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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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현 러시아)의 전쟁은 전쟁뿐만 아니라 정치, 이념, 외교, 경제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전쟁 내적으로도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고,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양국이 2차대전을 통해 희생된 숫자는 군민 합쳐 약 3,0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 책 『독소전쟁』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소련군의 경우 1128만여명이 사망 행방불명되었고, 독일군은 타 전투 포함한 숫자지만 500만 명 안팎으로 집계됐다. 이에 민간인 수를 합친다면 양국 약 3,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공식 집계 결과 나타났다. 전쟁 중에는 전투만 아니라 집단학살, 수탈, 포로학살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이 전쟁으로 세계사의 흐름의 주도권은 미국과 소련으로 재편되고, 당시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이 쥐고 있던 세계의 패권은 미소 양국으로 넘어간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해방은 됐지만 미소의 회담 결과에 따라 38도선을 경계로 양국이 분할 통치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키 다케시는 "2차 세계대전 승리의 향방을 결정지은 독소전쟁을 정치, 외교, 경제, 리더의 세계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전쟁 당사국인 독일과 소련 양국의 허상을 깨뜨리며 21세기 평화 구축을 위해 독소전쟁을 연구하고 결과를 이 책을 통해 밝힌 것이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독소전쟁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저자가 독소전쟁 서술에 있어 줄곧 유지하는 국가주의와 역사수정주의 사이의 끊임없는 거리두기는 현재 정치적 갈등이 심각한 한국인의 관점에서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고 이 책의 출간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이와나미 신서 대상을 수상한 이 책 『독소전쟁―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의 역사 중 가장 잔인하고 끔찍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소전쟁’(1941~1945)을 다루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것은 절멸전쟁이다’라고 단언했을 때, 나치스가 이끄는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피로 피를 씻는 몰살 투쟁을 시작했다. 단순히 군사작전의 진행 과정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이 전쟁이 명백히 드러낸 생지옥을 놓쳐버린다.

독소전쟁은 인류역사상 벌어진 그 어떤 전쟁보다 대규모의 병력, 화력, 기동력이 동원된 총력전을 특징으로 한다. 이로 인해 전쟁 기간 내내, 독일과 소련 모두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잿더미가 된 영토가 남게 되었고, 양국 모두 상대 절멸을 위한 입에 담기도 힘든 전쟁범죄와 보복을 숱하게 감행했다. 전쟁포로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 홀로코스트, 대규모 보복성 성범죄 등에 관해 이 책에서 제시되는 수치는 놀랄 만하다.

직접 격돌하는 전쟁 중의 인명 피해가 아닌, 전쟁 중 시간을 벌기 위해 자행된 일이라는 점에서 더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국 자체의 피해뿐 아니라, 주요 전쟁터인 동유럽 일대 역시 초토화되어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심지어는 동물 등의 피해마저도 극심했다.

 


 

책에 따르면 제2차 대전 중 유럽에서는 동부전선에선 소련이 대조국전쟁에 나섰다. 소련(지금의 러시아)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입한 1812년 전쟁을 '조국전쟁', 1941년 독일이 침입한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한다. 당시 20~30대가 된 1920~1930년대 생의 러시아 남성은 여성보다 인구비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대부분 가정은 친척까지 생각하면 다들 전쟁 피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에 빠져 소련의 슬라브족은 열등한 민족이라 여겨 노예화 해야 하고, 스탈린의 공산주의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전멸을 생각하고 있었다. 소련 역시 점차 그렇게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당시 소련이 속수무책으로 기습공격을 당한 이유는 몇 가지가 전해진다.

① 스탈린은 영국이 소련을 무시하고 독일을 부추겨 소련을 침공하는 계약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무시하려 했다.

