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김영권 지음 / 작가와비평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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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이란 부산의 형제복지원이 1975~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키며 각종 학대를 가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약 3,000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들은 물론 장애인·고아·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어린아이들까지 이곳에 끌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 사건이 보도됐을 때만 하더라도 집단 수용 시설이 낙후되고 이에 불만인 수용인들이 집단으로 단순 탈출한 사건일 줄 알았다. 그러나 후속 보도가 이어지고 경찰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만행의 일부가 밝혀지면서 전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20세기 산업화에 성공한 후 선진국 도약을 앞두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만행이 일어난 것에 대해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책임자 강력 처벌을 기대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의 선도 보호라는 설치 목적과 달리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끌고 가서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하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하고 시신을 300만~500만원으로 의과 대학에 실습용으로 팔기도 하는 등 반(反)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원생의 탈출을 막기 위해 경비원과 경비견으로 철통같이 감시하여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등 사설 교도소 이상의 악랄한 범죄적 운영으로 막대한 범죄 이익을 취했다. 이처럼 온갖 비행을 저지른 결과 12년 동안 원생 5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난 국가적으로 최대의 수치스러운 사건이다. 더욱이 정부는 이 복지원에 연간 2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다.

복지원 측은 이들을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성폭행 등 끔찍한 학대를 가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암매장을 자행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철저히 은폐했다. 한편,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에 대해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수사해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며, 박 원장은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 사건 이후 풀려난 사람들은 민주화가 이뤄지고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가동됨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주장하며 시위에 나서자, 위원회는 진상 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팀은 시위자와 생존자 등을 대상으로 취재에 들어갔고 일부 방송을 타고 이들의 만행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놀라운것은 당시 경찰들이 합세해 길거리에서 발견한 무연고자들외에도 가족이 있는 아이들, 여자들까지 납치하여 끌고 갔다는 것을 스포트라이트팀이 밝혀냈다.(당시 경찰들은 형제복지원에 아이들을 한 명씩 넣을 때마다 가산점을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또 가족의 보호 아래 잘 살고 있던 멀쩡한 아이를 형제복지원에 끌고 가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누더기옷을 입혀 깡통을 들게 하는 등의 부랑자 모습을 연출하여 사진을 찍게 한 다음 감금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생존자 한종선씨는 아버지가 살기가 팍팍하여 누나와 함께 나라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교육시켜 준다는 말을 듣고 두 아이를 맡겼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을 들어서면서부터 온갖 구타와 성폭행, 강제노역등 지옥 속에서 살았다는 것. 그래서 한종선씨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게 됐다는 것도 드러났다. 또 강호야 씨는 어릴 때 잡혀와서 그 안에서 강호야! 강호야! 불리던 게 지금 자신의 성이 강이 되고 이름이 호야가 되었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부모를 잃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도 성도 그 모든 것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 박순이 씨는 오빠를 만나러 기차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경찰들이 파출소 가서 오빠를 기다리자는 말에 따라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박순이 씨 아버님은 딸을 찾는다고 헤매이시다가 술, 담배를 너무 많이 하셔서 폐암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시 형제복지원에는 여자아이들 방이 따로 있었는데 남자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방으로 불려가는 언니들은 조장실 등의 방에 다녀오면 꼭 사탕이나 '쵸코파이'를 들고 와서 어린 동생들은 그 간식을 얻어 먹으려고 기다렸다고 폭로했다.

 


 

이 책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저자 김영권은 이렇게 썼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 아니었을까? 부산 시내에 실재했던 악의 만화경. 신이 만든 하계가 아니라 인간이 세워 운영한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규정했다. 독재정부 인두겁 마귀들이 횡행하는 시대에 인간은 낙엽보다 허망스레 사라진다.

이 책은 부산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에 있던 ‘형제복지원’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기존의 형제복지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씁쓸하게 보여준다.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은 이를 위해 주인공이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쓰기 위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들은 형제복지원에서의 고통도 그렇지만 가해자의 합당한 처벌을 위해 싸우는 과정도 험난하다. 우리의 죄는 그 참혹한 사건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고, 속죄는 그들의 분노에 동참해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 혹은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짓들이 일어났던 곳이 형제복지원이었고, 인권을 유린했던 수뇌부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을 통해 독자들이 피해자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가해자들의 정당한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 상황이 이랬나 할 정도로 참혹한 일이 인간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황폐해져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는 피해자들. 그럴수록 더욱 옥죄는 가해자들. 점점 잔인한 범죄의 나락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간다.

저자야 사실의 상황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했지만 '실제일까' 하는 독자의 의심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욕설도 독자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 난무하고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까지 악랄해질 수 있나 할 정도로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형제복지원의 비극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남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나만 편하면 된다", "나에게 이익이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한다"라는 인간의 본성(?)이 이 끔찍한 비극을 낳았을까. 독자도 인간의 본성에 '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의 악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엔 선도 있다. 악한 짓을 하지 '않아야 한다'가 이성의 힘이라고 하지만 독자는 '선'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악을 보고 무관심한 것 역시 인간 본성이 아니다. 악을 보고 응징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는 자에게 '악을 보면 응징하라'고 말하는 것은 '악을 행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복지원의 비극의 끔찍함은 '본성'과 '이익 추구' 그리고 '무책임'이 합쳐진 결과라고 믿는다. 어떤 일이든 상황에 부딪치면 인간의 선택은 '자신에게 이익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본성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형제복지원에서 저질러진 만행이 성립되진 않는다.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은 어떤 상황이나 자리에서도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답게 행동하려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형제복지원장 박인근과 그 자녀나 후손들의 삶을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들이 챙겨 놓은 돈이 얼마며 이것을 인정해주고 도와준 게 정부인데 얼마만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지 법적 책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정이야 옛날 말대로 '씨를 말려야' 할 정도의 범죄지만 법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처벌해야 옳은지 판단을 내리는 것도 한낱 감정에 치우쳐 제대로 죗값을 묻기 어렵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는 판단을 내려줘야 국가가 나서서 죗값을 묻든지 대신 지든지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게 슬프기만 하다. 독자들은 피해자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들의 죗값을 치르는 데 어디까지 동의할지에 대한 고민의 책임이 있다. 도덕적 책임이다.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때는 국가와 사법부의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 소설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계기로 쓴 소설이다. 이 사건은 2014년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처리하지 않은 게 '정의의 진공'이라고 규정하는 데 독자는 동의한다.

 


 

낮은 집들을 지나쳐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을 향해 걸었습니다. 형제의집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굴뚝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시체가 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가 아닌 목욕탕 굴뚝이었습니다. 목욕 바구니를 옆에 끼고서 아줌마 두 명이 걸어 나왔습니다. 평온한 얼굴의 거리, 우뚝 솟은 전봇대, 반쯤 찢긴 채 붙어 있는 벽보들, 전구가 깨진 가로등, 일정한 간격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 우리를 가둔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온 두 발을 내려다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세계, 내가 사라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평화로움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습니다. 목욕탕 굴뚝 앞에서 느꼈던 무심한 평화로움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p. 219)

 

언젠가 진상규명이 시작되면 방 원장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도 드러날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은 무리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병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고, 누군가는 아파하고 상처를 받으며 드러나는 게 진실이니까. 병호는 자신 또한 그렇게 상처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pp. 230-231)

 

저자 :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몽키하우스> <어린 북파공작원>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수상한 선감학원과 삐에로의 눈물>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풍자한 장편 에세이 소설 <잘난 니 똥>이 문예지에 연재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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