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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의 시대 -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성장기
김시우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2월
평점 :
2021년 1월 대한민국. 지금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들이 자연스럽게 사회 중추세대라고 말할 수 있지만 20세기말, 즉 20년 전만 해도 그들은 어렸다. 80년대생은 유신시대를 겪지 못했고, 90년대생은 군부독재라는 말을 모를 것이다. 듣기는 했다 하더라도 경험하지 않은 사회를 제대로 알 리 없다. 요즘 그때의 얘기를 꺼내면 '나 때는 말이야'부터 나오는 사람들은 '꼰대'로 몰리고 기성세대에서도 '별볼일없는(아무 역할을 못한) 사람'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실제 꼰대란 말을 들어도 자연스러운 사회의 변화에 맞춰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항변할 수도 없다. 항변이라도 하려드면 꼰대임을 확인해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0년대생, 60년대생은 한 일이 없고, 할 말이 없을까. 그야말로 격변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온몸으로 헤쳐나온 세대다. 군부독재에서의 민주화 투쟁, 산업사회에서의 노동력 제공, 개발독재 시대의 환경운동 등 그들이 나라를 위해, 지금 세대를 위해 한 일들이다. 입조차 벙긋하기 힘든 독재정치 아래서 감옥 가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친 수많은 사람들, 산업화 사회에서 기업은 날로 커지지만 개별 살림은 정반대로 가는 노동자들, 개발 특수에 따른 다디단 열매를 따먹는 특수층과 식구들 먹을 것 걱정에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한' 대부분의 사람들, 뒷 세대를 위해 환경운동에 목숨 걸고 나선 투쟁가들... 그들은 살기 위해 민주화, 노동운동, 환경운동에 앞장서지 못했어도 결국 그들이 필요할 땐 결정적 힘을 보탰다.
이 책 『추월의 시대』는 경제적 측면에서 세대별 생각의 차이를 말한다. 책에 따르면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끼어 있는 80년대생은 특수한 정체성을 갖는다. 그들은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자란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청년기에 선진국 대한민국을 겪은 첫 세대이다. 80년대생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기를 보내던 기성세대의 경험과, 태어날 때부터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었던 90년대생 이후 세대의 경험을 중첩해서 갖고 있기에 기성세대와 90년생 이후 세대 양쪽 다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세대다. 또한 산업화와 민주화 양쪽의 수혜를 뚜렷하게 받고 자란 첫 세대로 양쪽을 대결 의식과 폄하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친일/좌빨’과 ‘보수/진보’, 이 두 대립 쌍은 그동안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를 관통해왔던 분석 틀이었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두 대립 쌍은 우리 사회를 제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는 내 편 가르기에 적합한 도구로서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의 난립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요즘엔 과거 선진국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벗어던지는 것에서도 현격한 세대 격차를 느낀다. 특히 1980년대생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970년대생과 1990년대생의 시각차가 확연하다. 1970년대생은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을 표준으로 삼고 따라잡는 데 주력했다.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좌익/우익’ 또는 ‘보수/진보’ 같은 이분법적 정치 성향에 따라 지지하는 국가가 미국이냐, 일본이냐, 혹은 유럽 어느 나라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학업이나 사회생활에서 선진국을 본떠 한국 사회를 조형하려고 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를 전제로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가 더 심하게 덜컹거리지 않으려면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 세력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청년세대는 자신들의 삶에 온전히 담긴 대한민국 선배 세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성과를 모두 긍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떤 정치 세력이든 그 토대를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어쩌면 1980년대생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연령 세대가 되었을 때에야 2개의 거대한 추격전의 유산,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서사가 퇴장할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4장 뉴노멀〉 중에서
『추월의 시대』는 ‘낀 세대’이자 사회생활 경험을 어느 정도 축적한 80년대생이 다가오는 대한민국은 기존에 있었던 ‘열등감의 정치’를 끝내고 ‘자긍심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선언문이자 팸플릿이다. ‘자긍심의 정치’를 위한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기 위해 저자들은 자신들의 세대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국이 이룬 성취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종북’과 ‘친일’이라는 낡은 키워드와 양극화된 정치적 틀을 청산하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정치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두 기성세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업적을 후속 세대의 관점에서 공정하게 평가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본격적인 ‘추월의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가 처한 여러 사회문제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1장 〈포퓰리즘과 피드백 사회〉는 한국에서는 거의 정치적 욕설처럼 사용되고 있는 포퓰리즘이 엘리트 정치보다 잘 기능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즉 미국은 상위 1퍼센트, 유럽과 일본은 상위 10퍼센트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국은 그 아래 중간층의 역량이 탁월하기에 그들에게 키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2장 〈중도파의 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사건들을 관통하면서 그 사건들을 가능하게 한 잊힌 주체를 탐색한다. 3장 〈뉴라이트〉에서는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뿐 아니라 인터넷 일각의 역사적 혐한 정서까지 함께 다뤘다. 4장 〈뉴노멀〉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청년세대가 지니고 있는 사회의식에 대해 짚어본다. 온라인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저자 중 한 명인 양승훈 교수가 일반적인 정치 성향의 여론조사와는 매우 다른 방식의 문항 설계를 하고 그 답을 이 책에 반영했다. 익숙한 통념을 깨는 결과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독자로서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반론을 제시하기도 힘들지만 설득력이 있기에 경청하기로 한다.