② 1939년~1940년까지 핀란드 침략, '겨울 전쟁'을 통해 소련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레닌의 사후 스탈린은 반역을 도모한다는 생각에 군 장교 34,301명을 체포하거나 추방했다. 그중 22,705명은 총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저자는 독소전쟁은 국제정치 면에서도 의미가 큰 전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전후 세계 패권의 주도권을 미국과 소련에 넘겨주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패권을 쥔 영국을 위시한 유럽 여러 국가가 이 전쟁의 결과와 양태를 오판한 탓도 있다. 또한 전후 동유럽 여러 국가가 강대국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여 현재까지 정치, 경제, 외교면에서 러시아에 영향을 받으며 낙후된 상황이다. 소련이 2차 세계대전의 승리국이 됨으로써, 미국과 소련의 냉전기가 소련 몰락까지 몇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에서도 독소전쟁은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독일의 분단과 영토 상실 역시 독소전쟁 패전국 독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독소전쟁이지만 이에 관한 연구는 문제가 많았던 게 현실이다. 이는 엄연히 냉전이라는 특수한 정치사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서방측에서는 과거의 동지였으나 현재는 적이 된 소련의 승리를 깎아내려야 했고 소련 역시 자신의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전쟁 초기 피해 현황 등 독소전쟁에 관한 자료나 연구 결과는 검열을 통해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냉전이 종식되기까지 독소전쟁에 관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는 보기 힘들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사료들을 통해 독소전쟁에 관해 제대로 된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 오키 다케시는 이러한 연구성과들이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의 독자들에게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세계관 전쟁’이었던 독소전쟁을 군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사상 등 다방면에서 고찰하여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증유의 이 전쟁을 ‘인류의 체험’이라는 입장에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밝혔다. 독소전쟁 종결 후 70여 년이 지나도 이 전쟁의 여파는 독소 양국과 전 세계에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독일인이 느끼는 독소전쟁의 모습은 일본인이 ‘만주국’의 역사와 중일전쟁에 관해 품는 인상과 중첩된다고 해도 좋다고 표현했다. 절멸 전쟁과 수탈 전쟁을 벌인 데 대한 속죄의식과 전쟁 말기에 당한 소련군의 만행에 관한 분노가 여전히 독일의 정치와 사회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전쟁의 실태를 이해하는 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역사를 현실적 정치문제로 안고 있는 일본인에게도 유익하다고 밝히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식민지 상태에서 치르고, 독소전쟁의 결과로 포츠담에서 해방이 논의된 뒤, 광복을 맞고 한국전쟁과 냉전 시대를 겪으며 갈등이 심해진 한국 독자의 상황에서도 독소전쟁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전쟁의 결과가 어쩌면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은 비단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현대사의 방향을 결정지은 대단한 전쟁이었던 것. 해방 이후 민족 간에 치른 전쟁으로 분단이 되고,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국내는 물론이고 주변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적인 위험과 갈등의 원인인 현재까지도 한국 독자들이 이 전쟁에 관한 객관적 시각의 입문서를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한 이유로 지은이 오키 다케시가 전쟁 당사자인 일본의 학자로서 끝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최신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여 꼼꼼하게 서술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광복절 당일에도 ‘국가주의’와 ‘역사수정주의’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무엇보다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소전쟁의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지도와 사진 등을 통해 지금까지와 달리 입체적으로 독소전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한 그저 부록이 아니라 저자의 집필 의도를 찾아볼 수 있는 참고문헌 해제, 세세히 덧붙인 연표까지 여러 자료를 통해 독소전쟁 이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관 전쟁’으로서의 독소전쟁은 순수하게 군사적인 면을 논하는 것만으로 그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정치, 외교, 경제,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p. 15)

정치 · 경제 · 교통 중심인 수도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은 독일 장군들의 맹신에 불과했다. 그들이 소련에 치명적 타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검토한 흔적이 없는 것은 사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모스크바 공략을 결정타로 삼은 것은 할더 이하 독일군 수뇌부의 가설이고, 사실이기보다 역사의 가정에 불과했다.(p. 105)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8월 말에 총통은 스탈린그라드 주민은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위험한 존재이므로 함락 후 시민 중 남자는 모두 제거하고 여자와 아이만 강제 이송하라고 명령했다. 즉 그에게 스탈린그라드는 증오의 대상인 볼셰비키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이 스탈린그라드 명령을 받은 육군 총사령부는 수탈 전쟁의 색채를 덧칠했다. 남자도 즉시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 이송해서 그 노동력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전황은 히틀러와 독일군 수뇌부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p. 196~197)

독일 본토로 진공한 소련군은 약탈, 폭행, 살육을 계속했다. 이러한 만행을 두려워하여 죽음을 선택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중에는 집단자결도 있었다. 포어포메른의 작은 도시 데민에서는 소련군 점령 직후, 1945년 4월 30일에서 5월 4일까지 시민의 다수가 자살했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지금도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700~1,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추정된다. 세계관 전쟁 패배의 귀결이었지만 나치 프로파간다는 데민 시민이야말로 모범이라고 칭찬했다.(p. 280)

 


 

저자 : 오키 다케시

 

1961년생. 릿쿄대학 대학원 박사 수료 후, 지바대학 등 비상근강사, 방위성 방위연구소 강사, 육상자위대 간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전공은 독일현대사 국제정치사이다. 주요 저서로 『독일군 공방사』(2020), 『전차 장군 구데리안』(2020), 『‘사막의 여우’ 롬멜』(2019), 『독일 군사사』(2016) 등이 있다. 이 책 『독소전쟁-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2019)로 2020년 신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역자 : 박삼헌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베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겸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소장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했으며, 주요 저서로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체제』(2012),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2016)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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