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카키스토크라시 - 잡놈들이 지배하는 세상, 무엇을 할 것인가
김명훈 지음 / 비아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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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길을 확 잡아 끈다. 카키스토크라시.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는 생경한 단어여서 눈에 더 띈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으로 유추해보려 하지만 뒷부분 '크라시(cracy)'를 보고 어떤 정치체제나 이념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민주주의(Democracy)는 고대 그리스 어의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지배 또는 권력을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서, 민주주의란 곧 '민중에 의한 지배'를 말한다. 즉,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말한다고 배웠다. 이를 토대로 '카키스토'의 뜻만 알면 어떤 단어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신조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답답하다. 제목 밑에 '잡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부제를 달았으니 어떤 뜻인지 윤곽을 잡힌다. 다행히 출판사 측에서 책에 끼워넣은 책 안내서에 친절하게 설명이 돼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어리석고 자격 없고 부도덕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다. 이 책 『카키스토크라시』의 저자 김명훈은 부패한 기업가들과 지도자들을 여럿 소개하면서 기울어진 사회의 지형을 촘촘히 묘사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잡놈'형 인간이 번창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던 미국 사회를 고찰한다. 또 한국 사회가 이러한 미국 사회의 병폐를 빼닮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 '정상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카키스토크라시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건전한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잡놈'들의 지배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지 비전과 논거를 제시하려 한다. 가치 체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분명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을 바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바이든 당선자는 정상적으로 1월 20일 취임했지만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트럼프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극우 트럼프 세력이 미국 각지에 많이 남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궁극에 가서는 소멸될 것이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전망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저자는 서늘하게 장담한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고, 강대국은 언젠가 몰락하게 되어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실패했고 '정상인'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가 취임한 후에 미국이 정상 국가의 모습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p. 145) 또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1980년대부터 본격 시행된 로널드 레이건과 공화당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것이 낳은 사회 기풍이 가져온 필연적 귀결로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또 제2의 트럼프의 등장 혹은 트럼프 본인의 재선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을 시사한다.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들이 보인다.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들이 나서서 트럼프의 인품을 비판하고, 능력 부족과 비리 행적을 지적해도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라고 맞받아친다. 다시 4년이 흐른 뒤에 이들 중 얼마가 마음을 바꿀까? 트럼프의 등장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판단은 여기서 기인한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바뀌면서 정말 삽시간에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의 두드러진 증상일 뿐이다. 미국이 앓고 있는 병은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심화된 것이다.”(p. 150) 질주하던 한 명의 ‘특출난 잡놈’을 치웠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얘기다.

 


 

저자는 이런 비관적인 전망이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공정한 경쟁에서 기대하거나 수긍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을 행운이나 특혜라 생각하지 않고, 우월성의 징표로 여긴다는 점이다. 저자는 “화려한 껍데기 속에 자리하고 있는 천박한 인간형은 직간접적으로 사회 전반의 기풍과 풍습에 잡스러운 영향을 미치고, 열심히 사는 서민들에게 패배감과 모멸감을 주며, 급기야는 공동체 의식을 파탄시킨다”(p. 29)고 묘사하며 이들을 ‘잡놈’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잡놈’이란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 내면의 품계를 기준으로 하여 “마음과 몸가짐이 천박한 사람”(p. 171)을 뜻한다.

“지금 한국이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것은 한국의 운명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 미국의 물질주의와 피상적 풍요, 겉멋, 그것의 토양을 제공하는 이른바 하이퍼 자본주의(hyper-capitalism), 다시 말해 미국이 지금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가장 큰 원인들만 가져갔다.”(p. 350)

많은 면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기업들의 독주는 “지위 불안증을 조장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 소비지상주의를 정착”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능력주의 사회는 현대인들을 낮은 자존감, 경멸과 분노,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무한 경쟁과 소비의 전쟁터로 내몰”(p. 352)고 있다.

이런 풍조를 방치하고 치켜세운 끝에 작금의 위기로 내몰린 미국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남은 시간 역시 길지 않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강력한 어조로 지금이 바로 “질 나쁜 지배층이 사회를 낭떠러지로 몰아가기 전에 다수의 상식 있는 국민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소수의 특출난 ‘잡놈’들이 불현듯이 나타나 우리 사회에 제동을 걸고, 서민들의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일까? 사회 상부층의 부도덕과 탐욕은 익히 들어온 얘기다. 저자는 이 부도덕과 탐욕이 “너무도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카키스토크라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자의 선동으로 무장 폭도들이 의회에까지 난입하는 지경에 오게 되었는지, 그 기저 질환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다.”(p. 5) 즉 소위 ‘잡놈’들이 창궐하게 된 까닭에는 바탕이 되는 ‘기저 질환’이 있었으며, ‘잡놈’들의 창궐은 그에 따른 증상이라는 의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잡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형이 유독 번창하는 사회가 어떤 형태인지 고찰한다. 그리고 나아가 건전한 시민들이 ‘잡놈’들의 지배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과 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시장은 현대인에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가치관을 주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품성과 인격은 가치를 잃고, 교육 기관들은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인적 자본’을 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세태야말로 ‘카키스토크라시’가 모습을 드러낸 근본적인 이유다. 저자는 기본적으로는 이런 풍조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매일 수백만, 수천만 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권은 국민의 웰빙과 공동선이 목표인 민주주의적이 절차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모리배들의 손 안에 있다.”(p. 281)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라는 등식이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혼동하는 인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하는 학문은 갈수록 희귀해지고, 책임감, 연대감, 공익, 희생과 헌신을 배우는 학문은 주변화되어 힘을 잃고 있다. 낭떠러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꺾기 위해서는 혁신적으로 사고방식을 바꾸고, 저항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경제지상주의가 주창하는 ‘실용적 가치’에 상관없이 견고한 지식을 기반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이끌어내 현명한 시민을 만드는”(p. 326) 인문학 교육이라고 말한다.

 


 

저자 : 김명훈

 

1963년 서울 출생. 1974년 강남초등학교 5학년 재학 중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중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모두 뉴욕에서 다녔으며, 현재까지 뉴욕에서만 45년째 살고 있다. 미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싹트기 시작하여, 이식된 삶의 온전치 못함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넘긴 기억이 없다. 코넬대에서 영문학, 컬럼비아 예술대학원에서 작문을 전공하였고, MFA(순수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어로 글 쓰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한국어로도 가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이끌려 대학 졸업 후 중앙일보 뉴욕 지사에 입사했다. 덕분에 다른 진로를 택했더라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본국’과의 깊은 인연이 시작되었다. 7년 동안 일하며 한국 언론과 조직 사회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았으며, 한국 문화의 멋과 부조리를 함께 끌어안는 요령도 터득했다. 언론사를 떠난 뒤 9년간 미국 연방 공무원으로 일했다. 2002년부터는 미국 기업의 한국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컨설팅 사업을 운영하며 양국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를 지탱하는 상류의 진정한 역할과 태도에 관해 탐색한 『상류의 탄생』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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