저자들은 인구 급감 현상의 문제는 지금 젊은이들은 출산과 양육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 그로 인한 손해와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기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과 욕망에 대한 문제다. 출산한 부모에게 어떤 금전적 혜택을 쥐어줄 것인가만 고민한다면 해결은 요원할 수 있다. 출산은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일종의 ‘성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출산에 따르는 불편함을 개인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여주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성찰하게 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번듯하게’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평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게 될 것이다. -〈4장 뉴노멀〉 중에서
저자들은 보론 형식의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함께 제시하면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청년세대의 의식을 다룬다. 취업 문제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결혼과 출산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엿볼 수 있다.
5장 〈‘86’세대 전쟁〉에서는 저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의 한 축인 ‘세대 간 분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논의한다. 저자들은 세대론을 기득권 타파론으로 봐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공로를 동시에 인정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퇴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언한다. 6장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는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팀이 작년 12월 말부터 유튜브 세상에서 분투한 코로나19 관련 콘텐츠들을 다룬다. ‘133개국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기사가 ‘가짜 뉴스’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한국 방역 당국의 성과를 비교 검토하고 있다. 7장 〈‘선망국’의 역설〉에서는 인류학자인 조한혜정 교수가 제시한 ‘선망국’ 개념을 토대로 한국 사회가 변화의 조류를 먼저 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여타 선진국들보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내용들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공정'의 문젱에도 날을 세운다. ‘공정’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과연 무엇이 공정일까? 원론적 답변을 한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 실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 있고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한 조건을 비교적 공평하게 제공받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청년층 일각에서 흘러나와 사회에 수용되는 ‘공정론’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공채의 벽은 더욱더 견고해야 하고 학벌의 메리트는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최근에 나온 ‘공정론’의 이면이다. 이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아는 이 나라의 취업준비생들은 모두 스펙을 쌓고 대기업 공채시험에 목을 맨다. 그게 얼마나 큰 영광과 리워드를 가져다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청년실업률 확대’ 및 ‘취업 지연’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공채 영역을 줄여나가는 것이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구조개혁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진보파의 해법과 ‘시험 선발의 능력주의’라는 보수파의 해법을 넘어서자는 저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를 직접 평가해볼 만하다. -〈8장 공정의 재정의〉 중에서
9장 〈기적의 재구성〉에서는 한국 산업화의 성공 원인을 특정 인물, 시기, 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탐색하는 한편, 10장 〈한국은 아직도 약소국인가?〉에서는 한국의 전근대사까지 분석하면서 한국의 문화적 특질이 어떻게 현대사회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미중 대결 시대’라는 한국으로서는 고통스러운 위기의 국면이, 역설적으로 ‘북한의 친미국가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아간다.
『추월의 시대』는 80년대생 저자들을 화자로 삼지만 하지만 세대론을 넘어서 ‘정치적 내전’ 상태에 준하는 현재의 정치 담론 양극화를 타파하고 ‘80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그 길을 모색하기 위한 준비 담론이자 정책적 제언이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세대론과 색깔론으로 반목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과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적합한 대안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명이 같이 썼는데 모두 30대이다. 선거철만 되면 세대간 갈등이 부각되는데 젊은층과 노년층은 투표에서 확연히 다른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이기 때문에 이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30대, 20대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30대 이하 세대에서는 '사다리 걷어차기' 로 점점 희망을 갖기 어려워진다. 이 책은 곧 사회의 주축이 될 30대가 썼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논리 자체가 정연하고 실증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산업화 세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산업을 일으켜 세웠다. 민주화 세대는 독재에 저항해 목숨을 바치면서 민주주의를 키웠다. 이후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다르다. 가치에 매긴 우선 순위도 다른데 기득권을 가진 세대는 비혼이 늘어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이해가 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30대에서는 제 몸 하나 챙기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최선이 없기 때문에 차선을 택한 것이다는 문제 제기에는 반대하기 어렵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