻한 색채가 특징인 로코코 회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상적인 여성상도 변화해서 17세기 루벤스가 그린 통통한 여성과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인물이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바뀌었다. 이는 18세기에 음식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 밖에도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는 다양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한 예로 네덜란드의 풍속화 중에는 ‘음주’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인들 중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경계심을 주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 외에 시민을 위한 훈계로써 남녀의 미묘한 심리나 도박을 그린 작품도 많다. 이처럼 명화 속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면, 당시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
독자는 이 책의 가치를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설명이어서가 아니라 특화된 내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는 점에 두고 있다. 우리 서점가에 쏟아져 나온 서양 미술 관련 책들이 숫적으로 굉장한 양이지만 대부분 거의 비슷한 그림을 대상에 올리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걸작이란 평가를 받은 작품들 위주라는 점이다. 우리 출판계가 모를 리 없지만 미술계 저변 확대와 관심을 끌기에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특화된 작품을 해설해주는 출판물은 독자가 한정돼 판매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얇은 저변 때문에 선택한 '고육책'일 것으로 독자는 해석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서양 미술 태동기인지, 도약기인지 독자는 판단 내릴 지식이 부족하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든 생각일 뿐이니 혹시 부족한 판단이라면 우리 출판계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 독자로서는 서양 미술도 우리 화가가 부쩍 많이 나올 시기라고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집콕 시대, 하루 한 페이지씩 이불 속에서 편하게 즐기는 그림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황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볼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우리와 미국 프랑스 등 서양 미술 강국과의 간극을 좁히는 일은 미술인의 저변 확대라고 믿는 독자기에 이런 책 저런 책 막론하고 '그림 있는 책'은 모두 반갑다.
저자의 말 중에서 "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들만 즐기는 취미라고 생각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서양 미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 데 대해서는 동의한다. 미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주말에 가볍게 미술관에 들러 해설을 즐기고,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기초 교양으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우리의 서양 미술 저변 확대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술관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도 얼마든지 편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또한 어려운 회화 용어를 모르더라도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끼기만 해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이 책에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라는 콘셉트로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꼭 알아야 하는 작품들을 엄선해 서양 미술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법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했다고 밝힌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요즘, 이른바 ‘집콕 시대’를 맞이해 집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침대맡에 이 책을 두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 명화를 감상한다면 서양 미술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평온한 집콕 생활이 될 것으로 독자는 확신한다. 읽고 보다 보면 지식도 쌓고, 어떤 영감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천천히 여유 있게 예술을 즐기는 마음이 우리를 스트레스로부터, 우울감으로부터 해방시킬 적절한 명약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그들이 자랑하는 교양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저자 : 기무라 다이지
서양미술사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런던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예술품(WORKS OF ART)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에서 예술, 역사, 종교, 철학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했으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를 목표로 일반 대중에게 서양 미술에 다가서는 법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미녀들의 초상화가 들려주는 욕망의 세계사》가 있으며 그밖에 《명화 읽는 법(名?の?み方)》, 《인상파라는 혁명(印象派という革命)》, 《명화는 거짓말을 한다(名?は?をつく1∼3)》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