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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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최고의 석학'이라는 칭호를 받은 지 오래됐다. 그의 학문적 발자취는 책을 통해서만 그를 만난 독자로서도 꽤 알고 있는 편이다. 나이도 이미 미수(米壽)에 가까운 그가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닌 인터뷰이(interviewee)로 나선 것은 2021년 현재 시점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제자'를 자처하는 김민희 인터뷰어가 최근 5년 동안 그와 나눈 100여 시간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저자 김민희는 그의 '생각의 삶' 80년의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특히 창조적 생각의 지도를 그려온 한국 최고의 석학 이어령의 7살 질문쟁이 꼬마 무렵부터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기까지 ‘생각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아 냈다. 이른바 '회고록'(회고 인터뷰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석학 이어령 탐구의 결정판이다.

 


 

이어령 교수는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스스로 생각하라"라고 밝힌다. 앞서 이어령 교수는 "책을 위해 기자와 인터뷰를 했지만 결코 내 자랑하는 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먼저 주문했고 "남이 자기 자랑하는 책을 누가 읽겠느냐"며 자신의 '생각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남겨줄 것을 당부했단다. 즉,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 생각을 자신의 머리로 풀어내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것들이 합쳐져 창조적인 집단 지성이 생견난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온리 원'의 천재로 타고 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인물 탐구론으로 접근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책 발간 후에 인터뷰한 다른 기자가 "80년 생각이 어떤 삶이었느냐"는 질문에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에요.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죠.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로 말했다.

 


 

“이 책은 남들이 아니라 내가 봐야 할 책인 게지. 김민희라는 한 놀라운 작가에 의해서 더 이상 아무 감각도 없이 굳어버린 한 사람의 묵은 흉터에서 선혈이 흐르고 아린 신경줄이 노출되는 생명감을 얻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숙연해지는 것은 내 쪽이라고. 감사해요.”

한국은 평전(評傳), 즉 한 개인의 삶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더해 평하는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같은 책들의 출간이 매우 적은 편이다. 오히려 본인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더 많다. 평전이 많지 않은 것은 아마 탐구할 만한 인물이 많지 않고, 정치나 경제 논리에 갇혀 그 인물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한 인물이 걸어온 치열한 80년의 분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어령 교수 역시 이 책은 회고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창조’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어령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맞지만, 고정불변의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팔딱거리는 생각들에 대한 ‘꿈틀대는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나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확신범이 아니여. 확신범이라면 유언밖에 더 남겄어?”라고 말하며,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이 과거의 기록이 아닌 “80여 년 동안 '온리 원'의 사고를 해온 한 인간의 머릿속을 탐색”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엉뚱한 질문한다고 혼나는 게 무섭진 않으셨어요?”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어른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 혼나면 물론 무섭지. 혼나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딨겄어. 그런데 나는 이런 반응에 굴하지 않았어. 지적 호기심이 워낙 컸거든. 혼나는 걸 각오하고서라도 그 질문을 해야 했지. 어린이의 눈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경이롭게 보여요. 이름 모를 풀과 나무, 어둠 속에서 들리는 벌레 소리, 달빛 속의 그림자, 나는 그것들과 이야기하고 물으면서 그 두꺼운 껍질들을 벗기고 싶은 욕망으로 온몸이 근질거렸어요. 나만 이랬을까? 아니야.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같아요. 다만 선생님들에게, 어른들에게 길들여지면서 호기심을 잃어버린 거지.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품었던 수수께끼를 푸는 감동을 그리스어로 ‘타우마젠(thaumazen)’이라고 해요. 타우마젠! 호기심이 해소되는 순간, 다시 말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 말이야. 그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막 탄성이 나오지.”

