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쓴 정해연 작가는 추리소설로 첫 시작을 알린 『더블』 출간 이후 8년 동안 9권의 장편소설과 9권의 앤솔러지에 참여하는 등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면의 악의를 그리며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부터 사회문제를 다루는 무게감 있는 스릴러와 유쾌한 매력이 있는 일상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중에서도 스릴과 유머, 반전까지 모두 겸비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와 『유괴의날』은 영상화 계약을 완료 후 드라마로 제작 진행 중이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탁월한 필력을 인정받았던 저자가 『구원의 날』을 통해 또 한 번 분위기 변신을 시도했다. 전작 『유괴의 날』이 유머러스함과 강렬한 반전으로 장르적 재미가 가득한 페이지터너라는 평을 받았다면, 이번 신작은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을 지키려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저자 역시 “여러 번이나 작품을 출간해왔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고 있다”며 여느 때와 사뭇 다른 후기를 남겼다. 이렇듯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지금까지 강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주로 써온 작가답게 폐쇄적인 사이비 단체와의 갈등으로 스릴과 속도감도 놓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장르 분류상 추리소설이다. 어린이 실종 사건과 유괴 사건을 연결시키고 유기적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추리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소설도 심리 묘사가 필수적이다. 심리 묘사에 성공하면 그 추리소설은 구성력을 갖춘 작가에겐 사건의 흐름과 주변 인물과의 유기적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심리 묘사가 남겨진다. 사건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설 속 단순 사건과 달리 심리 묘사가 작품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작품의 질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이제 작가들은 소설의 화자, 즉 인칭(人稱)에 대해 고민할 차례다.

소설에서 인칭의 문제는 주로 시점과 관련해 이야기된다. 시점을 크게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1인칭 시점은 다시 1인칭 주인공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뉜다. 3인칭 시점은 다시 제한적 3인칭(작가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3인칭 시점으로 구분된다. 이 소설은 전지적 3인칭 시점이다. 심리 묘사는 화자와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표정, 말, 동작, 행동 등 일련의 표현을 통해 우회 묘사하기도 하고, 언어나 표정으로 직접 묘사도 한다. 사건에 따라 작가가 선택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소설을 읽어나간다면 훨씬 보람 있는 독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먼저 사건의 개요를 살펴본다. 불꽃놀이 축제에 아들 선우를 데려간 예원은 인파 속에서 그만 아이를 잃어버린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남편 선준도 예원과 함께 아이를 찾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유괴라면 요구 사항이 있을 거라는 경찰의 말을 믿고 기다리지만, 유괴범의 연락은 오지 않는다. 단순히 미아가 된 거라면 왜 선우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선우는 아직 어리지만 영리해서, 엄마 아빠의 전화번호는 물론 집 주소까지 외우고 있었다.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3년이 흐른다. 예원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동요 가사를 선우와 똑같이 바꾸어 부르는 아이, 로운을 보고 충동적으로 집에 데려온다. 로운이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고 선우를 알아보자 예원과 선준은 이 아이가 그들에게는 선우를 찾을 마지막 기회임을 깨닫는다.

 

예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런 예원을 보며 선준은 자신의 감정이 무덤덤함에 놀랐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양 형사를 보았다. 이미 선준의 연락처 정도는 알고 있는 양 형사를 향해 명함을 내밀었다.

"차 수리하시고, 비용이랑...... 합의금, 연락주세요."

기가 막힌다는 듯 양 형사가 하! 숨을 크게 뱉었다.

"지금 현행범으로 잡히고 합의를 하자고요? 형사랑?"(p. 20)

 


 

소설 『구원의 날』에는 아이를 잃어버린 예원과 선준, 관심과 애정이 결핍된 아이 로운이 등장한다.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다른 아이를 유괴한 예원과 선준에게 마냥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 없는 것은 선우에 대한 간절함과 로운을 향한 그들의 진심까지도 알기 때문이다. 사건이 전개되며 스스로를 해칠 정도로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예원과 로운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엄마 주희, 각각이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육아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는, 최소한의 사회 안정망조차 부재한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손쉽게 그 부모를 비난하는 여론의 차가운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가족이라서 할 수 있는 용서와 가족이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상황을 상상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여서 고마움도, 상처도 크게 느끼는 가족들. 『구원의 날』의 주인공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용서를 통해 서로를 구원하고, 일상을 재건해낸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혹은 좋지 못한 타이밍 때문에 잡은 손을 놓치거나, 놓아버릴 때도 있지만 진심과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놓쳐버린 손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읽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수작이다.

 


 

심리 묘사가 탁월한 저자의 두 문장만 발췌해 적는다.

로운과 병원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그녀는 지금도 꿈같았다. 그때는 정말로 눈앞에 선우가 있다고 믿었다. 저 아이가 선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 아이가 선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 아이는 왜 나를 따라온 걸까. 예원이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자신이 선우가 아니라는 것도 저 아이는 알고 있었다. 왜 선우라고 부르는 내 손을 잡은 걸까. 휘둥그레졌던 로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작은 눈 끝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아이답지 않은 미소였다.

“따뜻해서.”(p. 94)

 

선준은 자신을 일으키려는 경찰들의 손을 온 힘을 다해 뿌리쳤다. 그리고는 건물을 향해 달렸다. 그 누구도 이제 자신을 말릴 수 없다. 꼭 찾을 거라는 경찰의 말도, 집에 가서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도, 찾고 있다는 말도 다 믿었던 3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불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세상 그 어떤 권력 기관도 선우를 찾고자 하는 의욕이 부모인 자신들과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p. 233)

 


 

저자 : 정해연

 

2013년 장편소설 《더블》을 발표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이코패스의 서늘한 양면성을 다룬 《더블》은 중국과 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2016년 YES24 E연재 공모전 ‘사건과 진실’에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CJ E&M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미스 소설 공모전에서 《내가 죽였다》로 금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장편소설 《악의-죽은 자의 일기》 《지금 죽으러 갑니다》 《유괴의 날》 《너여야만 해》 《두 번째 거짓말》 《패키지》를 발표했고, 앤솔러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그것들》 《어위크》 《카페 홈즈에 가면?》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 《카페 홈즈의 마지막 사랑》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세상 모든 책들의 도서관》 《단 하나의 이름도 잊히지 않게》에 참여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와 《유괴의 날》은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구원의 날》은 아이가 사라진 후 붕괴된 가정과, 애정과 관심이 결핍된 아이의 동행을 그렸다. 이들의 관계를 통해 현재 한국의 사회문제를 작품에 녹여냈으며, 동시에 폐쇄적인 사이비 단체와의 대치로 긴장감을 일으켜 장르적 재미를 준다. 《유괴의 날》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물었던 작가는 《구원의 날》에서 가족이기에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또 가족이기에 서로를 용서하고 함께하는 이들을 통해 그 한 가지 답을 보여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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