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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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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지 않는 하루』의 저자는 여류 작가 이화열이다. 그는 8년 전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섬세한 시선과 매혹적인 글로 담아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 앙리지누가(街) 사람들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2019년 파리에서 갑작스레 직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며, 작가는 의도치 않게 ‘무위하거나 혹은 특별한’ 1년을 보내게 된다. 『지지 않는 하루』는 그 시기의 일상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책이다. 그리고 매일 수많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삶의 태도에 대한 꼭 필요한 질문들을 다시금 던진다.
"지난 일 년, 암이라는 병 앞에 소환된 나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통을 견디며 전구 불빛을 밝히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죽음의 위험 앞에서 던지는 질문에는 인생을 갈무리하는 면이 있다. 그건 죽음이 아니라 결국 삶에 던지는 질문이다."
-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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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쁨은 나눌 수 있지만, 고통은 철저히 자신만의 몫'임을 절절한 심정으로 받아들인다. 병이나 죽음보다 인간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두려움’이며, 두려움은 정작 두려움에 대한 상상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깨닫는다.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인생도 비로소 선명해질 것이라고, 죽음 앞에서조차도 행복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로서 죽음의 새로운 면을 만나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철학적 깊이는 잃지 않으면서 병과 두려움, 심지어 죽음마저도 위트 있는 태도로 사유하고 행복한 하루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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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신형철 평론가로부터 “한국식 에세이의 관습이 말끔히 제거되어 있는 글”, '진짜 고수의 글'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이화열 작가. 이번에는 그가 전하는 ‘다른 이유가 없는’ 행복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저자는 "각자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임을 체득하고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이라는 병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보르헤스 시의 한 구절처럼 '세월의 횡포를 음악과 속삭임, 그리고 상징으로 바꾸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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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제목은 저자의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① 행복이라는 습성, ② 죽음을 떠올린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결국 당신이다, ③ 두려움은 대부분 두려움에 대한 상상에서 나온다, ④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 그래서 저자의 불행은 비교급이고, 행복은 최상급이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케이크를 구웠다. 바다로, 산으로, 농장으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자연과 몽테뉴,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들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책과 자연은 모든 질문에 답을 주지 않지만 적어도 멍청해지는 늙음의 유혹을 막는다.
세상을 단맛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쓴맛 위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의 자아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지 않듯 삶에 대한 미각적 태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 「에필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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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옆 침대에 70 조금 넘은 노부인이 들어온다. 그녀는 변비가 좀 있을 뿐 곧 집에 간다는 넋두리처럼 말을 늘어놓는다. 대화를 나누다 노부인 프랑수아즈는 19살 때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남자와 아이 셋을 두었다. 문제는 결혼 10년이 지날 즈음 남자의 알 수 없는 잦은 외출에 둘 사이에 금이 가고 결국 이혼했단다. 아이 셋을 키우는데 그 남자는 불의의 사고로 삶을 마감한다. 격하게 어렵게 살아온 프랑수아즈는 늙그막에 치매로 아마 연금생활자로 있다가 입원한 것으로 알게 된다. 그녀는 의사가 묻는 프랑스 대통령 이름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저자가 퇴원을 준비하는 동안, 프랑수아즈가 전날처럼 벽에 등을 기댄 채 의자에 앉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기억은 사진기와 같다는 것을 아세요? 제 인생은 소설로 쓰면 아마 책 한 권 나올 겁니다."
장르와 볼륨이 다른 뿐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이다. 매일 같은 페이지를 인쇄하는 프랑수아즈의 고장난 기억 장치, 가엽게도 그녀는 10년 전 죽은 전남편에게 오늘도 새로운 배신을 당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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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멈추기를 원하는 순간을 이렇게 적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선량하고 우아한 존재들이다. 친구 K와 S는 작가다.
"우린 200cc 날렵한 슈탕에 잔에 맥주를 시킨다. 맥주가 미지근해지기 전에 마시라는 합리적인 독일 사람들의 배려다. 맥주가 혀끝을 톡 쏜다. 병은 몸을 리셋한다. 익숙한 습관이 바뀌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크레타 섬으로 떠나는 계획을 이야기하낟. 여행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는 그들의 단출한 청춘이 부럽다. 청춘은 앞을 보고, 노인은 뒤를 돌아본다. 나는 그날그날 살아간다. 지금 나의 계획은 여기까지다."
K는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다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우울한 기분을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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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장기 입원 환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곁에서 보고도 일상적인 일이라 감각이 좀 무뎌진 것 같은 저자는 의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처지를 겨우 깨닫고는 스스로에게 미안함을 달래는 듯한 생각을 한다. 통원치료하고 입원하고 퇴원하고 통원치료하고... 반복되는 일상, 그것도 즐거운 일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곳이 없는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도 생각은 명징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와 같은 문장을 찾아내 자신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희망은 실망이 두렵기 때문이고, 절망은 체질이 아니야. 이런 순간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건 몽테뉴의 책과 음악이다. 말러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심포니 5번을 듣는다.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엇는 인간의 비극을 아름다움의 극치로 끌어올린다."
절망적일수록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이성인데 저자는 포기한 듯 아닌 듯 평온을 유지한다. 그가 말한 '죽음을 떠올린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결국 당신(몽테뉴, 말로)인가? 그의 놀라운 희망에의 의지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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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