인터뷰 첫날,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물음표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표가 생기는 거예요. 목마름 없는 지식은 고문이야.”(p. 55~56)

 


 

이어령 교수는 코로나로 1년 여 거의 공황 상태로 정신 없이 지내온 지구촌의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 사회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하는 상황에서 전화 인터뷰에 응했던 듯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코로나 1년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저는 그것을 '코로나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네 가지로 정리해 말씀 드리겠다.우선 글로벌의 역설이다. 전 세계가 촘촘하게 이어졌고 누구나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코로나 19가 비행기의 속도로 퍼졌다. 하나의 질병이 동시에 전 세계에서 발병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그 결과 봉쇄가, 로컬화가 시작됐다. 두 번째는 선진화의 역설이다. 자유의 가치, 인권의 가치가 높은 나라일수록 피해가 더 컸다. 그러나 보니 정부가 자유나 인권을 제한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됐다. 우리가 희구하는 것은 자유와 인권, 글로벌인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추구하면 곤란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어 세 번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호저의 딜레마이다.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몸에 뾰족한 가시가 있다. 추우면 짐승들은 함께 모여 온기를 나누는데, 호저는 찔리니까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한다. 혼자는 춥고, 모이면 아프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외로우니까 또 같이 있고 싶어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되면서 억지로 혼자 있게 된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고, 억지로 같이 있게 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됐다."

"우울증이 심해지는 '코로나 블루', 홧병이 생기는 '코로나 레드'로 인해 가정불화와 이혼도 늘고 있는데 마지막 네 번째는 어떤 건가요?"라는 질문에 "디지털의 역설이다. 디지털을 만능으로 알던 사람들은 '아, 디지털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온라인 수업만 하면서 학교에 못 가게 되니 오히려 선생님의 지도, 친구들과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디지털은 '접속'하는 것이고 아날로그는 '접촉'하는 것인데, 이 둘은 같이 가야 하거든. 이것이 제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디지로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배운 교훈이 있다면?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는 것이 가장 귀중한 교훈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생명을 주신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의 원천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그동안에는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갔는데, 그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도 알게 됐다. 자유와 생명은 같은 뜻이다. 자유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가치는 곧 자유의 가치다."

이어령 교수는 "코로나는 언젠가 간다. 이 수난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도 갈리게 된다. 경주에서도 코너워크를 할 때 순위가 바뀐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산업화, 정보화에 이어 코로나라는 코너를 돌고 있다. 이 코너를 돌고 나면 이제 생명화의 시대가 펼쳐진다. 생명이 가장 중요한 테제가 되는 세상이다. 앞으로 반생명적인 것은 절대 발붙일 수가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생명은 서로 같이 사는 것이다. 상생하고 공존한다. K방역 성공의 본질을 "봉쇄하지 않고 개방했는데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이 상생의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남을 위해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을 가졌다는 거다. 한국인의 이런 생명 사상은 위기가 왔을 때마다 발현한다"고 말을 맺었다.

 


 

저자 : 김민희(인터뷰어)

 

인터뷰 매거진 〈톱클래스(TOPCLASS)〉 편집장. 학자와 예술가, 경영자와 문화창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600여 명을 인터뷰했으며, 현재 〈톱클래스〉에 ‘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를 연재 중이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동 대학원 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줄곧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학부 교양강의 ‘한국인과 정보 사회’, ‘한국 문화의 뉴패러다임’을, 대학원 마지막 전공강의인 ‘기호학의 이해’를 수강했다. 〈월간조선〉 〈주간조선〉 기자를 거쳤으며, 《성공신화-파버 카스텔》 《신 인재시교》를 썼다. 이 책은 이어령 교수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5년간 100시간이 훌쩍 넘는 인터뷰를 통해 탄생한 이어령 탐구의 결정판이다. 이어령 교수는 김민희에 대해 “저널리스트로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되,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문체를 지녀 한국의 츠바이크나 앙드레 모루아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평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한 시대에 새로운 불씨를 놓은 창조적 인물론 시리즈를 편찬, 평전 장르가 미약한 한국 출판계에 새 바람을 넣고 싶다는 사명감 어린 포부를 갖게 됐다.

 

인터뷰이 : 이어령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언론인이자 교육자,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 등 전방위를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통섭형 지식인. 1934년생으로,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30년 넘게 몸담았다. 28세에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데뷔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중앙일보〉 고문으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고비마다 굵직한 모토를 한국 사회에 던져왔다. 20대에는 ‘우상의 파괴와 저항의 문학’, 30대에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론, 40대에는 일본 문화론인 ‘축소 지향의 일본인’, 50대에는 88서울올림픽 슬로건 ‘벽을 넘어서’, 60대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70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목을 말하는 ‘디지로그’, 80대에는 ‘생명이 자본이다’, 그리고 88세인 2020년에는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이라는 키워드를 남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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